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2> 무위사(無爲寺)를 찾아서
월출산 낮은 산자락에 위치한 무위사 가는 길은 초입부터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오르막도 없고 내리막도 없는 평탄한 길에서도 그렇지만 무위사를 둘러싼 산세의 포근함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무위사는 성전면소재지에서 광주 쪽으로 약간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3km 남짓 가면 이내 나타난다.
월출산 하면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산세를 연상하기 쉽다.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 보아도 월출산은 악산이요, 순전히 바위로만 구성된 산이다. 그런데 무위사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육산이 둘러싸고 있다. 강진 쪽의 월출산이 물론 흙으로 된 육산이지만 유독 무위사가 있는 곳은 낮기도 하려니와 바위 하나 구경하기 힘들 만큼 편안한 산자락에 들어 앉아 있다.
산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사천왕이다.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동방지국천왕,북방사문천왕의 사천왕이 퉁방울만한 두 눈을 부릅뜨며 사방을 진호(鎭護)하고 있다. 그러나 경내는 따뜻한 봄볕이 쪼속쪼속 내리쬐고 있어 마치 봄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가 한 점 연등처럼 경내를 더욱 환하게 밝혀주고 있고, 대웅전 뒤에는 동백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여전히 극락보전 안에 앉아 있는 부처님들도 이 봄날에 졸고 계셨다. 뿐인가. 바람 한 점 없는 고즈넉한 경내. 그래서 보존각이며 종각이며 요사채조차도 졸고 있는 듯 느껴진다.
성전면 월하리 1174번지.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참고문헌에 의하면 창건 당시 이름은 관음사였으나 신라 헌강왕 원년(서기 875년)에 도선국사가 중창하면서 갈옥사라 개칭하였고, 그 후 다시 고려 정종 원년(서기 946년)에 이르러서는 선각국사가 3창하여 모옥사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던 것이 조선 명종 10년(1555년) 태감선사가 4창하고 나서 사찰의 명칭이 무위사로 정해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무위사는 불교미술의 일번지
무위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목조건물이다.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국보 제13호이다. 건물의 구조형식이 수덕사 대웅전에 비유할 만큼 아름답게 장식되어 빼어난 건물이다. 그 극락보전 안에 보물1313호인 아미타후불벽화와 보물 1314호인 백의관음도가 있다. 극락보전 동측 내벽 중앙의 삼존불화와 서측 내벽 중앙의 아미타래영도를 비롯한 29점은 해체된 다음 모두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일반인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극락보전 안에 앉아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보물 1312호로써 조선초기 불상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무위사는 건물과 목조좌상과 벽화 모두가 국보이거나 보물이어서 불교미술의 일번지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극락보전 벽화에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한 노화사가 극락보전의 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내가 벽화를 그리는 100일 동안에는 그 누구도 극락보전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아서도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벽화를 그리는 동안 주지 스님은 그 안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벽화가 완성되는 100일 째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안에서는 파랑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는 문이 열리자 미처 그리다만 아미타삼존의 관음보살 그림에 점안(點眼)을 하려다가 그만 날아가 버렸다.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은 한국의 사찰벽화, 한국불교회화의 흐름, 극락보전의 벽화 31점을 소개하는 설명판이 있다.4칸으로 된 전시실에 는 2방 3방 4방이 모두 떼어낸 벽화를 보존하고 있다. 2방에는 삼존도, 아미타래영도, 오불도, 관음보살도 등 6점이고, 3방에는 관음보살도, 입불도, 지장보살도, 주악비천도 등11점이며, 4방에는 연화당초향로도,보상모란문도 등12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같은 보존처리는 강진군에서 시행을 하였고, 건국대학교 회화보존연구소에서 사업을 맡아 3억 3천의 사업비로 완료한 것이다. 2005년 6월 22일부터 9월 23일까지 기초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를 하였고, 같은 해 9월 24일부터 2006년 2월 23일까지 보존처리 작업을 한 것이다. 극락보전 2점과 박물관 29점 모두 31점의 벽화가 무위사에 있는 셈이다.
법정(法頂) 주지스님을 뵙고
본사(本寺)는 대흥사이고 몽산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법정스님의 법랍은 25년이다. 그동안 빳빳한 발심으로 용맹정진을 해 오셨기 때문일까. 선기(禪氣)가 동백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어깻죽지가 잘 펴지질 않는다.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사찰이어서 여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화재나 도난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스님은 무위사야말로 찾아온 사람이면 한결같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찰이라고 말한다. 때 묻지 않는 절, 소박한 느낌을 주는 절,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절이 무위사란 것이다. 중생은 그저 힘들게 살아간다고 말씀을 건네자 중생이 아프면 이 절에 사는 저인들 편하겠느냐며 웃는다. 일체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의 병도 생겼습니다. 그러니 일체중생의 병이 없게 되면 내 병도 나아질 것입니다. 유마거사(唯馬居士)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성보박물관에 안내자가 없다는 항변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그 일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절에서 사는 승려는 문지기가 아니지요. 성보박물관을 왜 안내 안하느냐고 묻겠지만 승려도 세속처럼 출장갈 일도 있고, 이런 저런 잡다한 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군에 성보박물관을 안내할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그 같은 사례가 없다는 거예요.”
“성보박물관이 있어서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문화재에 지원을 해주었으니까 일이지요. 그러나 나중 관리가 문제입니다. 전기가 고압으로 바뀌는 바람에 전기요금만도 150만원 가량 됩니다.”
“그런 고충도 있었군요.”
“지금의 사찰은 관광사찰이 아닙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려 하거나 뜰을 걸어보는 휴식의 공간이지요. 옛날에는 사찰만이 유일하게 가볼 곳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가볼만한 곳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의 목적이 여간 달라졌다고나 할까요.그래서 성보박물관의 아내 또한 비중이 있다는 거지요”
절도 살림을 해야 하고, 절도 사람 사는 곳이어서일까. 아무래도 애써 기자와의 만남을 피하려 하셨던 스님은 결국 참았던 고충을 털어놓고야만 셈이다.
그런데도 무위사는 언제 찾아가도 마음이 편해지는 절이다. 누구와 한껏 입씨름하다가도 무위사를 찾아가면 절로 마음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무위사, 영원한 우리의 휴식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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