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⑧

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⑨

서울로

광주에서 서울은 먼 거리였다. 서울은 나로서는 미지의 세계였다. 다행히 형님이 성균관대 상학과에 다니고 있었기에 조금 기댈 곳은 있었다. 서울에 가려면 주로 야간 완행열차를 저녁 7시경에 광주에서 탔다. 서울까지 10시간 이상 걸렸기에 새벽 5시경이면 서울역에 도착한다. 경쟁이 심해서인지 서울의 아침은 일찍 시작이 된다. 이종사촌 형님(김동수)댁에 신세를 지고 있던 형님이 내가 올라 온다고 하니 돈암동 성북 경찰서 앞에 하숙집을 얻었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두 사람이 하숙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겨울인데다 대학 입학시험이 끝날 때까지만 하숙 하기로 했다.

하숙집 주인은 과부로 두 딸과 시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친절히 대해 주었고 특히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이던 딸들이 학생아저씨라면서 나를 따랐다. 배를 깔고 엎드려서 공부하고 있으면 내 등에 말을 타는 것처럼 올라타서 좋다고 야단이었다. 지금 계산해 보면 그 집 큰 딸도 60살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겠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대학에도 진학 못하고 쇠고랑을 찰뻔했다. 그때만 해도 전기가 밤11시까지만 공급이 되었으므로 그 시간 이후에는 촛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책상에 않아 있으면 찬바람이 발에서부터 불어와서 나중에는 손까지 시리다. 연탄불이 미치는 아랫목만 겨우 따뜻했다. 그때쯤이면 형님은 이불 속에서 콜콜 침묵에 빠진다. 너무 추워서 잠깐 형님 등 뒤에서 몸을 녹인다는 게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클클한 냄새에 눈을 떠 보니 방안이 환하지 않는가! 성냥을 켜댔던 성냥개비가 수북이 쌓여 있는 촛불 통에 불이 붙은 것이다. 내가 깰 때는 책상과 책에도 불이 붙었다. 겁에 잔뜩 질린 나는 순간적으로 덮고 있던 이불을 책상위로 덮었다. 다행히 불은 꺼지고 순탄치만 아니한 내 생활은 계속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촌놈이 서울 상경례를 톡톡히 치렀다.

l 제1차 어려운 결정

대학 진학 목표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였지만 그 당시 육군사관학교 시험이12월쯤 해서 일반대학 보다 먼저 치러졌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의식주가 다 해결되고, 취업이 자동으로 보장되었으며, 정치가 불안했던 시절이라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광고 졸업 동기 중에서 그 해에 5명 그 다음 해에 25명 해서30명이 육사에 진학했다. 서울대 시험보기 전에 육사시험을 보는 것도 경험을 얻을 겸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육사 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육사 입학 시험에 전국에서 1등으로 합격해 버린 것이다.

내 앞길이 여기에서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서울대에 진학 한다고 해도 시골에서 서울에 둘, 셋씩 대학에 보낸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경제 사정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으며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 들이려고 노력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육군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했다. 즉 필기 시험은 끝이 났지만 신체검사와 체력검사가 남았다. 체력검사는 다른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장거리 달리기가 문제였다. 20분내에 연병장을 몇 바퀴 도는 것이었다. 자신이 없다고 했더니 일등 합격자이기 때문에 고려가 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은 연병장을 돌 때 내가 지나가면 진행요원 병사들이 박수를 치면서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러는 바람에 정해진 시간 내에 전 코스를 완주 할 수 있어서 무난히 통과 했다. 신체검사는 폐병초기 징후가 있다고 약까지 처방을 해 주었고 모자, 교복을 맞추고 어였한 육군사관학교 예비 생도가 되었다.

인생길은 원래 일직선이 아닌 듯 싶다. 구불구불 몇 구비를 돌고 도는게 도전적이고 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 당시 고3들이 모두 꿈을 꾸는 것이 서울대 합격이다. 나는 준비를 다 했는데 시험도 보지 못하면 그 또한 섭섭하고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진학하지 아니하더라도 시험은 보기로 했다. 시험날은 날씨도 추웠다. 나는 아무 부담 없이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합격 이였다. 합격하고 나니 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골 아버지로부터 서울대학교 입학 등록을 보내온 것이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무슨 영문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서울대 합격 후 나도 마음의 갈등을 하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된 내용인 즉 아버지 친구분 감정근씨(한갑수 전 장관 장인)의 큰 아들이 육군사관학교 의무실 책임 장교로 있었다. 김 대위께서 자기 부친께 육사에 가지 말고 서울대에 진학하라고 적극 만류하시고 김정근씨가 입학금을 줄 테니 서울대에 보내라고 하신 거란다. 1960년 입학 당시는 4.19 와 5.16 전이라 군인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고민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육사 입학식 날에는 미안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하숙집에서 이불을 둘러 덮고 불안에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