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82)할아버지
정할아버지는 작천 죽산마을에서 태어나 22살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으나 2년도 못되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여수서 깨댕이 할딱벗고 연병장에 모두 나란히 세워 놓았는데, 그냥 합격 합격 합격허면서 군복을 씨익 나눠준게로 그때는 정신이 바짝납디다.”
정월이라 차가운 겨울바람이 홀딱 벗어버린 육체를 칼로 아리는 듯 했지만 겁먹은 초병 군인들은 몸을 옴짝달싹 못한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행여 잘못 보여 두들겨 맞기라고 할까봐서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며 서로를 힐끗거릴 뿐이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터졌다. 갑자기 경상도 초병 하나가 괴성을 지르면서 주변에 있던 돌을 주어들고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사건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초병은 실신을 하여 실려 나갔다. 정할아버지는 이후 제주도로 옮겨져서 훈련을 받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제주도까지 면회를 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좋은 곳으로 배치 받게 하기 위해 신문지에 돈을 싸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상사는 절대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신문지로 싼 돈뭉치를 몇 번이나 밀고 댕긴 후 아버지가 오히려 사정하여 돈을 상사에게 쥐어주었다.
“일선으로 가면 죽을까봐 아버지가 돈을 챙겨갖고 왔당게, 제주도서 조교로 있으라고 그런 거여, 거그서 운전을 배웠어요.”
6.25전쟁 중의 군대 생활이라 전방인 강원도 양구와 인제 전투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포병이었기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긴박한 상황은 없었지만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생활해야 했으니 하루하루가 비참한 생활이었다. 미군 비행기가 이북 쪽에 포탄을 쏟아 부은 뒤 되돌아오면 200미터 앞에서 포탄이 사정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고 굴속에서 며칠을 견디어야 했다.
“남자는 다 여자를 좋아헌 것이 당연한 이치여, 저 양구나 인제 같은 일선에 있을 때는 여자들 사진이 벽에 주욱 붙어 있어. 1번, 2번~~10번까지나 붙어 있으면 사진을 보고 합격허먼 거그로 들어가. 그거이 다 군대서 만들어준 것이재, 숏다이를 헌것이재.”
정할아버지가 군대에서 돌아와 보니 아장아장 걷고 있는 딸아이가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도무지 아내와 정이 들지 않아 한방을 쓰지도 않다가 군대를 갔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려고 그랬는지 휴가 왔을 때 아이가 생겼다. 고향에 돌아왔으나 정붙이고 살지 못한 정할아버지는 혼자서 읍으로 나왔고 한 여자를 만났다. 비단 도부장사를 다니는 여자였다. 일찍 과부가 된 그 여자와는 26살 동갑이었고 서로 맘이 맞아 함께 살면서 비단장사를 다녔다. 고금도, 장흥장, 강진장을 함께 다니며 머리에 이고 지게로 지고 다녔지만 수입은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서로 맘이 맞아 장사를 다니니 힘든 속에 재미도 있었다. 남자를 이끌 줄 알고 앞을 헤쳐 나갈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여자였다.
“정이 없으면 못살아, 정이 있어야 사랑도 하는 것이지 남자라고 아무하고나 사랑 하는 것은 아녀.”
정이라는 것이 참으로 요상한 것이라고 말하는 정할아버지다. 이상하게도 정이 안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만났는데도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그런저런 생각도 다 옛날일 뿐이라며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려니 생각된다며 웃는다. 운전을 할 수 있었던 정할아버지는 트럭을 구입하여 장사를 할 수 있었으므로 더 쉽게 장사를 하였다. 그래서 3년이나 누워서 아들집에서 살다가 먼저 간 아내가 행복해 하기도 했단다. 모두9남매를 두어 이제 아들이 내일 모레 환갑 잔치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장마다 돌아다니며 비단장사를 했던 시절이 참 좋았다는 정할아버지다.
“그전에 점원을 총각을 두면 여자들이 많이 오고, 처녀를 두면 남자들이 많이 오더라고, 그런 것도 다 이치가 있당게.”
오랫동안 옷감을 취급해왔기에 아직도 옛날부터 갖고 있던 옷감들이 많다. 그래서 싸게 처분하고 있기도 하다.
“갖고 있는 옷감을 싸게 팔고, 진명주 수의복을 반에 반가격으로 그냥 없앨라고 해요. 진명주는 불에 태웠을 때 손가락으로 부비면 푸석푸석 다 부서져 부러요. 나이롱하고는 달라요.”
예전 누군가 양 귓불을 앞으로 댕기며 수시로 맛사지를 하면 귀가 밝다고 해서 늘 해왔다는 정할아버지는 그래서인지 귀도 밝고 매우 밝은 표정이다. (이현숙 기자)
지금은 초고령화시대
강진읍 남성리 부산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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