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우리이장님
대구면 용운리 항동마을
정순필이장(45)
용운리 항동마을은 면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4km지점에 위치한 산간마을로 대구면에서도 오지마을에 속한다. 천관산에서 내려와 우뚝 솟은 천태산이 마을 뒤와 좌우로 산줄기가 길게 늘어져 항아리 속처럼 감싸 안고 있으며 천태종의 본사인 정수사가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산림이 좋고 물과 흙, 기후가 맞아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요지터로서 많은 가마터들이 산재해 있는 곳으로 곳곳이 문화재법에 묶여 있기도 하다. 아직도 주위에는 많은 도자편과 가마터가 널려있어서 고려시대 청자골 임을 입증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다양한 청자편들은 도자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는 사적지이다. 산비탈에 있는 밭은 온통 자갈투성이여서 오랜 세월동안 깎이고 깎인 바위돌이 구르고 굴러서 이 많은 자갈밭을 이루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자갈투성이인 밭과 논에서 곡식을 길러내어 곡기를 연명하고 살았던 옛 어른들의 굴곡진 삶이 산천 곳곳에서 어른거린다. 그런데도 이곳에 많은 도요지가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큰 마을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항동마을은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한 골로 흐른다 하여 ‘한골’이라 불리어 오다가 해방 후 항동으로 개칭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취락구조가 골짜기를 따라 골목길이 형성되듯 군데군데 분포되어 있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항동마을의 정순필이장(45)은 올해 처음 이장을 맡고 있다. 대구면에서 가장 젊은 이장이라는 정이장은 10년 전 대구면 농협 농기계센터에서 근무한 적도 있으며, 면에서 떡방앗간도 잘 운영했다. 낯빛이 선하게 보이는 정이장이 마음 고생했던 지난 삶을 허물없이 이야기 했다. 열심히 살았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아 혼자 살고 있다는 정이장은 5년 전에 고향마을로 돌아와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50마지기 논농사와 7마리의 소를 키우면서 축사 등의 용접 일을 따로 하고 있는 정이장의 수입은 년 오천만원은 된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항동마을은 26가호에 60여명이 살고 있다. 그 중 8명이 40~50대 젊은 층을 이루므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 사람이 많은 편이다. 아홉 집이 축산업을 하고 있으며 소100두까지 키우는 사람도 있고, 평균 30두씩을 키우며 좋은 벌이를 하기 때문에 알짜배기 농업인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가족처럼 지내는 편이어서 제사만 지내어도 함께 음식을 나누는 미풍양속을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되어 회관 리모델링을 했으며 동네 안길 흙 담을 새로 해서인지 마을길이 정갈하게 느껴진다. 또한 올해 마무리 사업으로 민박집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이장은 “초등학교때만 해도 학생수가 130여명이 되었어요. 이미 저수지로 들어갔지만요. 저수지에도 가마터가 있었는데 아마 그때 옮겼다고 한 것 같아요. 또 일부 땅들이 문화재에 속한 부분이 있어서 내 돈 들여 논을 합치려 해도 안 되는 곳도 있고요. 축사를 지으려 해도 허가가 쉽게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러 채의 축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축산업하기에 여러 가지 여건이 잘 맞는 마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동마을은 청자의 옥빛이 도는 아름다운 저수지가 코앞에 펼쳐져 있으면서도 식수 부족에 불편을 겪고 있다. 이유는 관정이 있지만 배관이 낡아서인지 중간에서 물이 많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이장은 “하루 한 번씩 저 산에 있는 물탱크에 올라 다니고 있습니다. 관정에서는 물을 계속 품어 올리고 있으나 알 수 없는 곳에서 새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물탱크를 막았다 다시 틀었다를 반복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랫동네에서 물을 틀어 놓으면 윗마을인 운곡(정수사마을)에서는 화장실물도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라며 물 부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상수도 사업소에서 세 군데 새고 있는 배관을 찾아냈지만 그래도 계속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전체 배관을 바꾸지 않는 한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항동마을 윗마을에는 오래된 고찰인 정수사가 있어 버스가 지나다니고 있으며 외지 차들도 빈번하게 드나든다. 그러나 도로가 마을 주거지 한 가운데를 관통하게 되어 있어서 집들이 울리기도 하고 소음과 먼지로 인해 점점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저수지쪽 외곽으로 새 도로가 내년 6월까지 완공된다. 항동마을에 소재한 정수사는 신라 애장왕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초에는 이곳 천계산 중턱에 묘적사와 쌍계사가 있었는데 묘적사에는 천불을 모셨으며, 쌍계사에는 북과 종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왜구의 침략으로 모두 불에 타버린 후 1574년에 산인 사민이 옛 절 그대로를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하여 경내에 크고 작은 건물을 37채나 보유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세가 기울면서 융성했던 위업은 일부분 흔적만 남겨졌고 절을 관리할 여력이 부족하여 천불과 큰북 등을 해남 대흥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달구지에 싣고 가던 천불과 큰북이 슬픔에 목이 매여서였던지 사당리 당전마을 앞을 지날 때 큰 북이 한 업이 울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용운리 일원은 3년 전 녹차테마파크 조성사업이 추진되면서 관광지로 변모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이 중단되면서 논을 팔았던 주민들은 약간의 예치금을 회사에 넣어 놓고 농사를 그대로 짓고 있는 상태다. 정이장은 “동네에서는 테마파크가 빨리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요. 사람이 귀한 곳인데, 한사람이라도 더 지나다니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 윗마을에 정수사가 있어 외지차량들이 마을을 많이 드나드는 편입니다. 정수사는 문화재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마을에 축사가 많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방범CC카메라 설치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항동마을은 가장 조용한 산골마을이면서도 현재 강진에서 가장 시끄러운 마을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것은 정이장도 용운리 가마터가 훼손되었다는 문제제기 등으로 인해 생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실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항동마을 논에는 짚 묶음만 사방에 널려있고 보리갈이를 하는 사람들의 바쁜 일손 뿐 너무도 조용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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