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자
김영배(의학박사, 전 중앙의원장)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였는데 어느덧 저물어가는 정해년 12월의 끝자락이 마른 나뭇가지에 마지막 잎 새처럼 걸려 있다. 항상 보내는 모든 것들은 아쉽고 2009년을 맞이하려는 설레임과 기대가 교차하는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서운하고 아쉬운 일들을 이제 잊어버리고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는 우리 모두가 더욱 발전하고 항상 웃음이 넘쳐 오순도순 즐겁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삶에는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는 만남이 찾아오는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을 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남을 사랑하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나, 나는 남을 사랑한 기억을 우리 모두가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다시 조용히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인가?
여기서 나는 얼마 전 보도된 미국의 ‘샌드라데이오코너’(77) 전 대법관의 사랑이야기가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할 수만 있다면 한번 하고 싶어 하는 대법관 자리를 내팽개치면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를 기억 못하는 남편은 요양원에서 어떤 할머니 환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 모든 권세와 사랑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셈인데 ‘오코너’는 행복해 하는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담담히 애기한다.
그를 통해 노년의 사랑을 어떤 심리학자는 ‘뉴-욕 타임즈’에 다음과 같이 조명했다고 한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며, 황혼의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그 차이는 ‘사랑 받기’와 ‘사랑하기’의 거리이기도 하다.
근대사회에서는 사랑을 마치 젊은이들의 독점물인 듯 하는 고정관념이 팽배되어 있으나, 나이든 노인들의 사랑은 받는 만큼 돌려준다는 오늘날의 계산적인 사랑법과 다른 순수한 정감을 표출하면서 하나같이 나보다 상대를 더 아끼는 넉넉하고 더 깊은 마음의 기쁨을 일깨운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겨우 한 계절이었지만 00씨··· 당신은 내 인생 전체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이는 한평생 고단하게 살아온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순정의 고백이다. 또한 그 할머니는 그 분한테 뭔가를 받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결혼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하는 고백은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가······.
84세 고령의 노학자 ‘안드레 고르가’가 쓴 D에게 보낸 편지에 ‘당신은 이제 막 여든 두 살이 되었소. 함께 살아온 지 50여년의 해가 되었으나,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기술하였다. 그는 얼마 후 불치병으로 고통 받아 온 아내와 동반자살로 삶을 마감해 전 세계를 슬프게 했다. 이 얼마나 순수하고 값진 순애보가 아닌지요! 다시한번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본다.
저물어가는 세밑의 끝자락에 지난 세월이 아쉽고 뜻과 같이 이루지 못한 일을 되새기며 후회도 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꿈과 희망을 설계하기도 하겠으나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숨을 쉬고 있는 동안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영혼이 굳어지지 않고 사랑하며 늙어갈 수 있다면 나이 먹는 것도 그다지 불편할 일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기 위하여 꼭 늙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온 세상에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란 소리가 ‘사랑의 종소리’와 함께 널리 퍼져 온 누리가 기쁨에 잠겨 있는 이때 ‘사랑의 빛’이 어둡고 외로움에서 허덕이는 모든 어려운 사람들에게 비추어 희망과 재생의 기쁨이 넘쳐흐르길 바란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