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명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균,쇠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소규모 인구 집단은 질병에 취약하다
수렵 채집민이나 화전민의 소규모 무리 사회에서는 당연히 대중성 질병이 존속할 수 없었다. 가령 근대에 와서 아마존 인디언이나 태평양의 도서 주민들에게 닥친 비극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외부로부터의 방문객 한 사람이 들여온 유행병 때문에 작은 부족 전체가 거의 전멸할 수도 있다. 그 부족에는 그 세균에 대한 항체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902년 겨울에 포경선 ‘액티브 호’의 한 선원 때문에 이질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새들러뮤트족 에스키모 56명 중에서 51명이 죽고 말았던 경우가 이러한 예다. 이들은 캐나다 북극 지방의 사우샘프턴 섬에서 매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홍역을 비롯한 몇 가지 ‘소아병’은 어린이보다 어른들에게 더 치명적이며 소부족에 속한 상인들은 모두가 이들 질병에 취약하다. 그와 대조적으로 현대의 미국인들은 성인이 되어 홍역에 걸리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이미 홍역을 앓았거나 백신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소부족의 대다수 인구를 죽인 후에는 유행병도 사라진다. 소부족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여온 유행병을 존속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전염시키려 유행병을 진화시킬 수도 없다.
그렇다고 소규모 인구 집단에서는 전염병이 전혀 발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전염병은 있지만, 특정한 유행일 뿐이다.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동물의 몸이나 토양 속에서도 살 수 있어서 소멸되지 않고 언제든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황열병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의 야생 원숭이가 옮긴다. 이 원숭이들은 대서양의 노예 무역을 통해 다시 신세계의 원숭이들과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소규모 인구 집단에 존재하는 또 다른 유행의 감염증은 나병이나 딸기종 같은 만성 질환이다. 이런 질병은 그 피해자가 죽기까지 매우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므로 피해자가 오랫동안 세균 저장소 역할을 하면서 소부족의 다른 구성원들을 감염시킨다. 나는 1960년대에 뉴기니 고지대의 카리무이 바심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나병 발병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자그마치 40% 정도였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소규모 인구 집단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면역성을 가질 수 없는 각종 감염증에 대해서도 취약하다. 이런 질병은 일단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이라도 다시 감염될 수가 있다. 십이지장충을 비롯한 많은 기생충들이 그렇다.
고립되어 있는 소규모 집단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이 같은 유형의 질병들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질병일 것이다. 인류의 진화사에서 처음 수백만 년 동안, 즉 인류 전체 인구가 얼마 안 되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기간에도 인간은 그런 질병들을 충분히 진화시키고 존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질병들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야생친척인 아프리카의 대형 유인원들에게도 발병하거나 유인원들이 앓는 질병과 유사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앞서 살펴보았던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구 집단은 약 10,000년 전에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가속화되었다. 실제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전염병들이 처음 나타난 것은 놀라울 만큼 최근의 일이다. 천연두는 B.C.1600년경이었고 (이집트 미라의 마마 자국에서 추론한 연대), 볼거리는 B.C.400년경, 나병은 B.C.200년경, 소아마비가 처음 유행한 것은 1840년, 그리고 에이즈는 1959년이었다.
이번 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완치 후 다시 양성반응을 보이는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 인구 집단에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면역성을 가질 수 없는 감염병에 매우 취약하기에 인간에게서 질병을 진화시키며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균들에게 행운을 안겨 준 농경과 도시의 발생
농업의 발생이 왜 대중성 전염병의 진화를 촉발시켰을까?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앞서 언급했듯이 농업은 수렵 채집 생활보다 훨씬 더 높은 인구 밀도(대략 10배에서 100배)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렵 채집인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기므로 그때까지 세균이나 기생충 유충들이 잔뜩 축적되어 있던 분뇨 더미를 남겨두고 훌훌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농경민들은 정주형 생활을 하면서 오물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각종 세균이 한 사람의 몸 속에서 다른 사람의 식수 속으로 옮겨가기도 쉽다.
어떤 농경민들은 자기들의 똥과 오줌을 모아서 사람들이 일하는 밭에 비료로 뿌려 그 분뇨 속에 섞인 세균이나 기생충이 더욱 쉽게 새로운 피해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관개 농업과 물고기 양식은 주혈흡충증을 옮기는 달팽이에게, 그리고 인간이 분뇨 섞인 물속을 걸어 다닐 때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흡충류에게 이상적인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정주형 생활을 하는 농경민들을 포위하는 것은 그들의 분뇨뿐 아니라 사람들이 저장해 놓은 식량에 이끌려 와서 질병을 퍼뜨리는 설치류도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농경민들이 숲을 베어낸 개간지는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들에게 이상적인 번식지가 된다.
이렇게 농경의 발생이 세균들에게 큰 행운이었다면 도시의 발생은 더 큰 행운이었다. 전보다 더욱 조밀한 인구가 전보다 더욱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 인구는 20세기 초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중성 질병으로 끊임없이 죽어가는 도시 거주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시골의 건강한 농부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여와야 했다. 세균들에게 또 하나의 행운은 세계 교역로의 발달이었다. 그로 인해 로마 시대에는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가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세균 번식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드디어 천연두가 ‘안토니우스 병’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도달했고, 그 결과 A.D.165SUS~180년에는 수백만 명의 로마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찬가지로 흑사병도 ‘유스티니아누스’ 병‘이라는 이름으로 A.D.542년~545년에 유럽에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흑사병이 유럽을 본격적으로 뒤흔든 것은 1346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중국과의 육상 무역을 위한 새로운 교역로가 뚫리면서 전염병이 만연하고 있던 중앙아시아로부터 벼룩이 우글거리는 모피들이 유라시아의 동서 축을 따라 유럽으로 신속하게 운반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제트기가 있으므로 인간의 전염병이 지속되는 시간이면 제 아무리 긴 대륙간 항로라 하더라도 충분히 날아갈 수 있다. 그 덕분에 1991년 어느 날 아르헨티나 항공 소속의 여객기 한 대가 페루 리마에 기착했다가 콜레라에 감염된 수십 명의 승객을 싣고 거기서 4800km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로스엔젤레스에 같은 날 도착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세계 여행과 미국으로의 이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미국은 또 하나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인종과 문화의 도가니가 아니라 예전에는 머나먼 이국의 질병일 분이라고 생각하던 온갖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이 마구 뒤섞인 세균의 도가니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현재 코로나19가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감염병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인들의 이민으로 형성된 인구밀도 구조를 갖고 있고, 특히 뉴욕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비약적으로 확산된 이유 또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흡수하고 있는 도시의 발달과 큰 관계가 있다는 점이고, 세계 교역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질병의 감염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다. (정리: 이현숙 기자)
♣새로운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아무튼 인구가 충분히 많아지고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에게 국한된 대중성 질병을 진화시키고 존속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는 하나의 모순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같은 질병들이 이전에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에 진화되어 새로운 질병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질병을 일으키는 이들 세균에 대한 분자 연구를 통해 최근 여러 가지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많은 세균들에 대해 분자생물학자들은 이제 각 세균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역시 대중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이다. 다만 우리의 각종 가축이나 애완동물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유행병은 동물의 경우에도 대규모의 조밀한 집단을 필요로 하며 아무 동물이나 무차별로 괴롭히지 않는다. 즉, 대중적 전염병들은 대체로 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 동물들에 국한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나 돼지 같은 사회적 동물을 가축화시켰을 때 이 동물들은 이미 그러한 유행병에 걸려 있었으므로 그 세균이 우리에게로 옮겨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예를 들어 홍역 바이러스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유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이 지독한 유행병은 소를 비롯하여 많은 야생 반추 포유류를 감염시키지만 인간은 우역에 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도 홍역에 걸리지 않는다. 홍역 바이러스와 우역 바이라스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곧 우역 바이러스가 소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긴 후 우리 몸에 맞도록 특성을 변화시켜 홍역 바이러스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많은 농부들이 소의 똥, 오줌, 호흡, 상처, 피 등과 가까이 산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처럼 세균이 옮겨진 것쯤은 조금도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인류는 소를 가축화한 이후로 장장 9000년 동안이나 소와 가까이 지내왔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우역 바이러스가 가까이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낯익은 다른 전염병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처럼 동물 친구들의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같이 인간의 질병은 동물을 가축화 하면서 동물에게 존재하는 세균이 다른 형태로 인간에게 옮겨와 인간의 질병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소에게서 일어난 광우병이나, 돼지에게서 발생한 돼지열병, 조류에게서 발생하는 조류독감 등은 인간 에게 똑같은 형태의 질병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사한 다른 바이러스로 변형되어 인간에게 치명적 질병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리: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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