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1)
-정수사(淨水寺) 가는 길-
*무명도공들의 얼이 살아 숨쉬는 정수사
매년 무명도공들에게 제사 지내는 도조사가 있는 곳 ---그들의 정신적 귀의처 역할
정수사를 가려면 먼저 청자박물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곳을 거치지 않고서는 가기가 어렵다. 청자박물관에서 시오리 쯤 북동쪽으로 가다보면 천개산 아래 금가락지처럼 자리 잡은 정수가가 있다. 정수사 가는 길은 마냥 한가롭고 조용하고 그윽하다. 길 양편으로 늘어선 벚나무가 병사들처럼 도열해 있는 느낌도 좋지만 왼쪽의 산세가 줄곧 이어져 항아리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도로다. 가다보면 용운리 저수지가 나타난다. 호수처럼 큰 저수지다. 겨울철 바람 불 때 지나가면 저수지 위에 일렁이는 물결이 마치 청자에 새겨진 학 떼를 연상케 한다.
저수지를 끼고 항동 마을을 지나면 낮은 산자락 가까이 굴속을 지나가는 듯 협곡의 기분을 자아내는데, 둥싯둥싯 솟은 바위틈으로 청류가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면 정수가가 슬그머니 자태를 드러낸다. 그런데, 우선 경내를 살펴보기 전에 사찰 뒤를 에워싼 천개산의 위용에 잠시 넋을 잃는다. 푸른 기운이 질질 흐르는 기세가 한 마리 청룡이 꿈틀대는 듯 등등하고 압도적이다. 갑자기 무주구천동 같은 심산유곡에 발길을 멈춘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정수사는 대자연의 위용과 그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사찰이다.
*왜 정수사는 무명도공들의 귀의처인가
어디 무명도공들 뿐이었겠는가. 도공들이 일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식솔들 또한 정수사를 찾아 부처님께 그저 좋은 그릇을 빚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으리라. 청정심(淸淨心).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마음이 아니면 청자의 푸른 빛깔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으리. 그 청정심을 갖기 위해 도공들의 기도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향토사학가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알린 고 차부진 선생의 증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대구 면장을 지낼 때인데, 많은 도공들이 정수사에서 기도를 했다는 문헌을 본 적이 있었으나 그 자료를 일본 사람들이 가져갔다는 내용이다. 증언도 그렇지만 지리적으로 보아도 확신이 드는 것은 사하촌인 항동까지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는 것이 그렇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문화가 고려불화와 함께 꽃피웠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도 더욱 그렇다.
이런 연유로 해서 정수사에는 무명도공들의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청자문화제가 시작할 때면 무명도공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위패를 모신 곳이 도조사이고 위패에는 고려시대 무명도공조상위패(高麗時代 無名陶工祖上位牌)라고 적혀 있다. 또한 고려청자 도공의 넋을 기리기 위한 혼불등까지 있다는 것도 결국 정수사와 도공과의 관계가 깊다는 것을 일반인에게 말해주고 있다.
정수사 주지 수현(首賢) 스님은 이처럼 청자와 깊은 연관이 있어 도조사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으나 도조사 건물이 4평 밖에 되지 않아 너무 비좁다고 말한다. 적어도 15평은 되어야 제사답게 지낼 수 있다는 의견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정수사
<정수사> 사적지에 따르면 정수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원년(800)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도선국사가 살아생전 지었을까 의아심이 생기는 것은 도선국사의 일대기를 살펴볼 때 <827-898>와 맞질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세운 절치고 도선국사가 안 들어간 사찰이 몇이나 될까. 어쨌든 월남사지를 보아도 월출산 산자락에는 많은 숫자의 암자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러므로로 정수사 역시 22개나 되는 암자가 천개산에 수박씨처럼 퍼져있었다는 것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수사 경내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은 전라남도 지방 유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해서 관음전, 천불전, 설법전, 약사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서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 세분이 모셔져 있다. 현재 짓고 있는 건물은 삼청루(三淸루)다. 3억원 공사비로 시작했다는 삼청루는 <정수사 사적지>의 기록에 의해 복원 중이다. 정수사에는 문화재 가치가 있는 후불탱화가 있다고 한다. 한 번 친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더니 워낙 커서 몇 사람이 거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화재 관계자의 말은 후불탱화가 다소 훼손되었는바 복원하면 문화재로 등록해주겠다고 약속 했다고 한다. 전문 화사(畵師)에게 맡길 경우 3천만원 정도가 든다며 수현 스님은 한숨을 내쉰다.
*임진왜란 직후 승군이 머물렀던 곳
“정수사는 임진왜란 직후 승군이 250명 가량 수용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밀양 표충사, 여수 흥국사와 함께 강진 정수사 세 곳에 분산 수용한 것은 전쟁을 끝낸 승군들이 쉬도록 할 목적도 있었지만, 해안지역의 경계를 소홀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증거로는 해남 대흥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사령장과 군호를 알리는 소랍 등이 그것인데, 해방 후 대흥사에서 가져오라고 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수현스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정수사는 호국불교도량이기도 하다. 승군 주둔시에 정수사가 가장 전성기였다는 것은 당시 가람 배치도를 보면 알 수 있고, 그 당시 삼청루의 주춧돌이 남아 있어 금년 완공을 목적으로 복원중이라고 덧붙였다.
주지 수연 스님의 법랍은 50세. 세속의 나이는 77세다. 대흥사 주지,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천운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본사가 정수사인 것은 부친이 스님이었고, 8형제 중 장남이었던 스님은 부친의 뒤를 이어 정수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35년간을 지켜왔다면서 이판사판에서 자신은 사판승이라고 자임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불사를 해왔지만, 열반할 때까지 정수사를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고금연륙교가 생기는 바람에 관광객들의 수가 늘어나고 특히 정수사는 청자문화제가 열리는 곳에 있으므로 40평 규모의 산사체험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 좀 꼭 써달라고 마지막 당부하는 스님을 보면서 영원한 ‘사판승: 절의 일을 도맡아 하는 스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 ;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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