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특별기고(전 언론인)

가슴 아픈 강진 문화재의 추억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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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전 언론인)

필자가 사는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에 이제 85년 된 데이비(Davie)라는 인구 약 10만 명의 평화로운 전원도시가 있다. 시 당국은 최근 50년 이상 된 건물이 밀집한 구 시가지(2km X 3km)의 한 마을 전체를 건물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화재로 보존하기 위해, 원형 보존을 위한 법을 제정한 한편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진 고풍스런 가로등이며 기타 옛 시가의 원형 살리기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자니 증축이나 개축 등이 불가능해서 삶에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이곳 시민들은 미국 시민답게 문화재에 무지한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의 거주지가 문화재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지니고 살아간다.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모르고 있는 내용이라도 미국의 지자체는 관내 문화재의 관리, 보존, 기록 등의 책임이 있기에 역사성과 재질의 가치성, 시대성 그리고 희귀성을 고려해 해당 문화재가 사라지기 전에 후세에 남겨줘야 할 중요 자료들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는 일을 중요한 책무로 삼고 있다.

필자가 4년 전 고향 강진에 들렸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은, 전국 어디 내놓아도 문화재로서 손색이 없던 강진읍 서문안의 '김비장네' 고택(전 고 김현장 선생, 1917~81)과 길 건너 약간 북쪽에 있던 전 고 김형식 선생(김현장 선생의 숙부)의 고택 등 강진의 대표적인 한 옥 두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진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에 이 건물들이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화재가 아니고서는 지자체가 함부로 없앨 수 없는 ‘중요민속자료’급 문화재였기 때문이다.
백여 년 전 전라관찰사(=감사, 현 전남북을 관할했던 권력이 막강한 도지사)의 직속 막료(비장)였던 고 김현장 선생의 조부 되는 분이 장남 방식과 셋째 아들인 형식의 집까지 두 채를 지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의 건축 자재 중 가장 견고하다는 백두산의 적송을 베어 뗏목으로 압록강, 서해를 거쳐 목포까지 가져와 목재의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또다시 3년간을 목포 바닷물 속에 담가두었다가 당시 경복궁 건물 관리 책임자인 국내 최고의 대목(김춘엽, 허균)을 초빙해서 지은 범상치 않은 건물들이었다.

'문화의 척도는 국민의 척도'라 했다. 김현장 선생(향설당 김승희 화백의 선친)의 고택의 경우, 강진군의 철거 방침이 알려지자 2002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지역 언론을 비롯해 의식이 올바른 강진 인사들은 군 당국에 여러 차례 이 건물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꼭 보존해 주도록 간청했던 것으로 전한다. 그렇다면 강진 군민들의 문화적 척도는 결코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님이 입증된 셈이며 오히려 당시의 지자체장이나 군 담당자가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거나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이 먼, 둘 중 하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화재 보존을 위해 강진 사람도 아닌 인사, 즉, 한국의 '탈'과 골동품에 일가견이 있는 당시 김정옥 문예진흥원장(전 중앙대 연극 연출학 교수)도 두 차례나 전남도와 강진군에 이 건물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고 간곡히 권고했었다. 또 전남대, 조선대 건축과 교수들도 건축물의 구조나 나무 다루는 기술의 완성도에 있어서 전남에서는 드문 문화재라는 이유 때문에 해마다 학생들을 견학을 시킬 정도로 '김비장네' 건물들은 전문가들 눈에도 시시한 문화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의 군 담당자들은 '소방도로 신설' 계획을 조금만 수정해도 이 건물들의 보존이 가능했을 것을 그럴만한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체 끝내 이 건물들을 없애는 만용을 발휘함으로써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계속, kajhc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