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우리는 지혜의 샘을 스스로 퍼 올려야 행복하다>
오종근(동신대 교수)
학술조사를 나가면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하는 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열심히 일을 하기에 차 한 잔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학생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기회도 되겠기에 그리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곤궁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표정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글을 읽다가 어느 성인이 “어떤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고 하고, 만약 중생을 제도했다고 말하면 그것은 성인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 외의 더 깊은 뜻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굳이 대답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본다.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교화이다. 그런데 교화는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자기편으로 꼬드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빼앗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참 삶의 길을 알려주는 것과, 자기가 의도하는 조직을 만들거나 강화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웨에서 한 말은 어느 성인이 자기편을 강화하려는 속셈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궁극의 깨달음을 이룬 이로서의 자기 자신까지도 내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세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출세간적인 의미에서까지도 자신을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인이 철저하게 버리고 비우고 지우고 낮추는 모습에서, 다 놓아버린 그 자리에서 평화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끌어낼 수 있다. 사업실패로 고통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끄러진 김에 쉬어 갈 수”도 있다. 가진 것 없음을 활용해서, 잃거나 빼앗길 걱정이 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평화로움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은 도저히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교화란 깨달음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주는 것인데, 그 안내판이라는 것도 주소 지번이 표시된 도시의 길이 아니다. 정해진 길이 없는 마음 씀에 관한 것이므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또 상대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세상에 없던 지혜를 성인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본래부터 있던 것을 알아보게 하는데 불과하다. 그나마 상대의 본래 성품에, 삶의 실상을 여실히 보고 평화롭게 마음먹고 행동하고 그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위대한 성인의 설법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성인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큰 깨달음으로 향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이미 세상에 있던 지혜를 터득하고 골라서 받아들인 이의 공이지, 성인이 깨달음의 지혜를 제작해 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깨달음의 공이 스승인 성인에게 있지 않고, 교화를 받은 제자 또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한에 대해서, 성인 또는 어떤 이가 특허 같은 것을 받아 놓은 것도 아니므로, “마음대로 찾아서 써도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다운 삶이나 행복의 길을 지하수에 비유한다면, 깨달음이란 바로 그것을 펴 쓰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꽉 차 있는 행복의 샘물을 퍼 쓰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고 선택이므로, 성인의 허락을 받거나 성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다만 행복을 마음껏 퍼 쓰는데 주의할 점이 잇다. 이기는 것, 마음대로 되는 것, 돈, 권력, 명예로 변환시켜서 쓰려고 하면 곤란하다. 이기고 뜻대로 되고 돈과 명예를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갖고 못 가짐에 상관없이, 삶을 맛있게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만드는 드라마와 그 배경으로 나오는 산, 바다, 도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고요하면서도 밝은 평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의 지하수를 스스로 퍼 올려야 행복하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