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여연스님의 茶 고전강의 (24)
다구
「다구」장에서도 우리는 포다(池茶) 즉, 녹차인 잎차의 이야기가 아님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원문에 의하면 '상저옹(桑苧翁)은 육우가 차를 달이는데 물 끓이는 그릇을 은으로 하였으나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해 도자기를 주로 썼는데 도자기는 깨지기 쉽고 다루기 힘들어 오래 쓸 수가 없어 다시 은 그릇을 사용했다' 는 것이다.
여기서 자다법(煮茶法)을 얘기한 것을 보면 단차를 음용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심하게 궁구할 일이 자다(煮茶) 즉, 단차는 다구에 직접 끓이지 않고 물만 끓이고 또 다른 다구(차호나 다관)로 차를 옮겨 우려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다신전』에서는 은으로 만든 다구는 부호가에서 장만하고, 청빈하고 검소한 차살림을 꾸리는 집에서는 석표(錫瓢)인 주석 다구를 사용해도 차색과 차맛에 그렇게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철(銅鐵)은 가려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주석과 동철의 다구는 오늘날에도 둘 다 썩 좋은 그릇은 아니다. 주석과 동철은 건강을 정말 해치는 것이다.
차를 돋보이게 하는 좋은 다구
옛날 당나라 육우시대에는 도자기가 대단히 귀한 그릇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처럼 도자기 산법이 발달된 시대에는 도자기만큼 찻그릇으로 좋은 것이 더 있겠는가. 물론 오늘날 예술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턱없이 비싼 그야말로 사치한 도자기 찻그릇은 삼가고 삼가 해야 할 일이다.
찻그릇 즉 다구의 용도로서 적당한 그릇이면 그것이 좋은 다구이다. 손으로 빚어 장작가마로 그릇을 구웠다는 등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그릇을 빚는 일을 수업하며 배웠다는 과대선전이나 또는 일본 어느 지방에서 전시회 한 번 하고 나면 하룻밤 사이에 천장지기로 값이 올라가는 우리 다도의 현실은 그야말로 도깨비 판이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작품으로서 훌륭하고 차의 용기로 손색이 없는 것일지라도 찻그릇은 검소하고 검박(儉朴)한 값을 가져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장작가마로 굽던 가스가마로 굽던 그 그릇 자체가 좋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치 차가 아무리 맛이 없고 색이 누르고 향이 없어도 손으로 만든 우전차라면 그것이 좋은 것으로 둔갑하는 것과 똑 같은 현실이 찻그릇의 세계에서도 형용되고 있다. 그런 도깨비 판을 만든 도공들도 문제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의 안목이 없어 그냥 남이 비싸게 찻그릇을 구입했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믿고 선전하는 것이 더 문제다. 비싸게 사는 사람이 없으면 그런 그릇을 만들겠는가? 기왕 나온 말이니 이 기회에 도공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작품과 상품을 만들되 귀하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릇은 작품 값으로 받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그 작품의 작가가 쉽게 상품으로 찻그릇을 비즈니스 하라는 얘기다.
400년의 전통으로 유명한 일본의 사스마 야끼의 가게나 아리다 야끼, 구다니 야끼, 가라쓰, 비젠 야끼의 도방들은 다 그렇게 장사를 하고 있다. 상품으로 내는 찻그릇들이 싸고 많아야 차 마시는 인구가 늘어나고 오히려 비즈니스도 잘 될 것이다.
『다신전』「다구」장에서는 단순하게 찻물 끓이는 그릇이나 차 우리는 그릇만 얘기했지만 오늘날의 다구들은 그 종류와 쓰임새가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지 모른다. 옛날에 없던 찻물 식히는 귀뚝배기(귀사발, 숙우)에서부터, 심지어 차호뚜껑 놓는 그릇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거기에다가 찻잎을 꺼내는 차측도 도자기에서부터 대나무나 목재로 얼마나 다양한 물건이 나오고 있는가. 그런데 『다신전』의 「다구」장은 겨우 자다에 쓰이는 그릇만 이야기했다.
더구나 절목에 나오는 찻잔의 내용은 또 어떤가. 그야말로 남백인 푸른 잔은 눈처럼 밝은 하얀 설백의 빛깔을 최고의 물건으로 삼고, 빛이 감도는 흰색은 그 다음으로 치고 있다.
다시 말해 설백의 눈처럼 하얀 색이 감도는 찻잔이나 푸른색이 어리는 남백의 찻잔은 우려낸 차의 빛깔인 비취색을 해치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얀 백자의 찻잔이 옛날에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에도 어디 한두 가지의 색상만 있던가. 수백 가지가 넘는 백색이 있다. 상아빛 감도는 하얀 색상에서 우유 빛 떠도는 유백색, 여름별의 뭉게구름 빛, 맑고 투명한 얼음 빛 담은 하얀 색 찻잔, 아이스크림 녹은 빛을 닮은 찾잔 등 말해서 무엇하랴.
찻잔은 그렇더라도 수천, 수백의 차 종류에서 저마다 옮겨지는 차색들은 또 얼마나 기이하고 신기한 색상이던가. 같은 차일지라도 온도마다 차의 분량만큼 달라지는 차빛의 색상, 각각의 차의 종류에 따라 기호나 취미에 따라 차색을 선택할 때 어느 색깔의 찻잔이 딱히 제일 으뜸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초의스님이 얘기하는 설백과 남백의 찻그릇은 그야말로 당신이 법제한 또는 그 시대의 최고로 잘 빚어진 녹차의 빛깔인 옥색, 비취색, 청취한 차색을 가장 잘 받쳐주고 돋보이게 하는 색상으로 두 빛깔의 찻잔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의 찻잔은 차인이 기호하는 색상의 빛을 잘 투영해 주는 것으로 으뜸으로 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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