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닭, 오리와 메기

이원(본지 발행인)수필가

달포 가까이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요즘 실정이다 보니 가금류 축산업은 물론 우리 집까지 그 영향권 안에 들어 가 아예 문 닫을 정도다. 사시사철 너른 잔디밭과 아름다운 수목과 특히 황토집이라는 포근한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그런데 올 봄에는 그 놈의 조류 인플루엔자란 복병이 나타나 손님들의 발길을 뚝 끊게 만든 것이다. IMF 때에도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고, 특히 닭, 오리를 키우는 농장은 하루 40여 마리씩 팔리던 것이 하루 10여 마리 미만이라는 거였다. 몇 해 전 조류인플루엔자 때에는 손님들의 발길만 끊어졌지만 지금은 장기화된 불황으로 더욱 서늘한 분위기다.

일이 이 지경이다 보니 오리를 이용해서 친환경 오리농법까지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오리농법 대신 우렁이농법이나 쌀겨농법 등으로 대체한다는 소식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단 한사람도 AI에 감염된 환자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어디 그런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논쟁으로 쇠고기조차 먹질 않는 상황에서 닭고기, 오리고기를 먹을 리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먹질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어서 닭과 오리고기 대신 채소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아예 육식은 이번 기회에 끊고 채식으로 식단을 바꿔보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어쨌든 닭과 오리고기가 주 메뉴인 우리 집 황토가에도 조류인플루엔자의 거센 바람 앞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해 봄부터 키우기 시작한 메기가 폭등하는 거였다. 집 뒤 논을 파헤쳐서 재작년에 키웠을 때에는 손해를 보았던 메기양식이었다. 지난해에는 좀 더 넓은 양식장을 마련해서 봄부터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난 가을에 가격이 맞지 않아 이번만큼은 손해 볼 수가 없다는 오기로 출하를 하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물론 손해 볼 것까지야 없었지만 겨울을 넘기고 나면 메기 값이 뛰는 것이 통상적이어서 버텼는데 그것이 조류인플루엔자 바람을 타고 턱없이 오른 것이었다. 게다가 전국메기협회 회장직까지 맡게 되어 시골 촌놈이 메기 덕을 이래저래 받은 꼴이 되었다. 닭과 오리는 손해를 끼쳤지만 메기는 이익과 웃음을 선사한 셈이었다.

누구나 아는 얘기이지만 한 어머니가 날씨가 더워도 걱정을 하고 비가 와도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날씨가 더우면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의 장사가 안 될 것 같아 걱정이고, 비가 오면 얼음 장사를 하는 아들의 장사가 안 될 것 같아 걱정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비가 오면 우산이 잘 팔리고, 날씨가 더우면 얼음이 잘 팔린다는 답을 얻을 수 있으므로 모든 게 마음먹기가 아닐까.

이상하게도 이번 일은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닭과 오리가 손해를 보게 만들더니, 오히려 닭과 오리가 메기를 통해 이익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이것이 안 된다고 걱정하고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