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인 시인, 새 시조집
‘만경루에 기대어’ 발간
김해인(본명: 김재석)시인이 시조집 ‘만경루에 기대어’를 발간했다.
김 시인은 1990년 ≪세계의 문학≫에 신인으로 등단한 이후 『까마귀』 등 여덟 권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그러던 중 돌연, 2008년 《유심》 신인문학상에 시조가 당선되면서 『내 마음의 적소, 동암』을 시작으로 하여, 이번까지 여덟 번째의 시조집을 간행했다.
그 햇수로만 보면 상당한 다작이다. 한편으로 그의 시적 모티프가 주로 불가의 수행 공간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김해인 시인의 시조 쓰기는 자기 탐색의 일환이자, 불가의 화두처럼 자기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조집 제4부에 수록된 <만경루에 기대어>와 제21부에 수록된 <건조증>은 주체의 체험 양상을 몸의 지각 현상에 대입하고 있 다. 특히 <만경루에 기대어>에서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걸쳐 있는 경계 지점이 허물어지면서 상호주관성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내 몸이 감당 못할 문수가 큰 슬픔을
벗으려 애를 써도 벗겨지지 않는 것은
슬픔이
오갈 데 없어
나만 찾기 때문인가
내 안의 슬픔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세상과 화해할 궁리를 다 했었지
자책自責에
쓰러진 마음
슬픔이 부축하다니
<만경루에 기대어> 전문
이 시조에는 각주로 “만경루萬景樓: 강진 백련사에 딸린 건물이다. 만경루萬景樓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와 같은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시인의 의도에 따르면, 시적 대상인 “만경루”는 일정한 역사적 연관성 하에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시조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조는, 이름 난 “글씨”와 낡아가는 “만경루”와 주체의 “슬픔” 등이 삼중으로 의미 겹침을 허용하면서 예술과 인간사에 대한 진한 회오를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슬픔”과 “만경루”는 의미적으로 등가를 이루면서, 세상의 관심 밖으로 물러선 이의 외로움을 진하게 드러낸다. 이 시조에서도 김해인 시인의 시 문법(poetry grammar)을 찾아낼 수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 자아의 실존적 한계 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결과나 답을 종장을 통해 귀결 짓는데 대체로 질문의 형식이나 현존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의미는 확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가 주로 불가의 절간, 요사체, 山門 등의 경계 지점을 헤매며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듯 질문하며 탐색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해인 시인은 30여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해 오던 것을 접고,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어느 날 문득, 화두처럼 다가왔던 시조의 세계에 몰두할 시간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화두가 풀리는 날, 새로운 무늬와 빛깔을 지닌 시조 텍스쳐(texture)를 들고 나와 독자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해 본다.
김 시인의 시집으로는 ‘까마귀’ ‘샤롯데모텔에서 달과 자고 싶다’ ‘기념사진’ ‘백련사 앞마당의 백일홍을’ ‘강진’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즐거운 생태학 교실’ 시조집으로는 ‘내 마음의 적소, 동암’ ‘이화’ ‘별들의 사원’ ‘별들을 흐린다고 저 달을 참수하면’ ‘고장난 뻐꾸기’ ‘큰개불알풀’ ‘다산’ 등이 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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