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백리 길도 넘게 달리며 21년째 사랑 전하는
강진우체국 정석도 집배원
연말연시 맞아 우편물 폭주에도 해질 때까지 배달
22일 아침, 간밤에 내린 눈과 갑자기 찾아온 혹한으로 산과 들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강진우체국 소속 정속도 집배원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륜차를 타고 우체국문을 나선다. 7시 30분에 출근하여 10시까지 자신에게 배당된 우편물을 대구분, 소구분으로 나뉘어 마을별로 배달순로대로 구분 작업을 한 후 가가호호를 찾아가기 위해 나선 것이다. 22일 그가 배달해야할 우편물 통수는 소포를 포함해서 700여 통, 그 중에 사람을 만나서 사인을 반드시 받아야할 등기가 22통이다. 오늘도 도암, 신전 쪽 10개 마을을 하루에 돌아야만 일과가 끝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른 날이 없이 마을을 찾아다니다보면 별아 별 일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개에게 물려 남의 집 안방으로까지 피하기까지 했던 일은 다반사이고, 갑자기 부딪치게 되는 긴급 상황도 많다. 비가 쏟아져 빨랫줄에 널린 빨랫감을 걷어주거나 널린 곡식을 재빠르게 덮어주는 일, 가스 불을 그대로 켜놓고 집을 비운 주인을 위해 꺼주는 일 등은 흔해빠진 일이다. 물건을 어디에 옮겨 달라, 뭘 사가지고 와 달라 등 촌로 등의 부탁 역시 무시로 겪는 일이다. 그보다도 집에 들어섰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할아버지나 농기계에 다쳐 신음하는 농부 등을 직면할 때도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때면 정속도 집배원은 이름 그대로 속도를 낸다. 재빨리 119를 부르거나 내처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태 전에도 한 할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죽고만 사실도 있고, 지난 해에도 병원에 옮길 환자를 보호자와 동승한 적도 있다.
“어떤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합시다. 아마 강도라도 그 아이를 구해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정속도 집배원의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딪쳐 한 행위는 애써 은덕을 베풀었다기보다도 인간 본성으로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롭게 사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꼭 말을 건네주거나 잠깐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은 일부러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인사 한 마디에 그렇게 좋아하고 얼굴이 펴지고 하니까요”
그는 우편물을 건넬 때마다 상대방이 노인일 경우에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그들에게 위안을 드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는 가가호호는 반드시 우편물만 전하는 집배원의 역할을 떠나서 파수꾼, 심부름꾼, 간호사, 보호자 등의 직업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가 우체국 집배원으로 입사한 것은 서른여섯 살 때여서 늦깩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 6대주를 다니다가 집배원을 하려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성우체국에서 일했는데, 그만 다섯 살짜리 아들을 잃은 후 고향인 강진으로 왔다. 가슴에 못 박힌 일로 3년 만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렸다고 하는 그는, 그러나 일만큼은 재밌게 한다고 말했다. 즐겁게 일하는 것은 저한테도 좋은 일이지만 가족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좋은 일인 것 같아서 늘 웃음을 달고 일한다는 것이다.
그건 생각이 있었기에 이륜차로 배달을 시작했을 때 우편물이 젖지 않도록 비닐덮개를 처음 사용함으로써 본인은 물론 동료들의 편리성을 도모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정년이 1년 반 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날까지 자부심을 갖고 일하겠다는 그는 나이가 가장 많은 수장이어서 강진우체국 29명 집배원 모임인 연우회장을 맡아 아래 집배원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지금은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찾아갈 때면 사람만나는 재미가 제일 큽니다”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쏜살같이 찾아나서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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