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문의 인생교양 칼럼 67

평범한 일상의 삶이 행복(幸福)(1)

얼마 전 세상을 타계(他界)하신 소설가 ‘박 완서’선생님의 글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 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것 안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 안하고 싶은 걸 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번 본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일상의 행복 속에 살아 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분의 말처럼 뒷모습이 아무 티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평생을 글 쓰며 마지막 뒷모습이 너무나 고왔던 작가 선생님을 생각해보면서 잠시 이승에 머물며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도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한참이나 기억될 그런 사람이 우리는 돼야 하겠습니다.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몇 달씩 또는 몇 년씩 보지 못한다하더라도 문득문득 어떻게 지내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왜 안 올까? 라고 기다려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남에게 존경받을만한 점이나 모습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상대에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먼저 주변에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토지’를 쓰신 작가 박경리 선생님도 “모진 세월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도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십니다. 마음 비우고 산다는 것,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것, 그런 일상의 삶이 제일 큰 행복인데 우리 인간은 우선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하다보니 그러지 못하고 다 살아갑니다.

몇 해 전 극작가‘손톤 와일러’의 ‘우리 읍내’라는 연극 내용 속에 이미 떠난 이승에 미련을 못 버린 ‘에밀리’라는 사람이 살아생전 지극히 평범한 어느 하루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소원이 이뤄져 잠깐 이승으로 돌아간 ‘에밀리’는 이승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이 너무 좋게 보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안타까움을 독백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살아 있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했어… 아무도 그런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 이제 작별 인사를 할게. 안녕 세상이여! 안녕 길거리의 나무들! 아빠 엄마 안녕! 재각거리는 시계소리… 가을 정원의 해바라기,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새로 다린 드레스와 뜨거운 목욕… 잠을 자고 깨어나는 일상의 일들,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것들을 왜 깨닫지 못하다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 죽어본 사람은 그 평범함이 평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상의 연극 내용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신의 오늘 하루가 그 얼마나 크나 큰 행복임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큰 종합 병원에 가보면 그 사실을 즉시 느낄 수 있습니다. 암 병실에서 신음하는 분들의 모습, 어떤 병실 침대에서 한 분은 온 몸을 끔적도 못해 등창까지 돼버린 분더러 더 살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내일 죽어도 좋으나 오늘 당장 일어나 앉아있어 보거나 걸어 나가 맑은 창밖에 공기라도 한번 마셔 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하는 이 환자의 평범하고 작은 소박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의 최대 행복은 평범함 속에 희망을 갖는데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은 암세포를 죽이는 명약이라고도 하지요. 가장 무서운 적은 나는 할 수 없다는 절망을 했을 때입니다. 이제 난 늙어서 인생을 다 살았어! 라고 자포자기하는 것이지요. 재산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한 것만은 절대 아닙니다. 인간은 마음이 지배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이룰 때 그 성취감,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평범한 일상의 행복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은 중병도 고치는 명약입니다.

( 다음에 제 2부를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