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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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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문의 창가에서 105)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 빈손 갖고 왔다가, 갈 때도 숨기고 갈 호주머니 하나 없이 알몸으로 돌아간다. 다만 이승에 사는 동안 많은 것들을 만져보고 써보고 먹고 마시고 기뻐하면서 즐기다 홀연히 다 두고 떠나는 여행객이다. 결국 걸을 수 있는 때가 내 인생이다. 무엇을 더 채우려고 발버둥 치는가?

 

포브스에 아시아 최고의 기부 왕으로 선정된 분이 있다.

평생을 거지같이 벌어서 천사처럼 쓰겠다.”고 악착같이 10개의 계열사를 만들어서 평생 모은 돈 17000억 원을 기부하신 분이다.

1958년부터 프라스틱을 주워서 양동이를 만들기 시작하신 분으로 2002년에는 관정장학재단을 만들어서 매년 2,000명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신 분이다.

그 선생이 관정 <이 종환> 회장이다.

평생 모은 재산 17000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한 관정(冠廷) 이 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3일 오전 148, 100세의 나이로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일찍이 장학재단을 만들어 매년 국내외 명문대 재학생1,000명 안팎으로 150억 원 정도를 지급했다. 이렇게 지급한 장학생이 23년간 12000여 명, 금액으로2700억 원이며, 박사학위를 받은 장학생만 750명이다.

2012년엔 600억원을 기부해 서울대 전자도서관을 지어줬다. 서울대 사상 최다액 기부자이기도 하다.

말년에한국의 노벨상을 만들고 싶어 했고, 생전에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꿈이었다. 관정 이종환 회장님 아니 선생님!!

그의 교육재단은 13일 아침 이종환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불과 3주전까지도 김해, 밀양, 구미에 있는 공장을 다니던 현역CEO였다. 재단측은 이 명예회장을세계 최고령100CEO’로 등재하기위해 기네스북본사와 협의 하던 중이 었다.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고를 졸업한 뒤,1944년 일본 메이지대(明治大) 경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1945년 일본 측 학도병으로 끌려가 소련, 만주 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사선을 넘너들기도 했다.

이 회장은 해방 후두번째 인생을 산다.”며 부국강병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1958년 플라스틱 신문물로 인기를 끌던 당시, 플라스틱 사출기로 컵, 바가지 등을 만들어 팔면서 큰돈을 벌었다. 이후 포장 포장용 필름과 콘텐서용 필름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해 수출에 기여했다.

1970년대 국내유일 애자(전봇대 등에 설치하던 절연용 지지물) 생산업체인 고려애자공업을 키웠다. 이후 삼영중공업 등 16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삼영그룹까지 만들었다.

1980년대 미국 유학을 보냈던 둘째 아들이 난치병으로 꿈을 피우지 못하자,‘일류 인재 육성을 평생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우리가 가진 건 사람밖에 없다. 사람을 키워야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자는 말을 자주 했다.

 

2015년엔 국내 최초 “1조원 장학재단이 됐다.

이 명예회장은 최근 까지도 남아있던 자투리 재산인 부동산, 현금 등 300억원을 정리해 재단에 넣었다고 한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그사이 부동산 가치등이 오르면서 총17000억 원이 됐다. 개인이 설립한 재단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그는 평소돈을 벌 때는 천사처럼 벌 수 없지만, 쓸 때는 천사처럼 쓰련다는 말을 했다. 공수래(空手來),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라는 말도 스스로 만들었다.“인생을 빈손으로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에 가득 채운 뒤에 그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란 의미다.

평소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를 주로 먹으면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자장면 할아버지로도 불렸다. 그의 건강비결은 절주와 규칙적인 생활이다.

60~70대부터는 모든 식사에 드레싱이 없는 야채를 먼저 먹었고, 술은 하루에 와인 한잔을 넘기지 않았다. 90대중반까지 골프를 즐겼던에이지슈터(age shooter)한 라운드를 자신의 나이 이하 타수로 마치는 사람)였다.

그는 눈을 감기전 가족과 지인들에게정도(正道)를 지켜라. 결국 정도가 이긴다. 재단을 영속되게 잘 운영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 그는용서 할 줄 아는 삶을 살라는 말을 남겼다. 장남 이준석 삼영화학 회장은아버지 뜻을 잘 받을겠다고 말했다고 재단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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