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38회(강진읍 봉덕마을 이남순할아버지(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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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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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38회(강진읍 봉덕마을 이남순할아버지(80세))
어매어매, 우리 같은 시상 안 줄을랑께 살제.

 

지금은 초고령화시대 38회


강진읍 봉덕마을 이남순(80)할머니


  “어매어매, 그때 산 시상이 시상이돨?”

  이남순할머니가 메주콩을 다듬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신다. 

  “포도시 밥 묵고 산 사람 몇 안돼아.”

  이남순 할머니는 봉덕마을에서 태어났다. 18살에 작천으로 시집가 살다가, 잠시 도암에서도 살았다. 그러다가 35살에 다시 친정인 봉덕마을로 와서 지금껏 살고 있는 것이다. 목수였던 시아버지를 따라 남편도 목수 일을 했다. 남편 위로 형이 하나 있었지만 어느 날 형이 시름시름 아파 죽자 큰 동서는 시집을 갔다. 그래서 남편이 독자가 되었고, 이할머니는 평생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시부모도 80이 넘게 사셨다.

  “그땍에는 그냥 일만허고 살어야 헌줄알고 살재. 지금같으먼 도망가불제.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취해서 들어온 날이 많았고,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목수일을 했기 때문에 농사는 별반 없었다. 그러나 당시 목수 일을 할 곳도 많지는 않았다. 당시 목수일이라고 해야 초가집을 짓는 일이었기에 큰 돈도 되지 않았지만 집을 짓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초가지붕을 이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 남편은 그 뒤 목수 일을 그만두었다.

  “어떻게 산지 몰라, 눈 뜨먼 일하고 눈 감으먼 자고 헌 시상이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은 수없이 많았지만 막상 가려하면 갈 곳이 없었다. 한 번은 정말 집을 떠나버릴 작정을 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없었다. 친정이라고해야 반갑게 맞아줄 형제간 하나 없었다. 몇 걸음 밭둑을 걷다가 더 한 발자욱도 갈 곳이 없던 이할머니는 밭 둑 밑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앉아 있자니 집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놈 영감탱이 겁나 술만 먹고 고생시키더만 인자는 저렇게 또 고상시키요.”

  남편 이맹희(85)할아버지는 현재 치매에 걸려있다. 4년 전 갑자기 남의 집 고추를 따고 있기도 하고 남의 집 호박을 따오기도 했다. 그래서 늘 동네 사람들이 아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남의 깨밭에서 깨를 털고 있다고 아오기도 하고 남의 밭에서 배추를 뽑아와 욕을  얻어 먹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이 어디서 호박을 따왔는지, 어디서 고추를 따왔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더 심해져서 아무데고 오줌과 똥을 싸버리기 때문에 늘 함께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성가신게 어서 같이 죽어부렀으먼 쓰겄소.”

  이할머니의 삶에 지친 목소리에는 진득진득한 애정이 잔뜩 담겨있다.

“내가 몬자 죽어야 쓸것인디 걱정이요. 어쩌 저라고 잘 묵을까 하고 찬찬히 들여다봐져······묵기는 참말고 잘 묵는당게, 귀가 묵어서 암것도 몰라, 내가 먼 말헌지 알기나 허간.”

  남편이 유일하게 알아보는 사람은 이할머니뿐이다. 아들도 못 알아본다.

  “나는 생전 이라고 일만 하고 살어, 일 안허먼 죽은께.”

  메주꽁을 다듬고 있던 이할머니의 손은 마디마디가 톡톡 붉어져 있다 못해 손가락 끝이 뭉퉁하니 휘어져 있다. 평생 손을 호미와 갈퀴 삽처럼 도구로 써오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밥이 어딨어? 죽 쑤어 묵고 보리 갈아 보리죽 쑤어 묵으먼 다행이재. 많이 헌 사람은 더 못 묵어,  넘한테 빚을 놔부러, 가을에 더 받을 라는 생각에 자기 묵을 것을 안 냄겨논게 더 못 묵고 살재. 전에는 잘 묵고 산사람이 없어·······어디 마을이나 다 그렸어, 인자 모두 밥 잘묵고 산심이재.”

  고생이 고생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이할머니는 평생 많이 먹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쇠고기, 돼지고기 등 고기류는 평생 먹지 못했으나 3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는 이할머니.

  “어매어매, 우리 같은 시상 안 죽을랑게 살재. 아무리 없다해도 그때보다는 낫재.”

연신 메주콩을 다듬으며 밝게 웃는 이할머니 마당에는 표고버섯 등 여러종류의 밭작물들이 뭉퉁한 할머니의 손을 기다리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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