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청자가 걸어온 길(1)
부산 APEC 정상회담 국빈 선물용
합 만찬식기 제작 총괄 납품을 하기까지
전 강진청자박물관 연구개발실장 윤태영
청자상감운학국화문합(靑磁 象嵌 雲鶴 菊花 文 盒)은 국보 220호이다. 이 합은 2005년 11월 제3차 APEC 21개국 정상과 영부인을 위해 만찬용 소형 식기와 함께 국빈 선물로 증정되었던 작품이다. 물론 국보 220호를 재현해서 이뤄진 일이다.
그릇의 내·외면에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가득 시문하였으며, 문양의 구성과 배치, 조각기법 등이 뛰어난 청자상감운학국화문합은, 그릇의 형태와 뚜껑, 대접, 받침으로 이루어진 구성이 독특해서 고려시대 당시에도 왕실 또는 최고 귀족층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국보 220호 합의 용과 봉황, 모란 무늬 대신 구름과 학, 국화 무늬를 상감하였고, 받침에는 연꽃잎을 상감하는 등 문양에 변화를 주어 제작하였다.
강진청자도요지(국가사적 68호)는 9세기 말경부터 14세기까지 500년 동안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던 곳이다. 현재 약 188개소의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고, 특히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산실(産室)로써 국·내외 국보와 보물급 청자유물의 80%이상을 생산하였으며, 현재도 재현과 신상품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설하고-.
강진청자박물관에서는 2005년 국보 220호인 청자상감운학국화문합을 재현, 제3차 APEC 21개국 정상에게 국빈 선물로 증정되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강진청자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가장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던 이 일은, 국빈 선물로 증정되었다는 기사가 나가자 주문이 폭발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고, 온 국민의 크게 관심을 가졌던 일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하기 전에 아무래도 이용희 청자장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강진청자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역사이기도 한 이용희 청자장은 강진청자박물관 개관 전부터 청자 재현에 평생을 받쳐온 사람이었다. 평소 ‘자기에게 주어진 어떠한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임종이 도래하여도 부끄러움이나 후회가 없다’는 가치관과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이용희 청자장이 1999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는데, 1차 3년간 연기, 2차 3년간 연기를 하면서 후계자를 양성해왔다. 그리고 2005년 8월 31일자로 임기완료가 되어 물러나게 되었다. 연구개발실장이란 막중한 자리에 내가 9월 1일자로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으니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별정 7급이었는데, 연구개발실장 자리는 별정 5급이었다. 77년부터 잡부로 근무를 시작하여 85년 12월까지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직원을 일해 왔던 나는, 86년 1월부터 청자사업소에서 별정 8급으로 일을 해왔었다. 그 후 1999년 강진청자박물관 연구개발실장 후계자로 지정되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용희청자장의 후임으로 직무대리를 맡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겁이 더럭 났다. 별정 7급이 되기까지 성형, 조각, 소성(불 때는 일) 등 많이 보아왔고 직접 해왔지만 막상 책임이 맡겨지자 마음이 크게 무거웠다. 당시 강진청자박물관에는 17명 정도의 직원이 조각, 상형, 성형 등 각 파트별로 일을 해오고 있었다. 연구개발실장이란 자리는 바로 그 많은 도공들과 함께 청자재현에 힘쓰는 자리여서 기쁨보다는 온통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연구개발실장 직무대리를 별정 7급으로 맡게 된 나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나부터 솔선수범하고 나부터 잘해야만 조직이 산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내기 시작한 한 달 후 10월 초순경 국무총리실에서 강진군으로 APEC 정상회담에 따른 제작의뢰가 들어왔다. 2005년 11월에 있게 될 제3차 APEC 21개국 정상과 영부인을 위해 만찬용 소형 식기와 함께 국빈 선물로 증정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강진군에서는 참으로 반가워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강진청자가 드디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역사적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21개국 정상들에게 드리는 선물용을 청자로 제작한다는 것은 강진청자박물관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당장 박재룡 박물관장과 연구개발실장 직무대리인 나, 그리고 각 부서 책임자가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11월 20일까지 납품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너무도 시간이 빠듯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한 번 해 봅시다!”
박 관장을 비롯해서 네 사람이 해보자는 의견을 냈으나 나는 반대를 하였다.
“날짜가 어지간히 급해야지 어떻게 해낼 수가 있겠소? 문양과 형태 등은 자신이 있으나 유약을 발라 소성을 했을 때 만에 하나 실패를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이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있지만 기일에 맞춰 생산을 못해냈을 경우 엄청난 파장을 두려워 한 것이었다. 만들어낼 수 있다고 대답해 놓고 그 같은 작품이 나오지 못하면 남우세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청자박물관으로서의 위신이 말이 아닐 것 같아서 반대를 했지만, 네 사람은 해보자는 쪽으로 고집을 부렸다.
“알았소. 지금까지도 해 왔는데 못할 것도 없겠지요. 이번 일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해봅시다.”
나는 마음속으로 실패하면 옷을 벗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퇴근을 했다.
<다음호에 계속>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