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강진읍 남포리
이재규(90)
낮은 담 너머로 곱게 깔린 잔디가 매우 정갈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골집이다. 한옥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소박함속에서도 세련미가 느껴지는 집을 바라보며 집주인의 성격을 짐작해보았다. 덩치 큰 누렁이 한 마리가 멍멍대다가 철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금 새 온 몸을 비틀며 다가온다. 기자는 잠시 누렁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시골집을 다니다보면 먼저 입구에 매어놓은 개를 만나게 된다. 물론 순하다고 해서 모두 복개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도 분명 주인을 닮아간다.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의 향기를 알게 된다. 어떨 때는 말을 건네 보고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말하지 않고서도 향기를 느끼곤 한다. 향기라고하면 꼭 꽃향기를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꽃에 대한 전문지식을 공부한 기자로서는 가끔 사람을 보면서 꽃과 연관짓는 습관이 있다. 바로 이할아버지는 야생화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진한청색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용담초를 닮았다.
두 채의 집중 한 채는 셋째 아들인 이태영(56세남포이장)씨 부부가 살고 있고, 한 채는 이할아버지가 거주하고 계셨다.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스는 우리은행과 한화의 축구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깔끔한 실내는 젊은이의 원룸 같았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집에 있을 때는 늘 스포츠프로를 즐겨보곤 한다는 이할아버지에게 즐겨온 운동이 있느냐고 물었다.
“왜정 때 일본사람한테 유도를 배웠어요. 2단까지 했지만 지금 내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웬 유도냐고 할텐데······.”
19살부터 군청에서 18년 3개월 동안 근무하다가 사업을 해보기 위해 퇴직한 후 해산물 무역업을 하셨다. 당시 국가보조로 선박을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그 선박을 이용하여 객두사업(위탁판매)을 했다.
“남들 보기는 좋은데, 실속이 없는 사업이었어요. 한마디로 ‘건달사업’이에요. 돈을 벌기는 버는데 다른 사람들이 먹는 사업인거죠.”
선원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물품을 유통하는 사업이었기에 선원들이 요구하는 전도금(선급금)을 미리 주어야만 했다. 선원들은 갈수록 많은 전도금을 요구해왔으며, 물품의 외상은 날로 늘어나 자금회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두뇌가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선박사업은 운이 있어야 해요. 지방에선 선박사업으로 재미 본 사람이 없어요. 큰 항구에선 그렇지 않았겠지만요.”
이할아버지가 선박사업을 하던 1955년 경 남포에는 300여세대가 살았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창하게 보였던 이할아버지의 선박사업을 보고 주변사람들이 ‘재규가 다 들어 마실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업이 확대되었었다.
“사업은 절대 욕심을 부리면 안 돼요. 그걸 몰랐어요. 사업가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라면 사업범위만을 확대시키려 말고 재정관리를 잘하라 라고 말하고 싶죠.”
사업에 실패한 뒤 생활은 비참해졌다. 5남3녀를 둔 이할아버지는 자녀들이 한참 공부할 시기에 학비를 제대로 대주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이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학교에서 월사금 때문에 천대받았던 일이 매우 가슴 아프다며 그 일이 제일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 이후 선배들의 권유로 정당 활동에 참여하여 민주당에서 활동하며 2대 읍 위원을 했다. 정치에 대한 나름대로 포부도 있었으나 스스로의 생활을 돌아보았을 때 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려 정치에서도 손을 떼었다.
“처자불고 가사불고, 의 생활이었어요. 자기 처지를 알아야지 이 생활은 아니구나 싶었어요.”
처음에 걸었던 행정의 길을 잘 걸었다면 평탄한 인생을 살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이할아버지.
“성격이 고지식해서 정의에 어긋난다고 판단 내려지면 별 사람이 말해도 듣지 않는 성격이었어요. 과장이 결재를 안 해주면 과장 앞에서 붉은 글씨로 ‘부재’ 라 써 불고 군수한테 직접 결재 받아 공문 발송해버렸으니 출세하고는 안 맞았지요. 좋은 모습이 아니었지요.”
젊어서부터 성격상 청결하였으며 1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할머니 또한 지저분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같았다고 한다. 음식은 소식을 하나 본인만의 좀 특별한 음식습관이라면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만은 남보다 배를 먹는다고 한다.
“장어, 생고기, 갈비, 닭고기 등은 남들보다 훨씬 많이 먹어요. 담배는 하루 3갑 정도 피웠는데 지금은 한 갑 반 정도 피워요.”
봉건주의 시대의 사람으로 집안 식구를 명령조로 대했다는 이할아버지는 온순한 성격이었던 할머니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가정에서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젊은 사람한테 실수를 안해야 해요. 그래서 젊은 사람만나면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합니다.”
대문 밖으로 나와 골목으로 걸어 나가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이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계셨다. 눈부신 진한 청색의 용담초(꽃말: 애수, 슬픔에 잠길 때 당신이 제일 좋아요.)가 가랑비를 맞으며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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