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대구면 당전마을 정정자할머니(80세)
정할머니는 완도군 약산도에서 열세 살에 당전마을로 왔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 체 자란 정할머니는 어린시절을 남의집살이로 보냈다.
“지글지글헌 세상 살어왔제, 어려서부터 넘의집살이 지글지글혀.”
정할머니는 어린나이부터 밥 한 끼 얻기 위해 어두컴컴한 새벽녘 숫눈을 밟으며 강가로 가서 빨래를 했다. 꽁꽁 얼어붙은 강은 독으로 몇 번을 내리쳐야 맑은 물이 보였다. 손은 얼어붙는 것만 같았고 배는 고팠다. 어느 겨울 빨래를 하고 돌아가던 길에 다 헤어진 짚신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머리에 이고 있던 빨래가 벼랑 아래로 모두 쏟아졌다. 겨울 나뭇가지에 긁혀 찢겨진 다리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하지만 피 흐르는 다리를 이끌고 맨발로 벼랑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혼날 일에 흐르는 피와 아픈 다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할머니는 다시 담아 주어온 빨래를 이고 강가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넘의집살이 아이구 지글지글허당게, 인자 다 했소.”
생각하기도 싫다며 고개를 외면하는 정할머니다. 새벽부터 빨래하고 물 긷고 나면 다시 부엌으로 가 군불 때고 밥 짓고, 잠시도 앉아 있을 틈 없이 일만하고 살았다. 그런 정할머니를 친정 쪽 먼 당숙모가 이곳 대구면 청자마을로 데려왔다. 청자마을에서도 이집 저집에서 남의집살이를 전전하며 살다가 스무 세 살에 당숙이 정한 사람과 혼인을 했다.
“그 사람도 넘부끄럽지만 넘의집만 살았어. 참말로 불쌍허게 살었어.”
산 비탈아래 험하디 험한 곳 방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살았다. 지금도 그곳을 바라보면 저 산 끝 오막살이에서 어찌 살았는지 아득하기만 하다는 정할머니는 옛날을 떠올리기 싫은지 자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하루 종일 밭 매어주고 쌀 한 되나 되게 얻재.”
남편은 쌀 한 포대 갖다놓고 남의집살이를 떠났다. 그러고 나면 한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남편은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큰아이가 9살 되던 해였다.
“우리 새끼들 모다들 고생혔어. 부모가 천대받고 말도 못허게 살은탓이재.”
3남3녀를 두었지만 어려서 알지 못한 병으로 큰 딸이 죽었으며 막내아들이 21살에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떠났다. 기자는 정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자꾸 물어보는 것이 죄가 되는 것만 같아 더 물을 수가 없어 두 손만 꼬옥 잡았다.
“옛날에 미국사람들이 와서 과자부스러기 같은 것 줌서 사금팔이 조각을 가져가곤 혔는디·······먹고살기 바빠 잘 모르겄어.”
일제강점기시대 고려청자도요지인 이곳에 미국사람들이 간간히 왔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혼자서 자식들 키우기도 벅찼던 정할머니에게 그들의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편해, 고생다했지. 아이고 그랑게 지글지글헌 세상살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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