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장생주 / 수필가
한 폭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화다. 빛 고운 빨간 잎에 쭉쭉 잘 뻗은 나뭇가지. 그리고 잘 익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많이도 열렸다. 저 게 시골 외딴 초가집에 댕그만히 혼자 섰으면 외롭기도 하련만 이건 새로 지은 아파트 앞마당에 떡 버티고 서서 아침저녁으로 내게 문안 인사를 한다.
어쩌다가 이른 아침에 창문을 열면 거기 내 눈길을 끄는 감나무 한 그루.
이 가을에 내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감나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 온다.
홍시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유난히 홍시를 좋아하셨다. 어려서 고래등같은 기와집 뒤뜰에 몇 그루 서있던 감나무를 보며 자라셨다는 어머니. 5월이면 감또개를 주워 실에 꿰기도 하고, 여름이면 바람에 떨어진 풋감을 주워 항아리에 담가두었다가 먹기도 하고,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감을 따서 먹기도 하고, 겨울이면 잘 익은 홍시를 맛있게 잡수셨다는 이야기는 어찌 그리 내 어릴 적 이야기와 똑 같던가.
그토록 어려서부터 친숙해서였을까. 어머니께서는 아흔을 넘기시고 치아조차 없이 잇몸으로 음식을 잡수시다 보니 딱딱한 음식보다는 뭐든지 부드럽고 물렁물렁한 음식이 더 좋으셨던가. 홍시를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 가을이면 홍시를 자주 사다가 어머니께 드리곤 했다.
어떤 때는 박스 채 사다가 어머니 방에 넣어 드렸다. 그러면 밤이고 낮이고 잡수시고 싶을 때면 오물오물 맛있게 드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젠 내 곁에 없다. 3년전에 아흔아홉 연세로 돌아가신 것이다.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홍시 때문이었을까? 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대변을 마음대로 보지 못하셨다. 그러기에 며칠 만에 한 번씩 관장을 하거나 변비약을 투약해야 했다. 그처럼 대소변을 제대로 보시지 못하니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노환이겠지만 아흔 아홉 살 늙으신 몸을 혼자서 버티기에는 너무 힘드셨다. 치매기에 등과 팔다리에 욕창이 번져 자식으로서는 차마 보기조차 힘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래 변비약을 투약하면서까지 홍시를 드려야 하는가 싶어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어쩌랴 ‘저렇게 맛있게 드시는 걸’ 하는 맘으로 좋아하시는 음식을 잡수시도록 그냥 드리곤 했다.
“어머니! 홍시 맛있어요?”
“……”
그저 고개만 끄덕이시던 어머니. 한 번은 방안에 박스 채 홍시를 넣어 드렸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박스가 보이지 않았다. 그 많은 걸 한꺼번에 다 잡수셨나 싶어 놀라 여기 저기 살펴보니 홍시가 반닫이 속에 들어있지 아니한가.
‘얼마나 맛이 있으면 저러랴.’
그토록 혼자서 오래 오래 아껴서 잡수시려고 감추어 둔 홍시들. 어머니께서는 그 홍시를 채 다 잡수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남기고 가신 홍시 몇 알.
보고 있자니 어찌 그리 눈물이 나던가.
50여 년 전 나의 아버지께서는 고구마 몇 알을 잡수시다 두고 가시더니…….
새록새록 생각나는 홍시다.
어머니께서 일흔을 넘기셨을 때였다.
이제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 와
“할머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인사를 하면
‘오냐! 내 손주 이제 왔냐.“하시며 손자의 손을 꼭 잡고 안아주시곤 했다. 가을이면 강진읍 동문안 샘가 내 고향집 앞 마당가에 서있는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장대로 휘저어 홍시 하나를 따다가 손자의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한 입에 콱! 맛있게 먹는 손자의 입을 보며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정녕 평화스럽고 행복했던 시절이다.
이제 그 고향집의 감은 누가 따 줄 것인가. 겨울이면 홍시 두어 개.대롱대롱 매달린 채 까치를 기다리던 까치밥. 아낌없이 다 주시고도 한 두어 개쯤 몰래 감추어 두시던 그 훈훈한 정은 또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어머니! 속으로 불러보면 눈물부터 난다.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집 앞 마트에 갔다.
홍시 몇 알 사들고 왔다.
“어머니! 이거 드세요!”
차마 말도 못하고 어머니 사진 앞에 꿇어 흐느낀다.
‘어머니! 홍시 여기 있습니다,’
‘……’
대답도 없는데 나 혼자서 홍시만 만지고 있다.
밤이 늦었는데…….
장생주
월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회원.
대표에세이문학회장 역임.
현 모란촌문학동인회장. 월간「삶을 가꾸는 사람들」편집인 겸 편집장
저서 : 수필집 「허공을 지나는 한 점 바람」외 2권. 전기집 「다산 정약용」외 공저 수필집 다수. 수상 : 전남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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