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모친 일찍 여의고 머슴살이도, 어려웠던 옛생각에 몇 푼 아니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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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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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일찍 여의고 머슴살이도, 어려웠던 옛생각에 몇 푼 아니제만···”
성전면 상월 백창영 씨 장학기금 500만 원 본사에 기탁

성전면 상월마을 백창영 씨
 

정호경 치과 원장이 지난 3일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연탄 1만 1천장(6백만원 상당)을 본사에 기탁해 각 읍·면별로 1천장씩 배달을 시킨데 이어 7일 성전면 월남리 상월마을의 백창영(69세) 씨가 강진군장학재단에 전달해 달라며 500만원을 기탁해 왔다. 백씨는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최근 5~6년간 식당에서 그릇 닦으며 궂은 일을 해 온 아내와 상의 끝에 결심하게 되었다”고 기부 동기를 밝혔다.

백창영 씨는 어려서 모친이 별세한 바람에 꼴머슴, 중머슴, 상머슴살이를 했고,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닥치는 대로 호구지책을 삼아왔다. 신발, 족자 장사를 비롯해 남의 논밭에 수를 주고 농사일도 하면서 살아왔는데, 밑이 째지는 살림두량에 장가도 32살에 겨우 갈 수 있었다. 1940년대로 본다면 7~8년 늦은 결혼이었다. 처갓집도 애옥살이를 면치 못해 장모는 품팔이를 해서 삼시세끼를 이어가고 있었다.

백창영 씨는 아내인 장정엽(60세)씨와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살았다. 아들 셋을 낳았으나 큰아들만 겨우 조선대를 졸업시켰을 뿐 둘째와 셋째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가난의 끈이 끈질기게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최근까지도 아내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않고 5~6년간 해온 바람에 끼니와 용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자기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뜻 50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백창영 씨는 항상 가을이면 쌀 20kg 짜리를 10여 년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눈칫밥을 먹고 살아온 지난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번 500만원 장학금 기부는 그래서 작은 꽃송이를 피우다가 비로소 큰 꽃송이를 피운 결과이기도 했다. 영암 서호에서 태어났지만 38세 때 성전으로 이주를 해 30년을 강진 성전에서 살았다. 그보다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성전이어서 뿌리는 강진이다고 주장하는 백창영 씨는 500만원을 강진고을신문 이 원 회장과 함께 강진군장학재단 통장에 입금시킨 후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진군청 윤재평 교육단체팀장은 “어렵게 살아오셨고 지금도 호의호식 한 번 하지 않으신 분이 큰 돈을 기부해와 깊이 감사드린다”며 “강진원 군수께서 어르신을 직접 만나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호경 치과 원장의 아름다운 사랑의 연탄 1만 1천 장 기부에 이어 성전 백창영 씨의 500만원 장학금 기부는 올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 것 같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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