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수불의차 이어짐)
정수불의차(井水不宜茶)
차의 목숨은 생명의 근원, 물
앞장에서 장우신의《전다수기》, 유백추와 이계경의 《물 이야기》 구양수의 《대양수기》 등 많은 문헌을 살펴 물 이야기를 했었다. 특히 다성육우가 양자강 남령의 물을 가려내는(品泉) 신기(神奇)한 전설 같은 물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나라 및 차인들도 그런 신기한 차 살림살이를했던 기록이 보인다. 다름 아닌 성현(조선조 성종 1439~1504)이 쓴 《용재총화》틀에 학자 성석인과 기우자 이행의 차에 관한 이야기다.
상곡 성석인과 이행은 절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성밖 남쪽과 북쪽에 살면서 즐겨 마셨는데 어느 날 상곡의 차실 위생당(衛生堂)에 이행이 찾아 차 마시기를 청하여 상곡은 서생 공도공을 시켜 창밖에서 차를 달이게 했다. 얼마 후 그들 앞에 찻잔이 들어와 차를 마시는데 한 모금 음미하다가 찻잔을 놓고 ““네가 이 차를 달이면서 두 가지 생수(生水)를 부었구나"하였다.
서생은 놀라 고백했다. 차를 달이다가 차관의 물이 새어 도중에 새 물을 부었다는 것이다. 이계경과 육우의 찻자리와 같은 모습을 우리의 선인들에게 도 볼수 있는 것이다.
기우자 이행은 물맛은 본디 충주의 달전수(達川水)를 제일로 치고 금강산에서 나와 한강 한가운데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를 두 번째로 치며 속리산 삼타수(三陀水)를 세 번째로 적고 있다(김대성 저 《차문화유적답사》 참고).
그렇지만 달천수, 삼타수, 우중수 같은 물이 우리의 및 산천에 한두 곳이던가.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산 검용소부터 고려 말 나옹선사가 도를 펴고 차를 달여 마셨던 강원도 건봉사의 하늘샘(醴泉), 해인사 장경각 뒷숲의 장군수, 사포가 원효 스님께 차를 달여 바쳤던 원효방의 바위굴 속 젖샘, 소요산 자재암 암벽 사이 돌구멍에서 나오는 원효샘의 석간수. 고려의 대문장가로 차시 40수를 남긴 이규보가 즐겨 애용했던 강화 선원사의 혜산수(惠山水) 등이 천하의 좋은 물이다. 그뿐이겠는가? 함허득통 스님은 정수사(淨水寺)의 거문고 가락 같은 석간수로 차를 달여 마시며 이런 시를 남기기도 했다.
산중의 맛, 산은 깊고 골은 솟아 오는 이 없어/ 해지도록 쓸쓸히 세상 인연 없어라/ 낮이면 한가히 산굴에서 흐르는 구름보고 밤이면 하염없이 하늘 복판드리운 달을 보나니/ 화로에 차 달이는 연기가 향기로운데/ 누각 위의 전(玉篆)의 연기가 부드러워라/ 인간세상 시끄러운 일 꿈꾸지 않고/다만 선열(禪悅) 즐기며 앉아서 세월 보내네
우리 산천에는 향그러운 젖샘, 진수가 부지기수다. 신라의 화랑들이 정신과 무예를 닦았던 한송정의 돌샘, 경주 남산 충담선사가 미륵세존에게 차를 달여 올렸다는 삼화령의 정화수, 함월산 기림사의 5종수(五種水 · 우유처럼 달콤한 감로수와 화정수, 오탁수, 오백 나한전 삼층석탑 아래 흐르는 장군수, 자정수, 8궁녀(보살)가 사리불과 함께 금관자로 물을 길어 부처님께 올렸다던 전단정, 통도사 자장암의 금샘, 미황사 산언덕의 금빛 은빛 어리는 금샘, 다산 선생이 마셨다던 초당의 정석(丁石)샘(醴泉) 등 수많은 신화 같은 물도 마다하고 송광사 2조 혜심국사는 하늘에 떠 있는 별(북두칠성)을 표주박으로 하여 은하수를 길어 한밤의 차 향연을 베풀었다 하지 않는가!
‘층층이 솟은 절벽 몇 길인지 알 수 없네/ 높고 높은 누대는 하늘까지 닿았어라/ 북두로은하구를 길어 달이는 한밤의 차/ 차 연기는 싸늘하게 계수나무 감싸었네
혜심국사의 이 시 속에서 별을 눈물을 안을 수 있다.
당나라 차인 소이가 쓴 십육탕품(十六湯品) 속의 수벽탕, 벽수탕이 젖어 있는 일지암의 유천과 함께 지상 최상승의 물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간 설매수(雪梅水)가 아닐까.
우리의 의성 허준이 물은 생명의 근원인 물은 차의 목숨인 것이다. 그는 수품(水品)에서 물은 하늘에 처음 생긴 것이어서 하늘이 사람을 내고 물과 곡식으로 사람을 키우니 물이 어찌 사람에게 으뜸하지 않으리오, 물은 생로병사의 열쇠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김대성 저《차문화답사》참고). 허준의 35가지로 물을 구분하고 있다. 그가 말한 한밤중 북두의 국자 부분에 담겨 쏟아지는 하늘샘, 새벽의 정화수, 국화꽃 향 어리는 국화수, 가을 단풍 잎새 위에 어리는 추로수, 참으로 꿈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그런 물들을 물 맑고 하늘 맑던 아득한 시대부터 찻물을 마셔 왔던 것이다.
어찌 오늘 혼탁한 세상 물을 가려 먹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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