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32> 폐교 /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폐교
세종대왕이랑 이순신장군이랑 책 읽는 소녀가 함께 늙고 있었다
호랑이랑 공룡이랑 기린이랑 코뿔소가 잠들고 있었다
백엽상이랑 토끼집이랑 철봉대가 삭고 있었다
플라타너스랑 벚나무가 울고 있었다
잡초랑 꽃들이 엉키고 있었다
창문들이 깨지고 있었다
이끼 낀 나도 있었다
녹슬고 있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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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의 보고에 따르면 1982년 이후 전국적으로 3천349개가 폐교된 가운데 지역별로는 전남이 718개(21.4%)로 가장 많다고 다. 폐교 중 2천56개(61.4%)는 매각, 830개(24.8%)는 임차하여 활용 중이며, 463개(13.8%)는 폐교상태로 방치되고 있는데 그 중 전남이 180개(28.9%)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또한 폐교가 교육적 용도로 쓰이는 예는 10%도 안 된다고 했다.
대부분 농어촌지역의 인구감소와 교사부족 때문에 폐교가 진행됐다는 것인데 마을 한 편에 잡초 무성하여 을씨년스런 폐교에 들러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우고 이젠 그만한 자녀나 손자 손녀들을 두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이젠 아무도 없다. 녹슨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흰빛을 잃은 책 읽는 소녀상만이 먼지에 덮여 있다.
다들 도시로만 몰려가 부대끼면서 과열되고 왜곡된 교육 관념으로 온 세대가 다 멍들어 있다. 진정 아무런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대로 농어촌은 텅 비고 말 것인가? 전국 어느 지역보다 소외되고 방치된 남도 농어촌의 미래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진행 중인 것인가? 사람이 없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고향 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의 의식에도 이끼가 끼고 녹슬어 가는 이 시대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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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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