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차남 정학유 여행기록 ‘부해기’도 번역
한양대 정민 교수는 강진과 가장 친숙한 학자이다. 많은 지식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삶을 바꾼 만남⌟은 다산의 1호 제자 치원 황상의 일대기를 그린 수작으로 독서계에 충격을 크게 주고도 남았다. 치원 황상의 위대한 공부의 여정을 씨줄날줄로 엮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다산의 장남 학연과의 인연을 유감없이 잘 드러낸 책으로 다산 정약용에게 치원 황상과도 같은 제자가 있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리고 다산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도 조명된 작품이었다. 그 후 정민교수는 ⌜백운동 별서정원⌟을 펴냈다. 성전면 월출산 기슭인 백운동에 자리한 ⌜백운동 별서정원⌟은,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의 부용동 원림과 담양군 남면에 있는 소쇄원과 함께 남도의 3대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백운동 별서정원⌟을 아름답고 정확한 필치로 엮어낸 학자가 정민 한양대 교수이다. 정민 교수는 최근에 용혈암에 대해서도 책을 펴낸 바 있어 강진과 인연이 깊은 교수이자 학자이다.
그런 정민 교수가 이번엔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1786~1855)의 신안 흑산도 기행기가 18일 공개한다. 3일 신안군에 따르면 다산 집안의 책 ‘유고’ 10책 가운데 8~10책에 수록된 정학유의 문집 운포유고에서 ‘부해기’를 한양대 정민 교수를 통해 추진되었다고 밝혔다.
부해가는 흑산도 기행기다. 흑산도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섬으로 남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홍도와 다물도, 대둔도와 영산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루고 있다.
다산 정약용과 함께 유배길을 떠났던 손암 정약전은 절해고도 흑산도로 유배길을 떠났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용은 1809년 학유를 흑산도로 보냈다. 한해 전 정약전의 아들 정학초가 17세 나이에 세상을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이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부해기는 정학유가 아버지 정약용의 당부로 큰아버지 정약전을 만나기 위해 1809년 2월 3일부터 3월 24일까지 52일간 흑산도를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부애기에서는 그의 빼어난 글을 통해 문학세계가 펼쳐지는데, 흑산도의 풍경, 특산물, 풍속과 주민 생활, 중국 표류선, 여러 나라를 표류했던 문순득 이야기, 산개 이야기, 인어 이야기 등을 세세하고 다채롭게 적었다.
정민교수는 “정학유는 다산의 학문 활동을 도운 인물이고, 농가 풍속을 읊은 ‘농가월령가’ 지은이로 알려졌지만, 학계에서 자세히 연구되지 못했던 인물이다”며 “이번 부해기에 나오는 그의 빼어난 글로 됨됨이가 알려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해기 1809년 2월 12일자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고래 다섯 마리가 나와 노닐며 멀리서 거슬러 왔다. 그 중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는데, 그 형세가 마치 흰 무지개 같고, 높이는 백길 남짓이었다. 처음 입에서 물을 뿜자 물기둥이 하늘 끝까지 떠받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리어 옥 같은 눈이 땅 위로 떨어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비치자 광채가 현란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 글은 흑산도가 멀리 바라다보이는 고맥섬(흑산면에 있는 무인도) 인근에서 고래를 목격하고 쓴 글이다. 이밖에도 다산 일가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여러 자료도 새로이 공개된다. 정민 교수는 “다산과 정약전은 서로의 유배지인 강진과 흑산도에 대해 ‘여기가 더 좋은 곳’이라며 일종의 토론을 벌였다. 그 편지를 이번에 확인해서 시간 순서로 엮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약용이 형에게 보낸 편지는 ⌜여유당집⌟에 실려 있지만 정약전의 답장을 문답식으로 구성한 적은 없었다.
이번 부해기와 함께 다산 서간문이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어서 다산의 실학 정신이 살아있는 강진에서는 다산 형제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게 됐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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