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북경 유리창 거리에서 조선의 선비를 만나다

유리창 거리 입구

유리창 거리 한 갤러리에서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

강진군에서는 매년 어려운 여건에서도 예산을 지원하여 해설사들의 자질향상과 바른 역사의 안목을 키우며, 현장학습의 일환으로 해외역사문화탐방을 실시해 오고 있다. 올해는 3년째 중국역사문화탐방을 위해 지난 8월 7일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여순감옥, 고구려 유적, 백두산 천지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나흘째 되던 날 중국의 수도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에서 천안문, 자금성 등을 둘러본 후 유리창 거리를 찾았다.

북경 유리창은 명나라가 황실을 북경으로 옮기기 위해 서주 등 먼 곳에서 귀한 돌들을 운반해 와 구궁을 건설하면서 조성됐다. 이 때 궁건축에 필요한 유리기와를 만든 곳이라 해서 유리창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명말 청조에는 이곳에서 고서적이 주로 거래됐고 이후 건륭제에 중국 지식사의 대기록인 사고전서를 만들면서 유리창은 전성기를 누렸다. 도서와 골동품, 서화, 문방사우의 집산지가 된 것이다.

북경에 와서 과거를 본 후 낙방한 거인들이 고향에 돌아가기 전 지니고 있던 서적, 먹, 벼루 등을 유리창거리에서 팔아 노자돈을 마련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나라가 망하자 폐가한 귀족집안과 자손들이 집안의 골동품과 가보 등을 이곳에 내다 팔거나 생활필수품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당시 유리창 거리의 점포는 27만여 칸이나 된 거대한 전통문화 시장이 형성되었다.

유리창 거리를 걷다보니 건물들을 재정비하면서 새롭게 단장을 한 것 같았다. 지금은 작가들의 갤러리가 들어서고 세계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관광상품과 중국전통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유리창은 조선시대 때 사신들이 북경에 연행을 올 때 꼭 들렸던 필수코스였다. 홍대용은 1765년 10월 영조 41년에 삼절연공 사은사로 사행길에 올랐을 때 연행을 다녀와서 남긴 담헌일기에는 유리창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나 관료들 중에는 명나라를 망하게 한 청나라에 대해서 적개심과 오랑캐 나라라는 선입관을 100년이 지난 후 청나라가 전성기를 누릴 때까지도 무도한 나라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깨어 있고 개혁적인 선비들 중에 특히 사회적으로 천시를 받던 서얼출신들은 청나라 학문과 문화를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는 풍토가 커가고 있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사행사 틈에 끼여 연행을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았다.

또 연행을 통하여서 신학문과 새문물 등을 배우고 연구하여 북경의 관리나 선비들과 시문을 논하고 서문을 받아온 조선의 선비들은 토론하고 자랑거리로 삼았는데, 이 같은 풍토가 만연했다. 홍대용도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가 바쁘게 유리창 거리 서점가로 달려가서 책을 사고 한양에서 부탁받은 물건들을 구입하였다.

해를 넘겨서 1766년 1월 26일 비장 이 기성이 한양에서 부탁받은 안경을 사고자 유리창 거리에 갔다가 어느 서점에서 선비로 보이는 중국인들이 책을 보고 있었는데, 좋은 안경을 쓰고 있어서 필담으로 팔라고 하였다. 두 선비는 이 기성의 부탁대로 흔쾌히 안경을 벗어주며 서점을 급히 나가버렸다. 어찌나 고맙고 미안해서 다음 날 서점상 주인에게 물어물어 그들을 찾았는데, 그들은 절강성 항주에서 향시에 합격하여 북경에서 진사과를 본 선비들이었다. 그들은 정양문 근처 건정동에 숙소를 정해놓고 과거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홍대용은 너무 그 뜻이 감사해서 두 선비를 찾아가 크게 사례를 했는데, 그 계기로 그들과 교류가 시작되었다. 자주 두 선비와 만남이 있게 되자 갈수록 깊은 정이 더해 갔다. 항주 출신 엄성 반정균 육비라는 젊은 선비로 그들과 나눈 대화를 모아놓은 것이 ‘건정동 필담’이란 책이다. 그 책은 후세에 전해오다가 1921년~1923년 북경에 중국학 연구원으로 왔던 후지쓰카 지카시라는 일본학자의 눈에 띠게 되었다. 유리창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된 그 책을 호기심과 관심 속에서 조선과 연행에 관련된 문헌을 많이 구입한 그는 1926년에 신설한 서울경성제국대학에서 중국철학강좌 담임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 모은 수 천 권의 서적과 고문서, 서화, 간찰, 탁본류 1.000여 점을 수집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기 전에 그 많은 고문서를 가지고 고향인 일본 도쿄로 가져갔다.

후지쓰카는 한국에 있을 때 고문서와 골동품을 사들였는데, 그런 과정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사귐이 깊었다. 그중에서도 소전 손재형선생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 때 추사의 세한도가 후지쓰카의 수중에 있음을 항상 마음에 두던 차에 도쿄의 공습이 한창이던 1945년 소전 선생은 더 늦기 전에 세한도를 찾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후지쓰카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세한도를 팔 것을 진심으로 말했다. 그의 집앞에 하숙을 정하고 조석으로 90일간 문안인사를 드리며 정성을 쏟았다.

후지쓰카는 처음엔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소전 선생의 간곡한 정성에 감동하였는지 어느 날 아침 숙소로 연락을 해왔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자 후지쓰카는 결심을 한 표정을 지었다. 세한도란, 제주도에 유배중인 추사에게 많은 중국의 신간서적을 구입해 배달해 준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의 갸륵한 정성에 감사를 느낀 나머지 그에게 그려준 그림이었다. 바로 그런 세한도는 청조문화의 완성판이자 상징일 수 있는데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넘겨주면서 한 마디 했다.

“내가 세한도를 다시 조선에 보내는 것은 첫째 소전이 조선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정성이 있었음이요, 둘째는 그대가 세한도를 오래 간직할 수 있음이다. 내가 세한도를 돈 받고 판다면 지하에 계신 추사선생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더구나 우리는 그 분을 사숙하는 동문이 아닌가?”

그 후 후지쓰카는 돌아가시고 2005년 과천문화원 관계자들이 그의 아들이 병상에 있을 때 일본을 방문했다. 그 때 그의 아들은 아버지께서 평생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모은 귀한 자료들을 연구비 200만엔을 보태서 기증한 일이 있었다. 국경을 넘는 아름다운 미담이 아닐 수 없었다.

각설하고, 홍대용이 북경에 머문 동안 항주에서 온 임성 반정균 육버와 같이 서로 필담으로 시고 짓고 조선과 중국의 풍습의 차이, 관리제도에 대해서도 깊은 토론을 했다. 그러면서 깊은 우정을 나누다가 귀국길에 맞추어 농별의 정을 나누게 된다. 그 후에도 국경을 넘나들은 서신을 통해서 이역만리까지 서로의 안부와 시문이 오갔다. 연행에서 돌아온 홍대용은 자주 모이는 북학파 선비들과 중국에서 가져온 건정동 필담서를 돌려가면서 서로 읽고 또 읽었으며, 북학파 선비들은 홍대용의 처지를 부러워하였다. 그러면서 중국 사신단에 끼여 북경을 두루 보고 유리창 거리를 활보하면서 중국문물을 한껏 누리고 싶어했다.

그 후 1778년에는 사은 진수사로 이덕무와 박제가는 연행길에 오르게 된다. 이덕무는 연행 후 ‘입연기’란 연행록을 남겼는데, 3월 17일 한양을 떠나 북경에 5월 15일에 도착하여 자금성 동쪽 조양문 근처 서관에 숙소를 정하고 유리창 탐방에 들어간다.

당시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서쾌라고 하는 책판매 영업사원 같은 것이 있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책을 주문 받고 파는 실정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유리창 거리 책방순례를 시작하고 보니 말문이 막혔다. 서점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수많은 서점마다 책이 9단 10단으로 쌓여져 상아띠지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히고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으며 기가 팍 죽었다고 쓰고 있다. 유리창 거리는 당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의 문화거리였던 것이다. 승수당, 문성당, 경우당, 문수당 , 오류거 등 많은 서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선비인 이 운호는 유리창 서사기에서 오류거 서점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서쪽으로 가면 근래에 처음 열었는데 오래된 책이 몹시 많다. 문수당과 함께 모두 매년 소주에서 책을 구입하여 배에 싣고 온다. 오류거에는 황천오씨의 장서가 많다. 진신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사인 오기진 집안의 물건이다. 그 여러 아우들이 가산을 아껴 책을 모았는데, 마침내 능히 지키지 못했다”

홍대용도 담헌서 외집의 유리창조에서도 유리창 거리의 책방풍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책방은 일곱 곳이다. 세 벽을 빙 둘러 10여 층의 시렁을 매달았는데, 상아 띠지가 가지런하고 매질마다 표지가 있다. 헌책방의 책을 헤아려 보아도 이에 수만 권은 됨직하다. 얼굴을 들고 한참 있으면 책의 제목을 두루 살피기도 못했는데 눈이 이미 어질해진다”

라고 적었다.

정조시대에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문체반정의 장본인 연암 박지원은 1780년 비교적 늦게 연행길에 오르게 된다. 건륭제 70회 생일 사절단으로 가게 된 삼종형 박 명원의 자제군관의 직분으로 북경에 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연행을 통하여서 연암 박지원은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일본판 열하일기, 타이완판 열하일기, 북경 열하일기가 출판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연암은 북경에 도착한 지 4일 만에 열하로 떠나야 한다는 삼종형의 말을 듣고 허탈해 했다. 건륭제의 생일 축하연의 장소가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변경되면서 무박나흘 밤낮을 자지도 먹지도 않고 죽을힘을 다해서 건륭제 축수연에 참석하고 보름 만에 다시 못 올 번한 북경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연암의 체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많은 중국인들과 선비 및 지식인을 만나면서 그의 호방한 성격과 호탕한 술 실력에 재치와 유머를 실은 걸죽한 말(필담)로 상대방을 압도하였다.

연암은 청나라의 문물을 숭배하는 선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귀국하여 친구들과 연행에 대해서도 자랑이나 청나라 문물에 대해 일체의 말을 아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초정 박제가는 북경의 연행을 네 번이나 다녀오는 보기 드물게 행운을 얻은 조선의 선비로. 북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대단했다. 북경의 유리창 거리에는 박제가의 유명세 때문에 가짜 박제가의 글씨가 나돌아 다닐 정도가 되었다니 청나라 문물을 흠모하고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대표적인 조선의 선비였다.

청나라의 실용적인 문물에 대해서 ‘북학의’라는 책을 써서 정조왕에게 바침으로 조선에서도 실용적이고 편리한 마차, 배, 수레, 수차 등을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박제가는 서얼출신이었다. 네 번째 연행을 다녀온 후 1801년 9월 김대비와 심지환을 버방하는 벽보의 배후로 연루되어 유배되기에 이르렀는데,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그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다.

추사는 순조 9년(1809년) 동지사 겸 사은사로 이조판서인 아버지 김노경의 자제군관의 신분으로 북경에 연행하게 된다. 10월 28일 한양을 출발하여 12월초 북경에 도착했다. 다음 해 2월까지 북경에 머문다. 먼저 연행에 참여했던 선배 선비들로부터 연행에 대해 깊은 지식과 북경에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북경에 비교적 짧은 40여 일간을 머물며 추사의 삶 속에서 잊지 못할 만남이 두 번 있었는데, 옹방강과의 만남이 있다. 옹방강은 추사를 만날 당시 79세의 노학자로 청나라 지식인 사회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서동파의 화신이랄 정도로 동파를 흠모하여 사숙이던 중국 최고의 학자였다.

그 때 추사는 24세의 새파란 조선의 젊은 선비였다. 옹방강은 단번에 추사를 알아보고,“바다 동쪽에 이 같은 영재가 있었던가” 하면서 ‘경수문장 해동제일’이라고 화선지에 옹방강이 직접 써 준 일이 있었다. 또 그의 아들 옹수곤과도 깊은 교유를 하면서 귀국 후에도 계속 정이 오갔다. 그리고 또 한 분의 만남이 있었으니 완원과의 만남이다. 추사는 많은 호를 가지고 있기로 유명한데 그 중에 완당이라는 호를 자주 썼는데 중국 북경에서 만난 완원 선생의 호를 따서 완당이라 한 것을 보면 추사는 완원 선생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알 수 있다.

완원은 중국 과거 진사과에 급제한 선비로서 북경의 관리로 이름을 떨치는 한편 조선의 사신들과도 깊은 교유를 하던 차에 추사와 만나게 되었다. 추사에 대한 인물됨을 조선의 선비들로부터 익히 듣고 있던 차였다. 당시 완원은 47세로 추사를 처음 본 순간,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고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맞이할 만큼 극진한 예우를 했다. 자신이 쓰던 거실 ‘태화쌍비지관’으로 추사를 안내하고 희대의 명차인 용단승설차를 직접 달여 추사를 각별히 환대했다. 추사가 조선의 최고 예술가로 추앙받고 독자적인 추사체를 개발한 것이 이러한 만남과 자신만의 노력이 있음이 아니었을까.

옹방강과 완원 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큰 학자들과 청나라의 지식인들과 교유를 통해 더욱 세련된 청조문화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해 2월 1일 추사의 귀국 송별연도 유별나게 벌어졌다. 유리창 거리 근처에 있는 법화사에 딸린 요리집에서 그동안 교류했던 중국의 많은 선비들과 송별의 정을 나누고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물론 추사의 북경 40여 일은 바쁜 나날로 보내지만 유리창 거리의 서점과 서화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로 조선선비들의 단골 책방 주인인 오류거 도정상과도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추사는 청나라 새 문물에 대해서 깊은 이해력을 갖고 있는 조선의 몇 안 되는 선비 중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과의 차와 서법을 승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강세항, 유금, 이서구 등 조선의 내노라하는 많은 선비들이 연행할 때마다 이 곳 유리창 거리를 보고 배우고 느끼면서 귀국하였을 것이다. 이는 조선의 왕들중에 문무를 겸하고 학문을 좋아했던 인문학에 대한 높은 경지를 이룬 정조왕이 있었기에 더욱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조는 사회적으로 늘 소외되고 버림받은 서얼출신이었지만 개혁적이고 재주 있는 선비들을 고루 등용하여 나라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명군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정조대왕은 조선의 문예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 결과 연암은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를 탄생시틸 수 있었고,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조선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을 가르치고 만든 분이 정조왕이 아니었던가. 또 추사 같이 유배의 고통 속에서도 조선 예술의 세계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는 추사체의 완성자가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리 일행은 조선의 선비들이 연행와서 걷고 활보했던 유리창 거리지만 지금은 쇠락하여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를 걸으면서 잠시 조선의 선비들을 머릿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여행의 맛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