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기자의 단편소설)
꿈꾸는 새
······ 메숲진 산의 코숭이에 가파른 벼랑이 아찔하기만 하다. 그 낭비알 아래쪽에 슬레이트 지붕의 조악한 집 세 채가 옹송그리듯 앉아 있고, 왼쪽 또 다른 벼랑 중간쯤에는 굴 껍질처럼 붙어있는 조그만 절집 하나.
그런데, 벼랑 위 굽은 소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새 한 마리가 날갯죽지를 힘차게 펼치려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창공을 향해 비상을 하겠다는 듯.
경미언니의 첫 전시회에는 모두 12점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언니는 전국에 산재한 여러 사찰을 다녀오곤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석불(石佛)이 소재가 되어 있었다. 한 분의 석불님, 혹은 나란히 서있는 두 분의 석불님······. 그 석불들은 대부분 꽃 창살무늬형 창틀을 배경으로 서있었는데, 두 분의 석불이 서있는 경우에는 남매와도 같은 느낌을 던져주고 있었다. 키가 큰 석불은 입을 벌릴 듯 말듯, 법열(法悅)이 터져 나올 듯 말듯 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몸집이나 키가 좀 더 작아 보이는 석불은 불만이라도 있다는 듯 뾰로통한 입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경미언니는 자신만의 독특한 소재와 함께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작품마다 땀방울이 배어 있었고, 일반적인 석불들과 똑같거나 비슷한 모습이 아닌, 정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이미지화시킨 작품들이었다. 그런 작업을 위해 그녀는 돌가루와 석채(石彩)를 이용해 아교와 섞어 질감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석불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전시장에 전혀 다른 작품 하나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새>라는 제목으로 한 쪽 귀퉁이에 숨은 듯 걸려 있는 그림은, 여러 석불그림과는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그림이어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하지만 언니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작품에 비하면 약간은 수준미달의 작품으로도 보였다.
경미언니는 첫 전시회를 위해 꼬박 2년 남짓 준비를 해왔었다. 지방 작가라는 틀을 깨지 못한 언니로서는 새로운 도약과 발판을 위한 의미 깊은 전시회인데 왜 엉뚱한 그림을 걸어놓았을까·····.
“언니! 저 새 그림? 언니가 그린 게 맞아?”
나는 전시회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경미언니에게 물었다. 그녀는 테이프 커팅 시각이 다가오면서 부쩍 늘어난 내방객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옥색 치마저고리로 위아래를 곱게 차려입고 가슴에 장미 코사지를 꽂은 경미언니의 모습은 봄바람처럼 가볍고 밝아보였다.
“으응, 저 새 그림······?”
“이상하잖아! 오늘 전시회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림 같은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실은 경순이 큰언니 그림이야.”
“큰언니 그림이라니?”
“너도 알잖아. 큰언니가 그림 그리기를 매우 좋아 했다는 걸.”
순간 나는 깊은 우물물 속에서 오래 전에 빠뜨렸던 물건을 집어 올리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아니, 큰언니가 살았던 저 20여 년 전의 암울하고 칙칙했던 세월이 갑자기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20여 년 전, 우리는 전주시 진북동 어은골산 벼랑 아래에서 살았다. 야트막한 어은골산이 전주천을 향해 우쭐우쭐 뻗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산잘림이 생기면서 거대한 벼랑을 만들었는데, 우리 집은 그 벼랑 아래에 납작하게 엎드리듯 자리 잡고 있었고, 왼쪽 벼랑 옆구리쯤 해당되는 곳에는 진북사(鎭北寺)라는 절이 위태위태한 형국으로 매달리 듯 서있었다.
진북사는 법당 앞에 축대를 쌓아서 손바닥만한 절 마당과, 툭 불거져 나온 넓적스레한 바위 위에 산신각이 얹혀있는 외형상 보기 드문 절 모양이었지만, 그런대로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대는 편이었다. 도심지와 가까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라시대 고승인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질만큼 영험이 있는 절로 소문이 나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절 살림도 윤택해 보였다.
우리 집 역시 벼랑 위에서 서벅돌이 금방이라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세든 사람이 네 집이나 되었고, 특히 안채 건넛방에는 사주, 관상을 비롯해서 쌀 점을 보는 화연보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도축장엘 다니는 아래채 박씨 아저씨는 소 내장이나 검붉은 소피를 가져와 가마솥에 끓여먹는 일이 자주 있었으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까지 넘쳐났다. 저녁때만 되면 휘황찬란한 전주시내의 야경을 보면서 언젠간 우리도 저 축복받은 땅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그 같은 분위기에 녹아내렸다. 변두리면 어떻고 벼랑 아래에서 살면 어떠랴. 저 도회지 사람들과 시방 발맞춰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집은 어은골산 벼랑 아래로 이사 오면서부터 어딘가 모르게 활기가 넘쳤는데, 그것은 큰언니 때문이었다. 큰언니의 신병(身病)으로 인해 전주천 너머 주택가에서 세 살던 우리는 쫓겨나야만 했었고, 그 어떤 집도 셋방을 내주지 않았을 때 어은골산 벼랑 아래 집을 가까스로 사들였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사를 오자마자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소, 돼지 닭, 염소 등을 키웠는데 전주천에 오리를 백여 마리 풀어놓기까지 하였다. 두 분은 그동안 고향인 담양에서 죽세공을 가져와 팔러 다니는 일로 호구지책을 삼았지만, 그 장사조차 때려치웠으므로 이래저래 큰 변화까지 가져온 셈이었다. 하지만 큰언니의 신병으로 인해 남의 집 눈치를 보는 일도 없어졌고, 가축이 제법 잘 팔려서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것에 반해 나는 갑자기 학교가기가 싫어질 만큼 기죽은 세월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레를 학교에 끌고 와서 배식소 구정물을 퍼 날랐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가축 먹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이 알까봐 교실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리곤 하였지만 나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축 수는 늘어만 갔다.
예전에 비해 밥술이나 먹고 살게 된 우리 집에 느닷없이 희소식이 날아온 것은 어은골산 벼랑 아래로 이사 온지 일 년이 되던 초봄 어느 날이었다. 이제 갓 열여덟 살인 큰언니의 결혼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도축장 박씨 아저씨가 해질 무렵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워따 박씨, 오는가? 오늘은 시간 내서 그 홍가라는 총각의 집안 좀 알아봤는가, 으쨌는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구만.”
어린애처럼 보채곤 했는데, 그 말 속에는 남자 쪽 보다도 우리 쪽에서 여간 애달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령 남자 쪽에서 청혼을 해온다 해도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집안 내력이며 능력을 시험해 보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쪽에서 서두르는 것은 그 결혼을 통해 큰언니의 신병이 어쩌면 고쳐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큰딸같이 병 있는 사람도 결혼을 하면 병이 낫기도 한다고 합디다. 아무려나 밑져야 본전인디 결혼을 시켜놓고 보시지요.”
“스무 살도 채 안 돼놔서 여간 맘에 걸리요만······.”
“먼 옛날에는 열두어 살에도 시집가는 일이 허다했질 않아요. 더구나 큰딸의 실팍한 엉덩이며 툭 불거진 젖가슴을 볼라치면 전혀 걱정이 안되겠습디다.”
“병이 낫기만 한다면······. 그 몹쓸 병이 낫기만 한다면 무슨 걱정이겠소.”
어머니는 화연보살의 방에 찾아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을 하였다. 결국 큰언니의 신병이 나아질지 모른다는 것인데, 결혼문제가 우리 집안의 큰 이슈가 될 무렵에도 큰언니의 발작은 여전하였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어은골산 벼랑 아래로 이사 오기 전만해도 그리 심한 편은 아니어서 보름에 한번 꼴이던 것이 열흘로 좁혀졌는데, 드디어 홍 총각이란 사내를 만나고온 그날도 가뜩이나 기분 좋아 귀가하는 아버지의 가슴에 못이 박히고 말았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총각이지만 허여멀쑥한 이목구비에 키 또한 커서 신병만 아니라면 딸 가진 부모치고 욕심안 낼 사람이 없겠다며,
“술 한 잔 가져오소.”
그 기분을 만끽하려는 아버지가 다짜고짜 술부터 찾았을 때,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대문 앞 텃밭에서 울려 퍼졌던 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텃밭으로 갔을 때 큰언니의 발작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눈알이 뒤집혀진 채로 허옇게 게거품을 물고 사지를 사뭇 떠는 큰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그 광경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련만 땅바닥에 퍼질고 나앉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놔둬라.”
내가 언니를 부둥켜 안으려하자 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발작이 한번 일어나면 아예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러나 막상 깨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짱해지면서 치마를 털고 일어나는 언니였다. 자신이 조금 전에 뭘 했는지 까마득 모른 채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발작을 마친 큰언니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예전처럼 절망의 빛이나 안타까운 한숨이 없어보였다. 결혼만 시키면 그 몹쓸 병도 봄 눈 녹듯 사라지리라는 희망이 두 분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저녁 무렵, 아버지는 밖에서 무슨 약속이라도 하고 왔는지 온돌방 하나를 부엌 옆에 만들기 시작했다. 흙을 반죽해서 잘게 썬 볏짚을 넣은 다음 돌과 함께 바람벽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열흘쯤 지나자 금세 온돌방 하나가 만들어졌는데, 나중 알고 보니 큰언니의 신혼 방이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아예 형부 될 사람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일 작정이고 보면 큰언니가 치료되리라는 간절함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그 홍가라는 총각을 집에까지 데리고 와서 은근슬쩍 대면까지 하는데도 큰언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웃어 보이기만 할 뿐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나중 홍가 총각이 하루에 한차례씩 집엘 다녀가기도 했지만 큰언니는 방문을 꼭 닫아걸고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방안에서 화선지를 펼쳐놓고 그림 그리는 일에 푹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림들은 대개 진북사 법당 안에 존엄하게 앉아있는 부처님을 그리는가 하면, 그 절 산신각에 걸려있는 산신(山神)을 그리는 일이었다. 때로는 잿빛 승복을 차려입은 스님의 상반신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고, 간혹 숲길을 걷는 스님의 뒷모습을 그리는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붓에 물감을 묻혀 정물화를 그리거나 풍경화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 불교소재의 그림······. 진북사가 바로 이웃해 있다는 사실 말고는 누가 개인지도를 해준 일도 없었고, 또래들처럼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처지인데도 엉뚱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그림을 날마다 그려대는 언니였다.
그러나 언니의 그 같은 열정은 솔직히 그림다운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채색을 하는 법도 없이 그저 붓으로 윤곽을 잡은 후 메마른 갈필로 문지르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도무지 잘된 그림 같아 보이지 않았다. 홍가 총각은 그런 큰언니의 모습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뚫은 다음 눈알을 들이대고 훔쳐보곤 하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이 많았다. 방문을 열고 선뜻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마당에서 서성거리거나 답답하면 어은골산의 벼랑을 한차례 올라가 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였다.
“네 신랑 될 남자인디 본체만체하면 안 되는 거여.”
홍가 총각이 사라지고 나면 어머니는 큰언니의 마음이 병 낫는 일 만큼이나 빨리 돌아서기를 채근했지만, 큰언니의 무반응이 지속되자 아예 결혼 그 자체를 포기해야 될 만큼 낙심천만이었다.
나는 큰언니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병이 씻은 듯 나을 수도 있는 결혼에 대해 전혀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남자 쪽에서 저 정도 적극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적어도 좋다 싫다 반응이라도 보이는 것이 큰언니로서 마땅한 일일 터였다.
“억지로야 시집보낼 수는 없는 일. 지켜볼 수밖에······.”
“그래도 그렇지요. 요즘 들어 부쩍 총각이 안달이 난 것 같습디다만······.”
“남녀란 자꾸 만나다보면 절로 정이 드는 법이요. 한두 해 늦은 다고해서 큰 문제는 아니잖소.”
그러나 큰언니는 아버지 어머니의 속 타는 심정과는 달리 그저 그림 그리는 일만 계속하였다. 오히려 그림 내용이 어떤 변화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깊은 사색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온통 붉은색으로만 그리는 일도 있었고, 선(禪)의 경지가 드리워진 보살의 얼굴을 그리는 일도 있었다. 변화된 그림 못지않게 또 다른 일이 큰언니에게 생기고 만 것은 더욱 홍가 총각과의 결별을 의미하였다.
그 해 가을부터 서서히 큰언니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은 진북사를 자주 오르내리는 일이었다. 그림자처럼 서성거리는 홍가 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삼매에 빠진 선승처럼 그림 그리는 일도 접어둔 채였다. 그런데 큰언니가 진북사를 자주 찾기 시작한 것은 법당 곁 적묵당(寂黙堂)에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반승반속의 화가선생님이 나타난 것과 일치하였다.
“큰언니가 진북사를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부처님 그림을 배우려는가 보다.”
큰언니의 뒤를 조심스레 좇던 홍가 총각이 어은골산에서 완산칠봉까지를 다니며 놀고 오던 내게 귀띔을 해주었다. 머리를 길게 길어 뒤 꼭지에 고무줄로 꽁꽁 묶은 모습은 화가선생님이나 큰언니나 똑 같았지만, 그렇다고 큰언니를 가르치기 위해 나타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화가선생님이 방바닥에 커다란 화선지를 펼쳐놓고 선긋기를 시작했을 때 큰언니는 물끄러미 지켜볼 뿐 서로 아무런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진북사 법당에 걸어놓은 탱화가 도난당한 후 다시 걸어놓기 위해 화가선생님이 나타난 것일 뿐, 큰언니는 단순히 구경꾼에 불과했는데도 홍가 총각은 큰언니를 대단한 화가 지망생쯤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본래 부처님을 그리는 사람은 여자를 멀리하는 법이거든. 그런데 큰언니와 함께 있는 걸 보면 가르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 일거야.”
큰언니는 그림자처럼 다소곳이 앉아 화가선생님의 손놀림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홍가 총각은 과일바구니와 과자 등을 사서 갖다 주기도 하고 법당 앞 마당을 빗질하기도 하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련만 매일 자신의 일처럼 하는 것이었다. 홍가 총각이 매일 나타나서 그렇듯 큰언니의 공부를 도와주는 사이, 정작 큰언니는 과일이나 과자를 화가선생님이 먹기 좋게 쟁반에 놓는 일과 적묵당 내부를 물걸레로 닦아내는 일을 하였다.
화가선생님은 큰언니와 홍가 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탱화를 그려 나갔는데, 그가 그리는 탱화는 104위 신중탱화였다. 대예적금강신(大穢跡金剛神)을 중앙에 안치한 다음 그 좌우에 제석천왕과 대법천왕상을, 그 하단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상을,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신장상을 봉안하는 104위 신중탱화는, 제각기 얼굴형태가 달랐으므로 어렵고 힘든 작업임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화가선생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걸 새삼스레 알게 하는 일 또한 벌어진 것은 그 선생님이 진북사에서 기거한지 보름째 되던 날 오후 늦게였다.
나이는 30대 초반이나 겨우 될까 말까 한데도 검은 수염을 옛 할아버지처럼 길게 긴 것도 그랬지만 머리는 아예 스님들처럼 빡빡 밀어버린 특이한 인상의 남자가 진북사에 나타난 것이었다. 더구나 옷은 개량한복인데 거무튀튀한 빛깔이었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어서 생김새나 차림새가 나이와는 전혀 걸맞지 않게 보였다.
남자는 곧장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적묵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화가선생님과 수인사를 나눈 뒤 자신 역시 불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화가선생님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정중하게 물었다.
“지리산에서 왔습니다.”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학교에서 지리산에 대해 배울 때 지리산은 둘레가 300여리나 되고 3도 5개 군을 감싼 거대한 산이라고 하던데, 그 산 전체가 자신의 집인 양 말하는 데에는 자못 당당함이 엿보였다. 화가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번엔 머리를 약간 숙여 보이며 그림 솜씨를 한번 보여 줄 것을 간청했다. 특이한 인상답게 틀림없이 멋진 그림이 한 폭 그려질 것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는 수차례 붓만 들었다 놨다 하더니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 마냥 옴짝달싹도 못하는 행동이었다.
화가선생님은 그런 남자를 그윽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조용히 붓을 들었다. 화선지 위에서 붓끝이 요리저리 저리요리 움직이자 다섯 사람의 동자승이 양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천진난만한 동자승들은, 당장이라도 화선지 속에서 튀어나와 우리 곁에서 뛰노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동자승들이 다 그려지자 화가선생님은 오른쪽 여백에 커다란 소나무를 그려나갔다. 몇 백 년쯤 자란 늙은 노송이었다. 하지만 옆으로 뻗어 나온 가지와 잎사귀는 힘차고 씩씩했다.
“한번 그려본 것인데 부끄럽습니다.”
화가선생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순간,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면서,
“몰라 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사과를 마친 남자는 땡감 씹은 얼굴이 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이 일이 있고나서 큰언니는 더욱 화가선생님을 존경하는 눈치였고, 아예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적묵당에서 지내기가 일쑤였다. 큰언니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은 그 지리산에서 왔다는 남자의 출현이 있고나서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언니더러 화선지에 줄긋기를 해오라는 권유가 떨어졌다. 줄긋기란 이미 불보살(佛菩薩)이 그려진 화본(畫本)에 얇은 화선지를 올려놓고 그대로 베끼는 작업이었다.
“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동안 여럿 있었지요. 여성들도 있었는데 서너 달, 혹은 일이 년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 불화 그리는 일이지요.”
큰언니가 일정한 선을 같은 굵기로 화본을 베껴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화가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드신 금어(金魚)들은 여성들이 불화 그리겠다고 나서는 일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지요. 한 달에 한 번씩 몸에 이슬이 맺히는 것도 그렇고, 젖가슴을 지닌 몸으로 어떻게 성스러운 탱화 위에 올라앉을 수 있느냐는 뜻이지요.”
화가선생님의 말 속에는 그리 만만한 길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큰언니가 기껏 정성을 들인 것이라곤 과일 몇 점 깎아주고 적묵당 바닥 청소를 하는 정도인데도 선뜻 큰언니더러 붓을 한 번 잡아보라고 허락을 한 셈이었다. 큰언니 역시 당연한 일처럼 스스럼없이 붓을 잡았고 화가선생님은 묵묵히 신중탱화를 그려나갔다. 104위 신중님들이 하나하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큰언니의 선긋기도 제법이다 싶을 만큼 불보살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그려져 나갔다.
“십왕초, 시왕초, 천왕초, 여래.보살초 등을 3천장 넘게 그려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시작인데 앞으로 이러한 수련을 잘 이겨내야만 비로소 불화를 그릴 수 있을 거예요”
학교 갔다 돌아와서 보면 방문을 걸어 닫고 그림 그리는 일만 열중했던 큰언니였으므로 3천장 아니라 3만장도 너끈히 그려낼 것만 같았다. 큰언니는 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에서 매우 가느다란 세필로 매일 그려 나갔는데, 그 모습은 법당 마룻바닥에서 꼼짝하지 않고 밤샘을 하는 독실한 불교신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심(佛心)이 없으면 그릴 수 없어요. 그 불심이 한곳으로만 모아질 때 가능합니다.”
화가선생님은 작업을 하다가 잠시 멈출 때면 지나가는 말처럼 큰언니에게 일렀다. 그런데 큰언니의 열의에 감동했는지 물감붓을 쥐어주며 신중탱화 한쪽 부분을 채색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화가선생님 자신도 힘들게 그려나가는 작업인데도 큰언니는 역시 못할 것도 없다는 듯 물감붓을 잡아들고 떨리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이 신장의 옷에 물감을 묻혀나갔다.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 등······.
화가선생님 또한 큰언니가 그림의 일부분을 채색하는 동안 어느 한쪽을 끌어안듯 엎드려서 채색해 나갔는데, 누가보아도 제각기 다른 얼굴의 104위 신중탱화를 두 사람이 합세해서 그려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채색하는 속도가 아무래도 빠르게 진행 되었는데,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일지라도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숨이 멎을 듯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치라도 붓질이 잘못되면 장 반 크기의 그림자체가 망쳐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제석천왕의 옷자락을 한번 채색해 보세요.”
화가선생님이 아예 자신의 붓은 던져버리고 태도를 바꾸어 일일이 물감을 지적하며 채색하기를 권했다. 함께 하던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이번엔 큰언니 혼자 그 큰 그림 앞에 엎드려 있는 셈이었다. 놀랍게도 큰언니는 전혀 흔들림 없이 시키는 대로 붓을 움직여 나갔다. 하루해가 어느 틈에 기울어졌는지 적묵당 밖의 절 마당에는 햇살이 조금씩 숨을 죽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큰언니에게 맡긴 일부분을 지켜볼 요량인지 화가선생님이 멀찍이 물러앉아 자리를 틀고 앉았을 때, 이상하게도 큰언니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못하고 붓을 놓아 버렸다. 화가선생님이 물끄러미 탱화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지금까지 그렸던 탱화를 송두리째 망쳐버린 후였다.
“헛!”
큰언니는 방금 전에 자신이 채색하던 바로 제석천왕의 옷자락을 비뚤하게 그려내고만 실수를 발견한 것이었다. 대번에 큰언니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화가선생님은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무릎을 한차례 흔들고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정말 죄송해요. 배워 보겠다고 나섰다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큰언니는 퍼뜩 정신이 드는지 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닙니다. 조금도 마음 아파 마십시오. 실은 이 탱화를 다시 그릴 생각이었어요. 맘먹은 대로 되질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한 달 넘게 고생한 작품인데 왜 그런 말씀을······?”
큰언니는 화가선생님이 부러 위안해주는 말인 줄 알고 목소리가 사뭇 떨려나왔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난 신심(信心)이 부족한가 싶군요. 이 탱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데······. 이를테면 이 탱화야말로 불자들이 예배할 때 사 용되는 그림인데 왜 이리 필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지······.”
화가선생님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 지 큰언니는 다소 안심하는 빛이 감돌았다. 그런데 큰언니가 밖에 나가서 청정수를 한 그릇 떠받들고 오는 동안 화가선생님은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꾸리는 게 아닌가.
“아니, 떠나시게요?”
“네. 아무래도 머리를 깎아야 될 것 같군요.”
화가선생님이 큰언니가 떠다준 청정수를 한 그릇 마시고나서 이제 막 붉은 빛으로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머리를 깎는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진실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싶다고 해서 그려지는 것도 아니요, 그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군요.”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훌륭한 분으로 생각되는데 왜 어렵다는 말씀만 하시는가요?”
큰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도무지 화가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가당찮은 수준에 있으면서도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쓸쓸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붓을 놓고 수행을 할 생각입니다만, 아무튼 부처님의 뜻이 있다면 좋은 탱화를 그릴 수 있겠지요. 자, 그럼······.”
큰언니가 인사를 하고 말고 할 새도 없이 화가선생님은 법당을 향해 세 번 허리를 굽혀보이고는 총총히 경내를 빠져나갔다. 이제 야광충처럼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어둑신한 길 저편으로 화가선생님은 금방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언니가 절 마당에서 풀썩 무릎이 꺾어졌다.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20여 년 전의 일인데도 엊그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큰언니의 허망한 죽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육학년이었던 큰언니는 그해 어린 나를 업고 실개천을 건너다가 넘어지고 말았는데, 그때부터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 뒤 여름부터 간질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고, 결국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큰언니 때문에 우리는 세 들어 살던 집에서 더 이상 살수 없게 되었고, 어은골산 벼랑 아래로 이사를 한 뒤 큰언니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다. 큰언니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진북사을 오르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렸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집과 이웃한 진북사에서 화가선생님과의 조우는 큰언니에게 어떤 행운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어떤 이유였든지간에 화가 선생님은 큰언니에게 직접 붓을 들어보게 하는 기회까지 제공하였다. 그 일은 큰언니에게 하나의 꿈에 대한 끈을 던져준 셈이었다. 하지만 화가선생님이 갑작스레 떠나버림으로 해서 큰언니의 꿈 또한 산산조각이 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큰언니는 그 뒤로 열병처럼 심하게 앓고 나더니 아예 그림 그리기를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그해겨울 큰언니는 홍가 총각과 집 마당에서 혼례식을 올렸고, 두 사람은 곧장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제는 그리지 않을 거야. 절대루······.”
큰언니는 자신의 결심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려는 듯 자주 이 말을 흘리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한차례씩은 진북사엘 가서 실성한 사람처럼 서있다 되돌아오곤 하였는데, 어머니는 어쨌든 그림그리기를 중단한 큰언니를 두고 그저 다행스러워하는 내색이었다.
“네가 그림은 무슨 그림······. 변변하게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를 했냐, 남들보다 재주가 많기를 하냐? 여자는 그저 서방 받들고 자식 낳아 잘 기르면 되는 것이지. 그나저나 이젠 시집을 갔으니만큼 네 병이나 씻은 듯 나았으면 좋겠다만······.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큰언니는 병이 나아지는 일도 없었고 신혼생활 또한 행복하지 못했다. 그림그리기를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북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큰언니의 표정은 날로 어두워져만 갔다. 게다가 형부와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잦았고, 형부는 그런 큰언니를 알게 모르게 구박하기가 일쑤였다.
결국 그 불편한 결혼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큰언니가 진북사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그만 아래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니면 실족사였는지는 지금까지 전혀 알 길이 없다. 큰언니가 진북사 벼랑 아래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간 형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온 후, 하룻밤을 넘기자마자 눈을 감았지만 왜 죽게 되었는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진(自盡)을 할 생각이었다면 마지막 말이 적혀진 유서라도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흐물흐물한 낙지처럼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체 누워있던 큰언니는, 임종직전 나를 쳐다보며 애걸하듯 몇 마디 말을 남겼다.
“날고 싶어.”
그리고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잠시 가라앉을 때 나지막하게 하던 말.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는데······.
경미언니 첫 전시회의 테이프 커팅은 무사히 끝났다. 그녀는 손님들 앞에 서서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말을 하였고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런데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신기한 듯 작품 가까이 두 눈을 갖다 대며 경미언니의 말을 경청하다가 막상 큰언니 작품인 <새>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굳어지는 듯 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와는 다른 작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일까.
손님들은 <새> 그림 역시 경미언니가 그린 작품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작품들이 모두 한 분, 혹은 두 분의 석불들뿐이었는데, 낯선 작품이긴 하지만 경미언니가 새롭게 시도한 작품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명이 다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손님들이 서너 사람 정도 입을 열어 느낀 감정을 토해냈다.
······ 새가 힘이 넘쳐 보인다는 말도 있었고, 아직 날지도 않고 있는데 하늘이 다 제 것 인양 폼을 잡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노래하는 새가 아니라 꿈꾸는 새라는 등의 말들이 있었던 것은 결국 석불의 작품들보다 <새> 그림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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