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지간의 회초리
곽영체 전라남도완도교육청교육장
(전 강진교육장)
어제는 36년 전에 가르치던 두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둘 다 여자 반을 맡았을 때 제자들인데 하나는 시골에 왔다가 작은 아버지로부터 쌀이랑 시골에서 생산되는 온갖 잡곡을 가지고 서울로 가면서 선생님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고 했고, 또 한 제자는 아이가 중학교에 다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의 뒷바라지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전화였다. 하루에 36년 전에 가르치던 제자한테 전화를 두통이나 받았으니 평생 교직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는 그 이상 기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옛말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이 있었다. 즉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같은 존엄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스승으로서 지녀야 할 품격을 잃어버리고 제자로서 지켜야할 본분을 벗어났기 때문인가? 오늘날 사제지간의 정은 분명히 변모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이상적 교육으로의 발전이 아닌 교육의 본질을 흔드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한다.
루즈벨트는 “교육이 국가를 만들지 못하지만 교육 없는 국가는 반드시 멸망 한다”는 말을 하면서 영국의 속담을 떠올려 구부러진 나무는 어렸을 때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들의 교육에 달려있고 국가의 기초는 소년을 교육하는 자에 있다고 역설했는데 이는 교육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교육자들의 사명이야 말로 국운을 좌우할 만큼 막중한 것임을 시사하는 얘기다.
한자에서 교(敎)는 때려서 효를 가르친다는 뜻이고 육(育)은 갓난아이를 살찌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래서 교사가 되는 길을 교편을 잡는다고 했다면 교편(敎鞭)은 바로 가르칠 때 교사가 가지는 회초리인 것이다. 어쨌든 교육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애로부터 출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치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진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찌 우리가 가시에 찔리지 않고 찔레나무의 열매를 딸 수 있겠는가!
간혹 문제가 되고 있는 ‘체벌’사건에 대해 오늘날 교직자들이 진실과 사랑이 담긴 진정한 교편을 상실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귀한자식 매를 대고 미운자식 떡 한개 더 주라고 했다. 문제는 감정이다. 감정의 포로가 되어 이성을 잃는 스승이 있다면 그야말로 사랑의 체벌이란 구실로 폭력을 행사하는 못난 스승이 있어 교직은 지탄받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회초리가 차선의 지도방법이고 교육에서 마지막 방법은 포기이다. 적어도 매가 교육의 최선일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도기능을 뜻하는 차선의 관심은 된다. 매하나 때리면 온통 학교가 시끄럽게 전화가 빗발치고 교육청으로 중앙부서로 항의하는 의식수준의 사회적 풍토에서는 차선책의 매도 회초리도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제자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폭력인지도 모른다.
스승이 회초리를 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자기 희생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스승은 벌을 주면서 벌을 받는 학생보다 더 아파해야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매는 두 관계가 진정으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제지간이라면 그 둘은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아름답게 울리는 관계가 될 것이다. 설사 오늘날의 사제지간이 온갖 갈등과 과제로 옛날의 그 충만한 인간애로 흔연했던 신화가 깨어졌다하더라도 고독한 스승들은 또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획득해 세상을 활보해도 결국 교직자들의 품속을 거쳐 간 스승들의 사랑스런 제자였음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내가 교장으로 재직시절에 130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어머니회에서 사랑의 매(회초리)전달식을 가졌었다. 적어도 우리아이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경서(經書)를 가르치는 지도자는 많아도 사람을 인도하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세상, 진정한 교육의 비결은 사제가 서로 존중하는데 있다는 에머슨의 말을 생각하면서 상호존중과 신뢰의 탑을 쌓아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가는 교육공동체가 형성될 때 인간다운 인재 육성이 가능할 것이다.
시행착오는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교육에서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지만 시행착오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교사, 학부모와 학생이 회초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3월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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