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면 월남리 남도햇빛교회에서 사목을 하고 계시는 박부민 목사님께서 ‘녹향월촌’을 타이틀로 이번주부터 연작시와 산문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시인이기도한 박목사님은 잃어가는 남도의 정서와 햇빛과 사람살이의 따뜻함을 아름다운 시적언어로 들려주실 것입니다.
<녹향월촌> 시와 산문1 / 박부민 시인
설날
산록의 까치들 호시절을 누비네
허공에서 눈싸움하며 왁자지껄 웃어대네
불 켠 추억 끄집어내어 창문에 걸어두니
내리는 눈발 빈 가슴에 차곡차곡 엉기네
아궁이 풍로 돌려 못내 아쉬움 털어 넣듯
송진 묻은 장작 거푸 쪼개 넣던 세밑
굴뚝은 뻐금뻐금 횡죽 살담배 태우고
밤 깎으시던 누런 할아버지 곁에서
사람살이 굳어진 속통 단아하게 깎는 법을 배우며
쫀득쫀득 인절미 볼 붉힌 홍시에 찍어먹었지
닳아빠진 고무신 앞머리에 종일 하얀 쌀꽃이 피면
복슬강아지 발자국 덧찍으며 마실 돌던 흙담길
그립네 정 깊이 모여들던 아늑한 앞마당
성에 낀 감잎들 사그락사그락 달빛 덮는 소리
얼부푼 밤엔 칼 시린 시절의 손바닥 화롯불에 녹이며
깊은 사랑을 톡톡 구워주시던 할머니의
탈바가지 얼굴 주름 주름마다 맺히던 동백꽃
겹 바른 창호지에 이울던 종짓불도
내내 붉고 구수하였네
돌아오거든 다시 뜨거운 아랫목으로 차지게 엉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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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산록에 까치들이 날개를 털며 부산하게 시절을 누빈다. 정답게 모여들던 얼굴들이 유독 그립다. 설날을 준비하는 할머니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 솔가지 타는 아궁이에 풍로를 돌리고 장작을 쪼개 넣으시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 굴뚝에 솟아나던 연기, 맛깔스러운 음식들의 향기.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웃들 친지들과도 활짝 핀 얼굴들로 서로 축복해주던 그 따뜻함이 몹시 그립다. 큰 명절 설날에는 이렇듯이 세파의 한시름을 놓고 인생의 시린 손바닥을 잠시나마 화롯불에 녹이며 함께 사랑을 채워주던 아늑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요즘엔 그 따뜻함이 많이 사라지고 힘들어 굳어진 표정의 귀향 행렬이 모두를 안쓰럽게 한다. 왜 이리 서글퍼진 세상인가. 왜 이리 싸락눈처럼 쓸쓸해진 남도인가. 경제만이 전부는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참된 행복을 함께 누리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데... 그 불빛 같은 추억 속의 설날처럼 사시사철 사랑의 공동체가 마을마다 집마다 되살아나는 남도 땅이 되기를 소원한다. 온 마을과 이웃과 가족들을 함께 끈끈히 엉기게 하던 화롯불 같은 그 뜨거운 온정의 구심점이 남도의 고을에서나마 더욱 활활 지펴지기를. <녹향월촌에서 박부민=============
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 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한국크리스쳔시인협회회원.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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