향우기고(이성남 광주지방조달청장)

영랑생가

필자는 문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공학도다. 어린 시절 문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관심차원이었을 뿐 적극적으로 도전해 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세상사 참 모를 일인 것이 ‘문학 울렁증’이 있던 필자가 이렇게 기고문을 쓰고 있다. 몇 해 전 우연한 계기로 쓰게 된 칼럼이 생각 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게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필자도 자신이 놀랍고 대견하지만 지인들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심지어 문학을 전공했느냐, 문학적인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필자 평생에 없을 과찬까지 한다. 필자의 소소한 로망이 이런 칭찬까지 받게 된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 현대문학의 거성인 김영랑이 나고 자란 고향 강진의 덕을 본 게 아닌가 한다.

본명 ‘윤식’보다 아호 ‘영랑’으로 더 알려진 시인 김윤식은 강진이 배출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영랑은 ‘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 일컬을 만큼 우리말을 다루는 감각이 뛰어났다. 영랑은 생전에 8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중 60여 편을 강진 생가에서 썼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을 들어서며 영랑생가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립문부터 정감이 넘친다. 도시에서 아파트 철문만 보고 살아선지 더욱 반갑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도 정겹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돌담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자연과 함께 한 영랑의 시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된다.

생가 곳곳에는 영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행랑채 곳간에는 베를 짜는 베틀, 솜을 자아 실을 만드는 물레, 가마니를 짜는 틀, 탈곡기 등 당시의 생활용품들이 잘 보존돼 있다. 영랑과 가족이 사용하던 우물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생각보다 너른 앞마당에는 은행나무와 모란, 감나무 등이 가득하고, 집 뒤로는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영랑의 글감이 된 자연 소재 옆에는 영랑의 아름다운 언어가 담긴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영랑생가에서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소재는 단연 ‘모란’이다. 영랑의 대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위해 모란을 많이 심어둔 까닭이다. 지금 영랑생가는 탐스러운 모란꽃이 한창이다. 모란이 필 시기에 맞춰 강진군은 2006년부터 생가에서 ‘영랑문학제’를 열고 있다.

문학제는 작가들에게 영랑시문학상을 주는 것을 시작으로 백일장과 시낭송대회, 모란예술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꾸며진다. 올해 영랑문학제는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린다.

아쉽게도 필자는 영랑생가를 찾았을 때 올해 영랑문학제 일정을 알게 됐다. 며칠만 더 늦게 찾았더라면 영랑문학제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당시 열린 한 행사 덕분에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행사는 전북지역 평생교육원 시낭송반의 문학기행 일정이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번갈아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영랑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고요한 영랑생가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참 고왔다. 필자와 같은 내방객들의 시선에 긴장하고 실수하는 학생들의 풋풋한 모습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랑생가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우리나라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순례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진군이 생가 옆의 빌라를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 할 계획이라 한다.

생가주변 환경정비로 예비 문학도들이 영랑의 시혼과 문학적 업적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시인이 머물던 자리여서 그런지 뭔가 영묘한 시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영랑이 이곳 출신이라는 게 마냥 자랑스럽다.

광주지방조달청장 이 성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