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은 시시비비가 끊어진 자리입니다”
성전 월남사 종명 스님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란 책이 아직까지 잘 팔리고 있는 것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인데, 그 내용을 기억하자면 다음과 같다. 법정 스님은 어떤 신도로부터 귀한 난초 하나를 선물 받았다. 그래서 애지중지 키우던 중 어느 날 출타를 하게 되었다. 한참 밖을 나가고 있는데 그만 난초 생각이 났다. 방에 들여놓아야 할 난초를 밖에 놔둔 탓에 다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 때 스님은 난초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더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더라는 얘기다.
그런데,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쉽게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처럼 어려운 것이 무소유의 삶이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에 무소유의 삶으로 한평생 살아온 성전 월남사 종명 스님을 만나보았다.
새끼손가락 잘라 부처님전에 올리면서 출가
종명 스님의 왼손 손가락 중 새끼손가락이 잘라져 있어 물었더니 출가를 결심했을 때 잘랐다고 한다. 산중에서 돌중이 되는 한이 있어도 승복은 벗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스님의 은사 스님은 선운사의 향엄 스님이다. 우연한 기회에 향엄 스님의 토굴에 놀러갔다가 스님의 생활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세상사 내팽개치고 1년간 시봉을 했다. 밥해드리고 빨래하는 일 등이었다. 1년 후 손가락을 잘라 출가의 결심을 보이겠다고 하자 은사 스님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종명 스님은 출가를 할 때 세 가지의 원을 세웠다. 하나는 돈을 모르고 사는 것이요, 하나는 절대 주지를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요, 하나는 수행자 본연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을 세운 스님은 지금까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지켜오고 있다.
토굴생활 20년 세월
23세에 입산한 종명 스님은 법랍이 41세다. 충청도 성환읍이 고향인 그는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기가 무섭게 김천과 구미 사이에 있는 금오산에서 토굴생활을 시작했다. 혼자 나무하고 불 때고 밥 먹는 나홀로 생활이었다. 마을에 세 가구가 있었지만 전혀 말을 건네거나 어울리는 법이 없었다. 20년 동안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서 장날이면 20리 길을 걸어가 팔았다. 3천원 정도 받았는데 천원은 자장면 사먹고 천원은 곡차 한잔을 했으며 천원을 차비에 썼다. 약초를 많이 캐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또한 자연훼손이 될 뿐 아니라 굳이 돈을 만지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였다. 토굴 아래에는 암자 하나가 있어서 그곳에서 쌀을 얻어먹고 지낼 수 있었으므로 간신히 자급자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 토굴에서 100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본디 큰 배움이 없지만 중생을 구할 수 있는 방편 하나를 달라는 기도였다.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날 꿈을 꾸는데 웬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나타나 스님을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주춤주춤 따라가는 데 그 할아버지는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노란빛깔의 책 한 권을 떨어뜨렸다. 스님은 얼른 그 책을 집어 들고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삿갓을 벗고 점잖이 앉아있으려니까 웬 사람이 나타나 중놈이 여길 왜 왔느냐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꿈에서 깨어나 기이한 꿈을 꿨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마을에서 젊은 사람이 찾아왔다. 젊은이의 부친이 모셔오라고 한다기에 그를 따라나섰다. 80이 넘은 노인이 반갑게 맞이하더니 “스님. 제가 이제 죽게 됐는데 불공을 한 번 드려 주시오. 마지막 부탁이외다” “언제 불공을 드려드릴까요?” 스님이 물었다. “음력으로 10월 10일 날로 정합시다” 그렇게 약속하고 시내를 나가 일을 보고 돌아오던 3일만에 다시 스님을 만나자던 전갈이 왔다. 노인이 하는 말이 “침술에는 저를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하길래 “저는 침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자식들이 교회를 다니므로 불공을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저녁 식사나 하고 가시지요” 스님은 노인의 권고를 못 이겨 식사를 했는데, 식사가 끝나자 노인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꿈에서 본 색깔이며 크기가 똑같았다. 스님이 들여다보니 그 책이 <속결침법>이었다. “한글로 번역해 놔서 쉽게 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침공부를 한 번 하시지요” 스님은 노인이 건네준 <속결침법>을 가지고 돌아와 그 길로 한방침과 관련 서적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침을 끌고 다닌 30년 세월
종명 스님은 침을 배우는 것만이 중생을 위하는 길이 될 수 있겠다 확신하고 침공부를 시작했다. 그 세월이 30년이었다. 그러나 원칙이 하나 있다. 돈이 없다거나 치료방법을 모르는 사람에 한에서였다. 따라서 절대 돈 받는 일이 없다. 돈을 받으면 물론 의료행위가 되므로 법에 저촉을 받겠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으므로 부담 느낄 일도 없다. 스님은 한 번 쓰면 버리는 호침을 잘 사용하지 않고 한침을 개조한 삼릉침을 놓는다. 그런 삼릉침으로 다른 사람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척추에 침을 놓는다. 척추에 대해서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종명 스님은 한마디로 천진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 온갖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온 한평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아직까지 현금 1백만원도 만져보지 못했다고 한다. 마곡사와 해인사에서 대중생활을 조금 했을 뿐 토굴생활만 고집해온 스님은 일체 시비가 있는 곳에는 아예 얼씬 조차 하지 않는다. 탐진치를 버리기 위해서는 시시비비가 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스님도 한 때는 유혹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웬 보살이 위장병을 앓고 있다며 고쳐달라는 전갈이 왔다. 그 보살은 딸 둘을 데리고 암자 하나를 지키며 살고 있었다. 21살의 꽃다운 아가씨와 서른 살 먹은 몸이 좀 불편한 딸이었는데, 둘 다 얼굴이 예뻤다. 낮에는 약초를 캐러 다니거나 암자일을 거두어 주고 밤에는 조용히 경을 읽는 것으로 보름 남짓 보냈다. 두 딸들은 스님의 잔심부름을 해주거나 시키는 일에 군말 없이 해주었는데, 미안할 만큼 공손한 태도였다. 그런데 보살의 속셈인즉 21살의 예쁜 딸과의 인연을 생각하는 듯한 눈치가 보였다. 자신의 딸과 인연을 맺어 암자일도 도와주고 몇마지기의 논밭일도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속셈이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스님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편했다. 스님은 이러다간 큰일이 나겠다싶어 한밤중 바랑을 짊어지고 암자를 도망치고 말았다.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는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초발심자경문은 스님의 수행을 항상 지켜주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월남사에 오기까지
월남사는 성전면 월남리에 있다. 보물 298호인 삼층석탑 바로 뒤에 있는 개인 집을 사찰로 만들었으므로 일반 사찰과는 판이하게 다른 면모다. 그 옆에는 보물 313호인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기 때문에 승려라면 누구나 욕심낼만한 절터다. 하지만 주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아니 안하고 살아온 종명 스님으로서는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법랍이 41년이어도 암주(庵主) 한 번 해보지 않은 스님이었다. 그런데 경북 김천의 조그만 암자에 있을 때 단주가 닳고 닳아 얼굴이 비칠 만큼 불심이 돈독한 처사와의 인연으로 월남사엘 오게 되었다. 심시일반 보태어 민가를 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종명 스님은 애써 바깥출입을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들질 않는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 찾아가면 치료해주고 법문 들려줄 정도로 생활하고 있다. 그 세월이 6년이다.
“아직까지 그 누구와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시비를 해 본 적이 없지요. 남의 시비에는 더더욱 끼어든 법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무소유는 시시비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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