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초고령화시대(87회)
성전면 거목마을 강예복 할머니(85)
“부부 정 없다고 애기 안 낳은다요?”
“여그 와서 일곱 개 났어라.”
열여섯 나이에 병영면 중고리로 시집갔다가 큰아들이 다섯 살 되던 무렵 친정동네로 이사 왔다는 강할머니. 거목마을에 와서 7남매나 더 낳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아따, 세상사는 것 따라서 왔제. 중고리는 땅이 비싸고 여그는 산골이라 더 싼게로 두마지기 팔아서 네 마지기 샀응게 더 났지라.”
일제시대 딸들의 공출을 면하기 위해 일찌감치 시집을 보냈고, 강할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나이에 느닷없이 시집을 갔다.
“째깐헌것을······ 꼭 쥐만해가고 그런 것을 보냈으니, 맨날 내빼고 울고 그랬지.”
친정동네로 이사 올 때 남편이 말하기를 꼭 다섯 해만 살다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늘어났고 살림은 더욱 빠듯해졌다. 게다가 남편의 성격이 불같아서 한바탕씩 집안이 시끄러워지면 난리가 난 것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8남매씩이나 두었으니, 정은 따로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강할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정색을 하신다.
“성깔이 개똥강아지라, 이뼈 안 헌 사람은 애기 안 난 돠알.”
한번은 집에 불을 지르겠다며 방에 땔나무를 열심히 들여놓던 남편이 지붕으로 쇠스랑을 갖고 올라갔다. 이웃집까지 불이 번지면 안 된다며 집과 이웃집 사이를 쇠스랑으로 파기 시작했다. 겁이 난 강할머니가 큰집 사촌오빠에게 달려가 알렸고, 마침 면에서 나온 사람이 있어 말리면서 결국 남편이 지붕에서 내려왔던 일이었다.
“성깔이 괴팍혀서 쪼까만 그러면 난리여라. 애들도 기언시 잡아서 끝장을 낸게 무서워 했지라.”
자식들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훨훨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수없이 접고 살았다는 강할머니다. 기고만장하던 남편이 시름시름 앓다가 72세에 돌아가시던 때에는 불쌍 하더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신다.
“영감탱이 술이라면 좋아서 야단이더니, 아파서 갑디다. 옆에가 있다가 괜찮다 싶어서 다른 방에 가서 잠깐 쉰 게로 아들이 와서 숨이 가 부렀다고 혀서 가본게, 죽었던 사람이 다시 눈을 뜨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갑디다.”
아이들을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남편을 보면 가만있을 수 없어 몇 마디 하게 되고, 그러면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쫓겨나면 멀리가지도 못하고 길 가 고구마 넝쿨 속으로 들어가서 안보이겠지 하고 숨어 있지만, 남편은 쫓아오다가 돌멩이를 계속 집어 던졌다. 그곳에 있다가는 돌멩이에 맞아 다 죽겠다 싶어,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숨었지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가슴이 미어졌다. 아이를 업고 보듬고 잡을 손마저 모자라서 치마자락을 잡고 따라오던 아이들을 이끌고 숨을 곳을 찾을 때, 눈물이 펑펑 쏟아져 앞을 가렸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차마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던 그때.
“아야, 우리 이러고 살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어쩌먼 쓰겄냐? 함께 죽어 불자.”
그러자, 둘째 아들이 펄펄 뛰어댔다.
“안죽어, 안죽어, 나 안죽을라요.”
다섯 해만 살고 나오겠다고 장담하던 남편은 먼저 떠났다. 다섯 해가 몇 다섯 해가 된지 모르게 세월이 흐르고 아들들을 초등학교라도 보내야 하니, 언제나 힘든 세월이었다.
“오래살면 나쁜 꼴 봐서 못써라.”
정신없이 살았지만, 지나온 날을 생각하면 짜증만 난다는 강할머니다. 좋은 일이 무엇인지 얼른 생각나지 않고, 먼저 보낸 아들 하나가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혀 있었다. 아침나절 밭둑에 널려 있는 쑥을 캐와 다듬고 있다는 강할머니는 쑥으로 국도 끓이고, 전도 붙이고, 쑥버무리기도 한다며, 깨끗이 다듬었다.
“낸 몸땡이 성가신것도 그런디, 찐득헌 정이 없이 살았으니 그런게로 빌어 묵을 시상을 살었지라.”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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