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춘신군(春申君)은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헐이고 성은 황이다. 그는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유학하여 보고 들은 바가 넓었을 뿐 아니라 초나라의 경양왕을 섬겼는데, 경양왕은 변설에 뛰어난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보다 먼저 진나라 소왕은 장군 백기를 내보내 한나라와 위나라를 화양에서 격파하고 위나라 장수인 망묘를 사로잡았다. 이에 한나라와 위나라는 굴복하여 진나라를 섬겼다. 그후 소왕은 백기에게 명하여 한나라·위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를 치게 하고는 군사를 일으키려 했다. 마침 황헐이 조나라 사신으로 진나라에 이르러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진나라는 장수 백기를 보내 초나라를 공격하여 무군과 금종군을 탈취했고, 도읍인 언 땅을 함락했으며 동쪽으로 경릉까지 이르렀다. 이에 초나라 경양왕은 동쪽의 진현으로 도읍을 옮겼다.
황헐은 일찍이 초나라 희왕이 꼬임에 빠져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억류당한 뒤 결국에는 진나라에서 객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경양왕은 희왕의 아들인 까닭에 진나라는 그를 업신여겼다. 황헐은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키기만 하면 일거에 초나라를 쳐부술 것으로 여겨 두려워했다. 이에 글을 올려 진나라 소왕을 달랬다.
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신이 듣자니 대왕께서는 초나라를 치려고 하신다는데 이는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두 호랑이가 싸우면 그 이득은 힘없는 개가 취할 것이므로 그럴 바에는 서로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의 땅은 두루 퍼져 있어서 천하의 서쪽과 북쪽의 경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진나라처럼 전차 1만 대를 갖춘 나라는 사람이 생겨난 이래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한나라의 재상으로 성교(盛橋)를 추천하여 보냈으며, 그를 통해 한나라 땅을 진나라에 복속시켰습니다. 이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도 백 리의 땅을 얻은 것이니 대왕께서는 참으로 유능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대왕께서는 군사를 풀어 위나라를 쳐 대량의 성문을 막았으며, 하내를 공략하고 이어 연과 산조, 허, 도 땅을 얻어 형 땅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위나라 군사는 구름처럼 흩어져 감히 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다시 출병하여 포, 연, 수원 땅을 병합했으며 인과 평구 땅을 치고 황과 제양, 영성을 포위함으로써 마침내 위나라를 항복시켰습니다.
대왕께서는 다시 복수와 미 땅의 북쪽을 떼어 제나라와 진나라를 연결하는 허리 부분을 차지하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등골을 끊어 놓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후들이 여섯 차례나 연합했지만 감히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대왕의 위력은 이미 충분히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만일 지금까지의 공적과 위력을 지키면서 공략하고 빼앗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인의를 두텁게 하시어 후환을 없앤다면 삼왕(하나라의 우 임금, 상나라의 탕 임금,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의 업적도 대왕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사람들이 많고 병력이 강한 것만을 믿고 위나라를 격파한 위세를 몰아 힘으로써 제후들을 신하로 삼으려 한다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시경>에는 “시작하는 자는 적지 않으나 끝이 좋은 자는 드물다”고 했고, <역경>에는 “여우가 물을 건너려면 그 꼬리를 적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경>에서는 다시 “병사를 잘 다스리는 자는 멀리 가서 징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멀리 있는 초나라는 진나라 편이고, 가까이 있는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의 적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는 도중에 두 나라가 대왕께 잘한다고 믿는 것은,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적은 용서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때는 놓쳐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나라와 진나라를 속이려는 것이 아닐까 신은 염려됩니다. 이는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에 덕을 베푼 일이 없이 대대로 원한만을 사왔기 때문입니다.
대저 한나라와 위나라의 부자와 형제들이 진나라로 인해 죽은 것이 십대나 됩니다. 그리하여 나라는 황폐해졌고 사직과 종묘도 무너졌습니다. 백성들은 배가 갈리고 창자가 끊어졌으며 목이 떨어지고 턱은 젖혀졌습니다. 또한 머리와 몸이 나뉘어져 해골은 진토에 나뒹굽니다. 국경에서 바라보면 부자와 노역자들이 목이 매이고 손이 묶여 포로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 위에 늘어서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은 홀로 슬퍼할 뿐 제삿밥마저 얻어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가족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남의 노비와 첩으로 전락한 자가 온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진나라에게는 금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그들의 힘을 빌려 초나라를 치려고 하시니 어찌 실책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대왕을 위한 계책을 생각해 보건대 초나라와 화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하나로 합쳐 한나라에 대처한다면 한나라는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다시 동산의 험준한 곳에 군사를 배치하고 곡하를 잘 다스린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대왕의 관내후가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10만의 군사로 한나라의 수도인 정에 주둔하면 위나라는 간담이 서늘해 질 것입니다. 위나라의 허와 언릉은 성안에 갇히게 되고 상채와 소릉은 왕래가 끊기게 되어 위나라 역시 대왕의 관내후가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초나라와 화친하여 전차 만 대를 가진 한나라와 위나라를 관내후로 만들고 제나라와 국경을 맞닿게 되면 제나라 서쪽 땅은 팔짱을 끼고서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대왕의 땅은 서해에서부터 동해에 걸치게 되어 천하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연나라와 조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고, 제나라와 초나라는 연나라와 조나라의 원조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 연나라와 조나라를 공포에 떨게 하고 제나라와 초나라를 뒤흔든다면 이들 네 나라는 힘들여 공격하지 않아도 복종시킬 수가 있습니다.
진나라 소왕이 말했다.
“과연 옳은 말이군.”
그리고는 백기의 출병을 중지시켰다. 그러자 한나라와 위나라는 동시에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선물을 바치고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했다. 황헐은 이 약속을 받은 뒤 초나라로 돌아갔다. 초나라는 황헐을 태자 완과 함께 불모로 진나라에 들여보냈다.
신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초나라 경양왕이 병석에 누웠건만 진나라 왕은 태자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 무렵 태자는 진나라 재상 응후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황헐은 응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상께서는 초나라 태자에게 호의를 갖고 계십니까?”
응후가 대답했다.
“그렇소.”
황헐이 다시 말했다.
“초나라 왕은 지금 몹시 앓고 있는데 아마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나라로서는 초나라 태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인 줄로 압니다. 태자가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면 진나라를 진심으로 섬기게 될 것이고, 재상의 은덕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동맹국과 가까워지고 만승의 나라에 덕을 베푸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태자는 함양의 한 평민에 불과할 것이며, 초나라가 새 태자를 옹립하게 되면 틀림없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동맹국을 잃고 만승의 나라와 화친을 끊는 것은 결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재상께서는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응후가 이 일을 진나라 왕에게 전하자 진나라 왕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태자의 스승을 먼저 보내 병세를 살피게 하고 돌아오면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시오.”
황헐은 초나라 태자에게 계책을 올렸다.
“진나라가 태자를 억류하고 있는 것은 태자를 이용해 큰 이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 태자에게는 진나라에 이익을 줄 만한 힘이 없으니 저는 이 점이 걱정됩니다. 초나라에는 양문군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만일 태자께서 계시지 않을 때 대왕께서 승하하시면 분명 양문군의 아들이 그 뒤를 잇게 될 것이니, 태자께서는 종묘를 섬길 수 없게 됩니다. 태자께서는 사자와 함께 진나라를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 남아 죽음을 각오하고 뒤처리를 하겠습니다.”
초나라 태자는 변장을 하고 초나라 사신을 마부로 삼아 관문을 벗어났다. 황헐은 관사에 남아 태자의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손님들의 방문을 거절했다. 그는 태자가 진나라 병사들이 뒤쫓을 없을 만큼 벗어났다고 여겼을 때 진나라 소왕에게 직접 고했다.
“초나라 태자는 이미 귀국길에 올라 멀리 갔습니다. 이 황헐의 죄는 죽어 마땅하오니 제게 죽음을 내려 주시옵소서,”
소왕은 크게 노하여 자결할 것을 명하려 하자 응후가 말했다.
“황헐은 신하된 자로 자기 주인을 위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태자가 즉위하면 황헐이 등용될 게 뻔합니다. 죄를 묻지 마시고 그대로 돌려보내 초나라와 화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황헐을 돌려보냈는데, 그가 초나라에 돌아온 지 석 달 만에 경양왕은 죽고 태자 완이 즉위했다. 그가 곧 고열왕이다. 고열왕 원년에 왕은 황헐을 재상으로 삼았으며 춘선군에 봉해 회수 북쪽의 열두 개 현을 하사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황헐은 초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회수 북쪽땅은 제나리와 잇닿아 있어 일단 일이 생기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곳이므로 차라리 군으로 만들어 직접 다스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회수 북쪽의 열두 개 현을 나라에 바치고 그 대신 강동에 봉지를 청했다. 고열왕은 허락했고 춘신군은 옛날 오나라의 성터에 성을 쌓고 자신의 봉읍으로 삼았다.
진나라와 초나라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으로 머문 지 수 년 후 초나라는 예전의 강성함을 되찾았다. 한번은 조나라의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냈다. 춘신군은 사신을 관사에 머물게 했는데 조나라 사신이 초나라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대모로 만든 비녀를 꽂고 주옥으로 장식한 칼집을 차고 춘신군의 빈객들을 만날 것을 청했다. 춘신군에게는 3천 명의 빈객이 있었는데 그중 상등 빈객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고 조나라 사신을 만났다. ㅇ;에 조나라 사신은 매우 부끄러워 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14년 후 진나라에서는 장양왕이 즉위했다. 진나라 왕은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아 문신후로 봉한 후 동주를 공략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2년 되던 해 천하의 제후들은 진나라의 계속된 침략을 걱정하여 서로 합종하고 서쪽의 진나라를 치기로 했다. 초나라 왕이 합종의 수장이 되고 춘신군이 그 일을 맡았다. 연합군이 합곡관까지 이르자 진나라의 군사들이 공격해 왔다. 제후들의 군사는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초나라 고열왕은 그 책임을 춘신군에게 돌렸고, 이 일로 춘신군과 왕은 사이가 벌어졌다.
춘신군의 빈객 중 관진 출신의 주영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초나라는 강한데 공으로 인해 쇠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왕께서 재위할 때 초나라는 20년 동안이나 진나라와 화친했고,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진나라가 맹애의 요새를 넘어와 초나라를 치기가 불편했고, 또한 동주와 서주의 길을 빌려야 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를 등지고 초나라를 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나라는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까닭에 허와 언릉 땅을 잃는다 해도 아까워할 형편이 못 됩니다. 그러므로 위나라는 허 땅을 진나라에 떼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나라 군사는 초나라의 도읍인 진 땅과 16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보건대 앞으로 진나라와 초나라는 매일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에 초나라는 도읍을 진에서 수춘으로 옮겼다. 그러자 진나라는 위나라를 야왕으로 옮긴 뒤 그곳에 동군을 설치했다. 춘신군은 그후 자신의 봉지로 가서 재상의 정무를 보았다.
정확한 결단은 몸을 보존시킨다
초나라 고열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춘신군은 이 일을 걱정하여 아이를 낳을 만한 부인을 여럿 구하여 왕에게 바쳤건만 끝내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 무렵 조나라 이원이란 자가 자신의 여동생을 초나라 왕에게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초나라 왕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오래 지나면 왕의 총애를 잃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춘신군을 섬기기로 하고 그의 가신이 되었다. 얼마 후 이원은 휴가를 얻어 귀국했다가 일부러 늦게 돌아갔다. 춘신군이 늦어진 사실을 묻자 이원이 대답했다.
“제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제 누이동생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신과 함께 술을 마시다 보니 그만 이렇게 늦었습니다.”
춘신군이 물었다.
“폐백은 받았소?”
“아직 안 받았습니다.”
춘신군이 다시 물었다.
“누이동생을 한 번 만나볼 수 있겠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원은 누이동생을 춘신군에게 바쳤고 춘신군은 그녀를 총애했다. 후에 누이동생이 임신한 것을 안 이원은 그녀와 함께 계책을 꾸몄다. 그녀는 기회를 엿본 후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나라 대왕께서는 상공을 친형제보다도 소중히 여기시는데 상공께서는 재상으로 있은 지 20여 년이나 되었고 대왕께서는 아드님이 없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승하하신다면 왕의 형제분이 즉위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새 왕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중용되겠지요. 그때 가서도 상공께서는 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상공께서는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 오랫동안 정사를 맡다 보니 대왕의 형제분들을 노엽게 한 일이 많았습니다. 실로 왕의 형제분이 즉위하게 되면 틀림없이 상공께 화가 미칠 것이니 재상의 인수나 강동의 봉읍을 어찌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아이를 가졌는데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상공의 총애를 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으니 상공께서 저를 초나라 왕에게 바치면 대왕께서는 반드시 저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만약 하늘의 도움으로 제가 아들을 낳는다면, 상공의 아드님이 곧 왕이 되는 것이고 초나라는 상공의 나라가 될 것인즉, 누가 상공께 뜻하지 않는 화를 입히겠습니까?“
이에 춘신군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녀를 다른 집에 가 있게 한 후 왕에게 진언했다. 초나라 왕은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들인 후 총애했는데, 얼마 안 가서 아들을 낳았다. 이에 왕이 태자로 세우고 이원의 누이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이원 또한 초나라 왕에게 중용되어 정무를 맡아 보았다.
이원은 누이동생이 왕후가 되고 그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의 입에서 비밀이 누설되거나 그 일로 그가 교만해지지 않을까 두려워 그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다.
복과 불행은 항상 뜻하지 않게 오는 법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5년이 되던 해, 고열왕이 병석에 누웠다. 그러자 주영이 춘신군을 찾아와 말했다.
“세상에는 생각하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때가 있고, 또 생각하지도 않던 화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지금 상공께서는 생각하지도 않던 화와 복이 찾아올 수 있는 세상에 살고 계십니다. 또한 믿을 수 없는 군왕을 섬기고 계신즉 화를 막을 수 있는 뜻밖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춘신군이 물었다.
“뜻하지 않던 복이란 무엇이오?”
“상공께서는 초나라 재상으로 봉직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말이 재상이지 사실상 초나라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병석에 누워 있는 왕은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상공께서는 나이 어린 군주를 도와서 대신 나라를 다스리게 될 터이니 이는 이윤이나 주공처럼 주군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정권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제후라 일컫고 초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하지 않던 복이란 것입니다.”
춘신군이 물었다.
“그렇다면 뜻하지 않던 화란 무엇이오?”
“이원은 상공 때문에 권력을 잡지 못한다고 여겨 상공을 원수로 보고 오래전부터 결사대를 길러 왔습니다. 초나라 왕이 세상을 뜨면 틀림없이 궁에 들어가 권력을 장악하고 상공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뜻하지 않던 화란 것입니다.”
“뜻하지 않던 사람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오?”
“상공께서는 저를 낭중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원은 초나라 왕이 세상을 뜨면 반드시 먼저 궁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상공을 위해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하지 않던 사람이란 것입니다.”
춘신군이 말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원은 약한 사람이오. 나는 또 그를 잘 대해 주고 있소, 어찌 감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주영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달아났다.
그로부터 17일이 지나 고열왕이 죽자 과연 이원이 먼저 궁으로 들어가 극문 안에 결사대를 매복시켰다. 춘신군이 극문으로 들어서자 이원의 결사대는 춘신군을 죽인 후 그 머리를 극문 밖으로 내던졌다. 이어 아전들을 보내 춘신군 일가를 모조리 죽였다. 이원의 누이동생이 춘신군의 총애를 받아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초나라 유왕이다. 이 해는 진나라의 시황제가 즉위한 지 9년이 되는 해다. 이때 진나라는 노애가 모반을 일으키려다가 들켜 삼족이 멸해졌으며 여불위도 재상자리에서 쫓겨났다.(여불위 열전 참조)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돌아보았는데 그야말로 웅장했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한 것이나 자신의 몸을 던져 태자를 귀국시킨 일은 참으로 밝은 행동이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후에 이원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은 늙어 무능해진 탓이 아니겠는가. 속담에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으면 오히려 그로 인해 화를 당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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