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그 이름
김 현임(수필가)
시골인 덕택이다. 울타리 삼아 국화와 라일락을 둘러 심어놓았을 뿐 대문도 없는 내 집이다. 그래서 철 따라 결을 달리하는 바람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낯빛을 바꾸는 하늘이 수시로 넘나들고 아직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집 뜰에 벌, 나비가 잊지 않고 찾아 와 좋았다. 하긴 그들처럼 반가운 방문객만 있는 게 아니다. 덩치만 컸지 대소변의 용처도 아직 못 가리는 대모댁네 황구 누렁이를 시작으로 집 앞 강변로를 달리는, 몇 백 만 분의 일로 축소시킨 무궁화호 열차를 연상시키는 빨간 몸뚱이의 지네, 그 많은 발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잘 훈련된 독일병정인양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한 그리마. 무당개구리라니,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장두칼 위를 펄쩍펄쩍 뛰는 당골네의 울긋불긋한 원색 옷자락을 연상시키는 개구리류도 그렇고, 이자 넉넉히 붙이면 어린 아이 주먹만한 거미, 제 죽을 줄 모르고 불빛만 보면 막무가내 달겨드는 나방...... . 접할 때마다 이맛살이 찌푸려지기 일쑤인, 내 집에 드나드는 반갑잖은 손님의 방명록, 그 두루마리는 끝도 없다.
지금 나는 그 중 한 방문객으로 하여 가슴이 뛰고 있다. 이 파동이 멈추기 전에 지난 몇 달 동안 가장 내 골치를 아프게 한 불청객에 대해서 서둘러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유사이래, 그러니까 뱀처럼 우리의 최고조 할머니 하와 시절부터였다곤 장담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길이의 유구한 역사를 우리 인간의 반목의 대상이 되어서 살아 온 족속이 쥐가 아닐까.
‘쥐’라는 단어를 만나면 상을 구기지 않을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모골송연까지는 아니더래도 듣기만 하여도 오싹 소름이 끼치며 거의 본능적인 징그러움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이다. 새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약삭빠른 생김새도 사람으로 하자면 용서가 쉽잖은 얌체를 연상시킨다. 그래, 그래. 외양이야 저 높은 곳에 계신 조물주의 탓이려니 내 어찌 흉잡겠는가. 백 번 양보하여 다 용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고약한 족속의 운동회는 봄가을 없이 어찌 그리도 잦는지. 장소도 시기도 사전협의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子時 이후일 것, 장소는 인간이 기거하는 곳 중 가장 많은 수의 거처일 것, 아니면 예민한 자의 침실일 것을 고수하는 건 그들의 만고불변의 전통이었다. 비우호적이긴 하지만 저들의 가장 큰 먹이제공자가 인간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골라 염치도 없이 꼭 설쳐대야 하는 지. 한참 곤한 잠에 빠지려는 심야에 천정에서 펼쳐지는 저들의 운동회는 시그널 뮤직의 친절함도 이렇다할 예고도 없다.
체력단련의 기본인 달리기를 선두로 씨름, 투포환 던지기, 구르기, 튐틀 전종목을 망라하여 행해지는 눈치다. 웬 놈의 운동회가 체급도 나이제한도 없는 지 쪼르르 어린놈들이 뛰면 우탕탕 큰놈들이 뒤섞여 따른다. 잠이라는 마차에 오르면서 가까스로 떼어놓은 근심, 걱정의 손아귀가 아니었던가. 다음날 아침 충혈된 내 눈은 밤새 가슴을 옥죄는 근심, 걱정에 시달린 탓도 있지만 어슴프레 여명이 올 때서야 가까스로 에필로그의 기미를 보이는, 청취율 경쟁에서 결코 뒤질 수 없다는 듯 우격다짐과 강제적 방법을 망라해 제공되는 녀석들의 운동회 중계방송 경청 탓이다.
잡자. 일망타진. 이렇게 마음먹은 이상 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끈끈이풀, 덫, 쥐약 등등의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녀석들의 까만 씨앗 파종은 여전했다. 저들의 건재를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모색에 모색을 거듭해도 패색이 완연한 전쟁에 어지간히 지친 오늘 낮이었다. 나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햇마늘을 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겁 없이 한 놈(이 글자는 정정해야 한다. 후에 확인한 바로는)이 출현한 것이다. 끊임없이 쫓던 범인을 불시에 맞딱뜨린 형사의 심정이랄까. 고구마 광주리라는 표적물을 향하는 현행범의 덩치에 우선 기가 질렸다. 게다가 연탄집게라는 최적의 무기가 사라진 현대식 부엌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그를 대신할만한 마땅한 도구도 없었다. 벼르고 벼르던 상대를 눈만 껌벅이며 속수무책 보내야하는 꼴이었다.
아니다.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족히 다른 놈의 두 세 배에 해당하는 녀석의 덩치도, 내게 호신과 공격 두 가지를 병행해 줄 무기의 부재도 아니었다. 녀석의 전신이 내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을 때 나는 그만 숨이 멎었었다고 해야 옳다. 내 침이 바짝바짝 마를 만큼, 지나치게 굼뜬 녀석의 행보는 제 종족특유의 경계의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녀석의 꽁무니는 퉁퉁 흉측스럽게 부어 있었다. 산후독이 채 아물지 않아 시뻘겋게 부어오른 엉치를 끌고 어기적거리는 어미 쥐! 그녀는 식구들의 끼니를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제 부류가 엄수하는 호신의 오랜 전통인 야행의 규율조차 무너뜨리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꽤 오랜 시간, 고구마를 광주리에서 빼내는 데 진력이 빠져서일까. 한동안 옴짝이는 기색이 없더니 이번엔 몸으로 바둥바등 고구마를 밀기 시작했다. 적과의 동침이라더니! 결코 나서서 도와줄 수 없는 처지인 나는 소리 없는 응원을 시작했다. 힘내라! 힘! 오올치! 오오오오올치! 손에 땀이 나는 내 응원에도 불구하고 아뿔사! 고구마는 그만 바닥으로 굴러 버렸다. 저 처연한 눈빛. 걷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할 수만 있다면 먹이감을 그녀네 부엌까지 내 손수 배달해 주고 싶었다. 제 천성조차 거역하는 무리수를 강요하는 삶의 등떠밈이 어찌 어미 쥐 그녀에게만 요구되었으랴. 핏덩이들을 눕혀놓고 덜 아문 육신으로 고단한 삶의 현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연유를 내 굳이 물어 무엇하겠는가. 어미는 죄인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세상에서 어미라고 불리는, 지상의 어떤 종의 어미치고 그 입에서 풀풀 생의 쓴 내가 나지 않은 어미가 없다는 것도 나는 익히 안다. 어미 쥐에게도 한 때는 다가올 생의 기대로 마냥 들뜨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매일 해는 파란 하늘 높이 떠오르고, 들판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아른아른 피어오릅니다. 마을에서 가장 시원한 곳은 냇가입니다. 오후가 되면 들쥐들은 냇둑 아래 시원한 그늘에 모여 앉아 발과 꼬리를 담그고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꽃과 초원의 이름, 바다로 흘러가는 냇물의 이름, 또 이 모든 것에 놀라움을 불어넣어 주는 신비한 힘의 이름......’ 영국의 동화작가 질 바클렘이 따뜻한 필치로 그린 테마동화 ‘찔레꽃 울타리’의 한 대목이다.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는 어린 처녀들을 한껏 설레게하는 감미로운 세계였다. 그 아름다운 우화 속의 여주인공 쥐인 눈초롱처럼 행복한 생이 자신 앞에 무한히 펼쳐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 하지만 향긋한 앵초 우거진 물가, 서늘한 조팝나무 그늘에서 근심 없이 살아가는 들판쥐보다는 날마다 오물에 발목 적시는 시궁쥐가 훨씬 많은 게 세상사 아닐까.
자식이라는 둔중한 추가 짓누르는 무게만큼 어미에게 치솟는 생의 욕구. 그러길레 그 어떤 오명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묵묵히 감내하는 어미들이다. 오래 전 어미가 즐겨 부르던 아름다운 가락의 노래가 평탄조의 탄식으로 바뀐 것은 언제였을까. 마음이라는 저 깊은 속살이 아무리 우아한들 한 겹 헝겊 조각의 빛깔로 됨됨이를 평가하는 우둔한 안목이 넘치는 세상에서 남루는 벗기 힘든 허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나는 저 가련한 어미 쥐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강팍한 이 시대를 여자로 살아가는, 무방비로 달겨드는 불행의 파도 앞에서 허우적이는 가엾은 존재로서의 일치감으로.
고구마를 제 앞에 올려주기 위해 다가선 내 인기척에 놀란 쥐는 이번에도 어기적어기적 달아났다. 나는 바구니의 고구마 세 알과 냉장고의 게맛살 세 줄을 쥐구멍 입구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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