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강진 갈갈이 사건’은 무슨 사건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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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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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갈갈이 사건’은 무슨 사건을 말하는가?

74년 MBC 라디오에서 ‘법창야화’란 기획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법창야화에서 첫 번째 방송한 사건이 바로 ‘강진 갈갈이 사건’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 사건은 방송 중 강진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예정보다 짧은 기간에 끝냈지만, 이 방송이 나간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전남 강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때의‘갈갈이 사건’을 떠올릴 정도다. 밤 10시 5분부터 방송된 MBC라디오로 법창야화 제1화가‘강진 갈갈이 사건’이었다는 것은 이후 강진에 대해 아주 나쁜 선입견을 남겨주었다.

법창야화는 강진이 예와 전통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과는 달리 첫 번째 방송을 ‘강진 갈갈이 사건’을 선택함으로서, 하루아침에 강진사람들 모두를 갈갈이 사건과 관계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했다. 제목만 들어도‘갈갈이 사건’ 이라는 것은,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였다는 끔찍한 사건이다. 그 당시 그리 흔한 사건은 아니어서 법창야화 제1화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을 라디오 앞으로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었기에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때였지만, 그 것과는 상관없게도 법창야화를 듣기 위해 거리가 조용해졌다는 설도 있다.

하여튼 이때부터 강진은 ‘갈갈이 사건’과 일맥상통하게 되었다. 젊은층에서야 알지 못하는 사건이지만, 40대 후반 이후 외지인에게 강진을 물어보면, ‘갈갈이 사건’을 먼저 떠올리는 것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타 지역 강진향우회 회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진에 대해서 첫 번째 떠올리는 것이 ‘갈갈이 사건’이라는 점이다.

사실 알고 보면, ‘갈갈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10월 30일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60-70년대 얼마 전 사건처럼 제1화로 방송한 것에서는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낳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강진 갈갈이 사건’에 대해서 30년대 사건으로 알기보다는 방송당시였던 70년대 사건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라는 점이다. 당시 전 국민이 라디오를 애청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볼 때, 법창야화 제1화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 드라마였다.

법창야화에 출연한 성우 중 변희봉씨는 전라도사투리를 잘하여 유명한 배우였다. 너무 비약적인지 생각인지 모르나, 이때부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깡패역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게 함으로써 전라도 비하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매체의 전파, 그 위력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들은 은연중에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정치 계절이 되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경상도 말도 최근 유행한다. 그러한 점으로 볼 때 법창야화 제1화 ‘강진 갈갈이 사건’은 호남인들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한 최초의 발단이 아니었을 까 싶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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