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남편 “죽어서 안 만나고 싶어, 만나믄 으짜까!”
강진군 신전면 사초리 405번지
98세 황공순 할머니
사초리는 아름다운 해변마을이다 간척지를 막기 전에는 더 아름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바닷물이 토방 앞까지 밀려와 찰싹거리고 썰물 때면 갯벌이 질펀하게 드러냈을 것이었다.
사초리의 간척사업은 조선시대 말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91년도까지 4차로 완공된 사내 간척지는 강진지역의 지도를 바뀌게 할 정도로 대규모 간척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100여ha가 넘는 갯벌을 잃게 됨으로써 어업 기반이 상당부분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갯벌의 김 바지락 굴 고막 낙지 등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동네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 갯벌에서 평생 엎드려 사신 황공순 할머니를 만났다. 백발의 짧은 커트 머리를 내밀며 다시 검은 머리가 하나씩 나온다고 하시는 할머니는 “으짜까, 어서 죽어야 슬건디” 하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금방 무릎이 아프다며 눈시울도 적셨다. 젊어서 살이 없던 할머니는 나이 들면서 몸이 난 후 무릎관절이 안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앞마당 감나무 텃밭에 삽질을 하시며 깨끗이 매어 놓곤 한다는 할머니의 손은 그야말로 나무등걸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는 평생 낙지를 대바구니로 펄펄 넘치게 잡아와 가족을 건사하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말리지 않으면 어느 때고 갯벌에 나가실 분이라고 한다. 술 담배는 전혀 안하셨는데 하루 세끼를 꼬박 꼬박 드셔야 하며 돼지고기 상추쌈을 특히 좋아하고 간식으로 고구마를 드신다고 한다. 평생 해물을 많이 잡고 살았지만 해물은 익혀서 드신다. 또 한가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사탕이며 하루에 한 봉지 두 봉지도 드신다고 했다.
“맥없이 그냥 아프다고 해가지고 죽어붓어. 배 아프다고 하더니 죽어불대······”
할머니가 39세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 말만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신다.
“나도 어서 죽어야 쓸건디 으짜까”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 빨리 만나고 싶으세요?”
“안 만나고 싶어, 만나문 으짜까······ 으짜까······”
유복자까지 모두 7남매를 두셨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은 것이 설 돌아온 것보다 재미지다고 하신다.
“생전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혔지 신도 못엮고 나락이나 이엉도 못이었어.”
그러나 평생 영감에 해로운 말 해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신문에 낸다고 하니 또다시
“으짜까······”
할아버지가 돈 보면 술 먹고 기생집에 가곤해서 마루 밑에 돈을 감추어 두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 때 환율이 바뀌면서 미리 그 돈을 바꾸지 않아 다 태워 버리기도 하였으며 때론 지붕 사이에 숨겨놓기도 했는데 어느새 쥐가 물어가 쫙쫙 찢어놓고 어디론가 없어졌단다.
“그런데도 왜 그리 자녀는 많이 두셨어요?”
“지앙네가 씨어댕께 자석을 났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래도 할머니는 복이 많으신 분이다. 바다 일을 하는 큰 손주(김준연51세, 김안님48세)가족과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흘에 한 번씩 전신목욕을 시켜드리며 정성껏 모시고 있다. 목욕 말이 나오자 할머니는 또 얼굴표정을 찡그렸다.
“제일 싫어, 목욕하는 게 제일 싫어, 으짜까······”
할머니가 돌아가실 고비도 서너 차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직까지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손주부부다. 지금도 모시고 있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그냥 어디 나갔다 올 때 할머니부터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 할머니가 집안에 계시다는 것이 큰 무게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갯벌이 드러나면 온 마을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갯것을 잡기위해 물장화를 신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앞이 바다가 아닌 논배미로 줄창 펼쳐져 있다. 그 옛날, 쌀 생산만이 살길이라고 했던 시절 간척지를 막고 벼 포기를 꽂았겠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갯것을 잡으면 곧 그게 큰 돈이 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기자는 잠시 그 옛날 사초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사리 때 서·남·북 삼면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사초리의 모습은 하나의 섬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럴 때 보름달이라도 떠서 온 바다에 내리비추면 아마 그 광경은 환상적이었을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같다고 해서 연화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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