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용혈암지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 개최
‘다산과 강진 용혈’의 저자 ‘정민’ 교수 기조강연과 토론
강진군은 지난 12월 22일(목) 오후 14시 강진아트홀에서 ‘강진 용혈암지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용혈암지는 백련결사로 널리 알려진 만덕사(현 백련사)의 8국사 가운데 제2세 정명국사, 제4세 진정국사, 제7세 진감국사가 수행한 유서 깊은 수행 공간이자 고려 불교의 한 성지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용혈암지를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강진 용혈암지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 전문가 2명의 발표와 각 발표에 대한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기조강연는 ‘다산과 강진 용혈’을 주제로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나섰다. 주제발표는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 이사장·권혁주 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의 ‘강진 용혈암지 발굴조사와 출토유물’,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의 ‘강진 용혈암지의 문화재적 가치와 활용방안’ 순으로 이어졌다.
종합토론은 황호균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을 좌장으로 박예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정경성 전라남도 농업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각 주제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을 담당해 다양한 시각에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용혈암은 2013년~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2동과 석열유구 2기 등이 확인되었고, 여래상과 보살상, 나한상 등 다량의 청자・소조불상이 출토된 바 있다. 특히 석가삼존과 16나한상으로 제작한 청자는 제작한 매우 드문 사례이고,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강진 고려청자 요지에서 생산된 불상으로 파악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추후 정밀발굴조사와 문화재지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불교문화의 성지로 기려지고, 나아가 이를 연계한 강진군의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지난 발굴조사를 통해 용혈암지가 고려시대 고승의 수행 공간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이 남긴 문헌과 발굴조사 성과를 종합하면 용혈암지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향후 강진군은 용혈암복원추진위원회 등 민간단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용혈암지의 문화재지정 이후 보존·활용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진 용혈암지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
◐기조강연- 다산과 강진 용혈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1. 다산이 호명한 공간, 용혈
강진 용혈은 고려 원묘국사 이래 정명국사와 전책국사, 진감국사 등 8국사의 숨결이 닿았던 고려불교의 성지다. 당시 국사의 법음을 듣고자 고관대작의 수레가 줄지어 달려와 멎춰 섰떤 암자터는 긴 세월 페허로 버려졌다. 용혈의 장소성을 발견해 새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다산이었다. 다산 이전까지 용혈은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무꾼의 길 뿐인 빈터였다가 한 위대한 영혼의 눈길이 닿으면서 반짝 되살아났고, 그가 떠나자 다시 잡목으로 무몰된 공간으로 지금껏 방치되었다.
2. 다산과 혜장
다산이 용혈을 알게 된 것은 아암 혜장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아암을 통해 천책국사의 시문집 ‘호산록(湖山錄)’을 접하게 된 다산은, 전책 시문의 높은 수준에 깜짝 놀라 ‘제천책시권(題天頙詩卷)’이란 글을 남겨 그를 예찬했다. 이후 그가 남긴 향기를 찾아 해마다 제자들을 이끌고 그의 숨결이 깃든 용혈로 봄맞이를 떠나곤 했다.
3. 8국사의 발견과 ‘만덕사고려팔국사각상량문(萬德寺高麗八國師閣上梁文)’
현재 강진 백련사 만경루(萬景樓)에 걸려있는 이 현판은 모두 11개의 목판을 이어 붙여, 매 판마다 31자 5행을 정갈한 해서로 썼다. 총 1,537자, 길이 약 180m 내외의 크기다. 1817년 아암(兒菴) 혜장(惠藏)의 제자이자 다산에게서 배웠던 철경(掣鯨) 응언(應彦)이 지 것으로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다산이 지은 글이다. 철경 응언은 다산이 그를 ‘철경당게(掣鯨堂偈)’를 지어준 적이 있을 만큼 다산이 아꼈던 제자였다.
다산이 철경 응언의 이름을 빌려 이 글을 지은 것은 절집의 상량문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에 철경 응언이 만덕사 주지 직임을 맡고 있었던 듯하다.
4. 다산과 천책
다산의 눈길이 용혈로 쏠렸던 것 또한 천책국사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고려 때 두 문호로 이규보와 함께 천책을 꼽았으리만치 다산은 천책에 대해 진심이었다. 다산은 ‘호산록’의 놀라운 성취에 감복했고, 이 같은 대문호가 까맣게 잊힌 채 그대로 묻혀버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후 다산은 해마다 제자들을 이끌고 용혈로 봄소풍을 떠남으로써 용혈은 다산을 통해 일종의 순례지로 거듭났다. 제자 초의에게 준 증언 등에도 천책국사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천책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산이 ‘동문선’에서 천책과 용혈 관련 시문을 무더기로 발견하면서 용혈의 장소성은 새로운 국면을 밪게된다. 다산은 제자 이정을 서울까지 출장 보내 ‘동문선’을 뒤져 관련 글을 배껴 오게 했고, 이 놀라운 발견은 다산을 크게 고무시켰다. 1814년 ‘만덕사지’ 편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기어 자홍 등을 대동하고 용혈암 터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이곳의 의미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책 속에 이를 반영하게 하였다.
5. 표피장막책가도(豹皮帳幕冊架圖)에서 조우한 다산과 천책
다산의 천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표피장막책가도’를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호피장막도로 불리는 8폭 병풍이다. 6폭은 모두 표범의 문양만을 그렸고, 제 5폭과 6폭에 장막을 살짝 걷어 그 안족에 책가도를 그려놓았다. 이중 제 6폭 화면 중앙에 돋보기가 얹힌 서첩 한권이 펄쳐져 있다. 화면 속의 서첩은 시고(詩稿)다. 모두 세 수의 시가 적혀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소장 <표피장막책가도> 8폭 병풍 속 책가도 부분
6. 용혈소풍 ‘용혈행(龍穴行)’과 ‘유용혈기(遊龍穴記)’
다산의 용혈행(龍穴行)은 1808년 5월 11일에 지은 시다. 원 제목은 ‘용혈행. 5월 11일 윤문거(尹文擧)등 여러 사람과 놀았는데, 학포(學圃)가 따라갔다.(龍穴行. 五月十一日,與尹文擧諸人游, 圃兒從.)’이다. 학포는 이때 처음 강진에서 내려온 둘째 아들 정학유의 초명이다.
갯가 날씨 새벽 무렵 천둥과 비가 개자
부옇게 가렸던 산 말쑥하게 씻기었네.
숲 기운 차고 맑아 가을날과 다름없고
쭉 뻗은 구름발은 기이한 형세 있네.
주인이 나에게 용혈 유람 권하자
아이들 팔짝팔짝 기세를 못 꺾겠네.
오랜 병에 입성이 온통 엉망이지만
번거롭게 주섬주섬 억지로 방 나선다.
돌길을 걸을 때는 비틀댈까 근심타가
외나무다리 지난 뒤론 힘든 것을 잊었다네.
논 속의 새싹은 푸르게 무늬 지고
풀 사이 작은 딸기 단사 덩이처럼 붉다.
석문에 접어들자 냇물 빛이 차갑고
(중략)
어부 집엔 물안개가 가로로 걸려있고
먼바다 푸른 물결 빛을 받아 반짝인다
숲 까치는 노루 튀자 홀연 놀라 깍깍대고
들 송아지 돌아가는 사람 따라 가는구나.
황혼 무렵 말 타고서 지각에 당도하니
벼들가지 말쑥한 달 수레바퀴만 하구나.
7언 52구 364자에 달하는 장시다. 다산초당 이주 후에 제자들과 가진 첫 번째 소풍을 기록했다. 초당을 출발해서 석문과 소석문을 지나 용혈로 가는 도정이 자세하다. 용혈공간에 대한 묘사도 보인다.
7. 용혈암지의 공간 배치
강진 용혈암지의 공간은 어떻게 배치되고 구성되었을까? 다산이 1814년 삼초 정호와 기어 자굉을 데리고 갔떤 답사에서 돌아와 지은 유용혈기 속에 가장 자세하다. 긍레서 다산은 용혈을 이렇게 묘사했다.
다만 마치 소라 껍질처럼 휑하니 깊게 파여 괴상하게 보이는 것이 용혈이다. 쟁글대며 쏟아지는 물이 절벽을 따라 흘러서 내려가는 것은 용천(龍泉)이다. 용천의 동편에 한 구역의 평탄한 땅이 있는데, 이곳이 용혈암의 옛터다. 골짝 어귀 곁의 깎은 듯이 높은 대(臺)는 옛날에 누각이 서있던 곳일 뿐이다.
용혈로부터 남쪽으로 가서 산마루 하나를 넘어, 산을 따라 서쪽으로 수백 걸음을 가면 상사동(上寺洞)이라는 골짜기가 나온다. 시내를 따라 돌비탈을 밟고 올라가면 작은 바위 구멍이 서편 벼랑 곁에 있다. 구멍을 통해 들어가 한 구역의 평탄한 땅을 얻으니, 이것은 옛 암자의 터라고 한다. 그 남쪽 봉우리 위에는 평평하고 넓은 대(臺)가 있다. 바위는 천연으로 이루어졌으나 사람의 힘으로 빈틈을 채워서 앉을 수가 있고 멀리 바라볼 수도 있다. 동쪽 벼랑 곁에 역시 작은 대가 있는데, 모두 다 이름이 없다. (중략)
정오는 처음에는 용혈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괘탑암(掛塔菴)에서 살았다. 괘탑암이란 것은 오늘날 이른바 상사(上寺), 즉 웃절이다. 그 남쪽 봉우리에 대(臺)가 있는 것은 정오가 세운 것으로 능허대(凌虛臺)라고 부른다. 그 동쪽 벼랑에 작은 대가 있는 것 또한 정오가 세운 것이다. 이름이 초은정(招隱亭)이다. 능허대는 원정(元貞) 을미년(1295)에 세웠고, 초은정은 대덕(大德) 정유년(1297)에 이루어졌다.
(김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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