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총각 장가 추진 위원회
지지난 주 금요일부터 급조된 모임입니다. 회원은 최연소 여섯 살부터 최연장자는 일흔 세 살의 남녀로 구성되었지요. 피를 나눈 혈족이 대다수지만 성 바지만도 모임결성의 주축이 된 임씨를 비롯해 김씨, 박씨, 윤씨 등등. 전적으로 한 사람을 위해 의기투합한 단체입니다. 많아서 탈이라는 정부 부처의 각종 위원회라지만 굳이 명칭을 대라시면 ‘윤총각 장가추진 위원회’가 되겠습니다.
윤총각을 처음 만난 것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을 훌쩍 거슬러, 윤총각이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대담하고, 활달하고, 개구지고, 거침없는 그 나이의 소년 특성을 고루 지닌, 외숙모 겸 과외선생 격인 제가 봐도 유달리 영특한 아이였지요. 달마다 치른 모의고사에서 스무 명 남짓한 제자들 중 매번 가장 우수한 성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상급학교도 척척 진학, 사춘기 시절 잠시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국립대학의 경영학과를 당당히 졸업하고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 모두들 윤총각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하지만 유유히 흐르는 물도 때때로 바위에 막히고 감돌고 에돌아야 할 뜻밖의 여울을 만난다고 뜻밖의 큰 사건이었지요.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장가도 안간 윤총각의 형이, 저의 시댁 장조카가 그만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때론 선의의 라이벌, 때론 누구보다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살 터울의 형의 죽음이 윤총각의 인생노선에 큰 파장을 일으켰을까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더니, 아니 일시에 때려치웠다고 표현해야 되는 게 맞아요.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 뛰어들어 몇 번의 성공과 실패로 부침을 거듭하면서, 그래요. 확실히 윤총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어요. 청춘사업은 도통 관심 밖이더라구요.
강요하다시피 떠민 몇 번의 맞선자리에서도 대부분 퇴자로 일관, 어느덧 나이가 마흔 둘. 결국 윤총각은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근심유발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그를 구원해 보고자 손아래 누이의 유치원생 조카들까지 동원되는 사태에 이르렀으니까요. 경행록에 이르기를 ‘사람의 성품이라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라’했거늘 무엇이 멀쩡한 청년의 마음 문을 그렇게 굳게 닫히게 했는지. 당사자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고통과 번민을 그 누군들 속속들이 알겠습니까. 삶은 사람의 준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사람의 관계로 이루어지며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지만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또한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걸 명철한 윤총각인들 모를 리가요. 이만 해서각설하고, 요 근래 기적처럼 딱 안성맞춤의 적당한 처자가, 그것도 예전에 둘이서 선을 본 남다른 인연까지 있는 처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녀를 향한 식구들, 아니 ‘윤총각 장가보내기 추진위’ 회원들의 구애작전은 참으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서툴기 그지없는 갑론을박의 작전회의가 밤새 이어집니다.
‘사랑은 기습적이다. 우산을 받쳐든 그 애의 살짝 흘러내린 멜빵바지 왼쪽 끝에서 사랑이 난입하기도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아이 뒤에서 부서지는 햇살은 유독 그 아이 뒤에서만 부서졌을 거라고 순간 믿게 된다.’ 형의 죽음과 함께 파묻은 줄 알았던 이성에 대한 ‘두근거림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 추스르고 막아버렸던 로맨스의 감정이 윤총각에게 되살아나기를 빌고 또 빕니다. 너무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유발된다는 우려에도 더 이상 진행 속도를 늦출 수가 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푸른 달빛 아래 처녀, 총각의 짝을 점지해주던 월하노인의 출현이 아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흰수염 노인의 비밀노트를 살짝 훔쳐보고도 싶습니다.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는 회의감도 적지 않습니다만 세상사 어느 일치고 아픔 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던가요. 두 사람 모두 서로가 지닌 이런저런 약점에 제발이지 눈 멀어 버리기를, 사랑의 콩깍지 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고가 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맹점, 기습적이라는 사랑의 감정이 두 사람 모두에게 기적처럼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요 며칠 내내 도대체 알 길 없는 두 사람의 눈빛을 살피느라 회원들은 전전긍긍입니다. 바라건 데 사랑의 풀무질을 시작으로 마치질, 담금질에 이어 마침내 벼리기 단계인 결혼에 까지, 내년부터 해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 명씩 불어나는 경사를 맞이하도록 여러분도 모두 모두 응원해 주세요. ‘윤총각 장가추진위원회 회우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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