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색과 향기와 맛
진향(眞香)
차향은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는데 이미 육우의 『다경』에서 사향구난(四香九難)을들어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 과 네 가지 향이 있다고 했다.
그 네 가지 차향은 차의 바깥 것이나 입자의 속까지 한결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순수한 향기의 하나인데 차를 만들 때 자칫 잘못하면 겉은 익고 속은 설익는 수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불이 활활 타서 솔이 너무 뜨거운데 부드럽고 서세한 차잎을 넣어 금방 타는 소리가 나면 이치를 몰라 당황스럽고 난감하여 넣자마자 꺼내기가 일쑤이다.
그것은 몇 번이고 꺼냈다 넣었다 반복하지만 제대로 균일하게 익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차는 표리가 부동하여 안과 밖이 같지 않아서 순수한 차 향기는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청향(淸香)인 맑은 향기 또한 불생불숙(不生不熟)한 이와 같은 이치인 것이다.
불기운, 다시 말해 불가늠, 즉 불의 높고 낮음이 골고루 퍼져 제대로 만들어진 차에서는 난향이 나오고 우전, 즉 곡우전이 아니라 제철에 제 스스로 자연의 기운을 지녀 얻은 차잎으로 만든 차에는 진향이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이물질이 섞여 있거나 솥에서 어울려 나는 나쁜 차 향기나 차향기가 새어나가 떠 있는 향이 나는차는 부정한 기운이 어려 있는 차여서 좋은 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차를 막 만들었을 때의 얘기도 되지만 좋은 차라도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잡향이 섞일 수도 있고 차의 수분을 제대로 말리지 못하여 차 자체에서 곰팡이 냄새나 너무 태운 고수운 냄새(향기), 그 밖의 향기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차는 그 자체가 천성의 향기를 지닌 것인데 꽃을 넣는다거나(쟈스민차나 요즈음 많이 만드는 연꽃차나 국화차 같은 종류) 또는 송나라 시대의 차처럼 용뇌향을 넣은 것이나 진과(珍果) 또는 향초(香草)를 넣은 차에서는 순수하고 밝은 난향의 차 향기를 얻을 수 없다.
송나라 차인 채양은 그의 저서 《다록》에서 "차는 스스로 천향, 즉 진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당대와 송대 때는 단차시대여서 떡차(단차)를 끊일 때 여러 가지 향료나 생강, 용뇌 등을 섞어서 끓였던(煮茶) 것이다.
어쨌든 세상에 스스로 지니고 있는 천연의 자연 향기가 으뜸인 것이 차뿐이겠는가-
감윤(甘閏)
차 맛에 있어서는 달고 윤택한 것, 입 속에 안기는 풍요한 맛이 으뜸이며 쓰고 어쩐지 건조한 맛은 나쁜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차 맛이 텁텁하고 싱그럽지 못하는 것은 차의 순수한 맛이 아니다.
물론 아무리 쓴 차라고 해도 입 안에 오래 머물고 있거나 설령 마셔버린 차라도 침샘이 돌아 단맛이 나기도 하고 목구멍에서 단맛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차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떫고 쓴 탄닌의 맛이 폴리나인에 녹아서 나는 맛이다. 좋은 맛의 화, 즉 감윤(甘閏)의 차는 마시는 그때에 달고 싱그러운 느낌과 풍요한 행복감을 느껴야만 천하의 명차이다.
모든 차, 즉 보이차, 우롱차, 설령 버린 차에서조차도 짙게 차를 욹히면 단맛은 나온다. 두 번 말하지만 차 맛은 감윤하고 차 향기는 싱그럽고 풋풋하고 차 색은 푸른 호수빛, 가을날의 하늘빛을 닮은 비취색 청자 같은 빛깔이어야 한다.
그것밖에 더 보탤 일이 무어 있으리.
차는 너무나 순수 무구하여서 조금이라도 차 아닌 다른 이물질(잡것)이 섞여지면 이미 차가 아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때묻지 않은 처녀의 순수한 정결의 밝음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차는 정결한 미인 같다는(茗茶似美人) 것은 겉모습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티없는 순수 그 자체를 일컫는 의미이다.
추사의 아우 산천도인 김명희는 ‘차는 삿되지 않아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노래한 시를 초의스님께 보내오기도 하였다. 군자의 지조 높고 고고한 성품을 차로 비유하는 것은 도를 닦는 수행자 선비가 조금이라도 삿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차에 잡것이 섞이면 그 본바탕을 잃어버리듯 군자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잡것이 섞이면 차의 진성을 잃는다
이렇듯 차는 스스로 참다운 향기와 밝고 고아한 빛깔과 순수한 맛을 지니고 있어서 한 티끌의 잡것, 삿된 냄새 등 이물질에 물들면 곧 참다운 맛을 잃게 된다(茶自有眞香, 有眞色 有眞味하니 一經點染이면 便失其眞이니라)고 적고 있다. 첫물에 소금기가 있거나 차에 염료를 넣거나 찻그릇에 생강이나 과일 같은 액즙이 있으면 순수한 성품을 잃는다. 여기서 더욱 세세하게 살펴보면 차를 달이는 물 자체에 짠맛이 나거나 다른 이물질의 맛 즉, 물비린내 또는 흔히 약수라 불리는 알카리물이나 탄산가스가 많이 들어 있거나 유황 냄새(광천약수 같은 것) 기타 다른 냄새나 맛이 있는 물도 점염에 속한다.
여기서 다신전 밖의 옛 중국 문헌 속에 나오는 차문화의 사적고찰을 잠시 살펴보자. 김명배 선생님의 《다도학 논고》에 의하면 사람들의 차마시는 유형을 세가지 형태로 고찰하고 있다. 먼저 식염법(食鹽法)이 있는데 찻잎을 먹는 방법으로서 말차의 점다법(點茶法) 등을 가리킨다. 두 번째는 음즙법(飮汁法)인데 끊인 물에서 찻잎의 성분요소만을 우려 걸러 마시는 방법으로 잎차의 포다법(泡茶法)을 가리킨다.
다음이 잡화법(雜和法)이다. 잡화법은 차에 조미료나 향신료 등을 섞어서 마시는 방법인데 여기서 몇 가러로 더 분류된다. 염강류(鹽薑類) 즉 염법과 강법이 있다. 당시대의 육우는 다경에서 '처음 끓으면 물의 량에 맞추어 소금 맛으로 고른다'고 하였다. 또한 ' · · · 혹은 파, 생강, 대추, 귤껍질, 수유, 박하 등을 넣고서 오래 끊인다. 혹은 달여서 거품을 버리기도 한다. 죽다류(粥茶類)가 있는데 서진 부함의 《사예교》는'듣자니, 남시에 죽을 쑤어 파는 촉의 할미가 있다던데· · · ' 라고 적고 있는 문헌을 살펴 짐작컨데 찻죽을 쑤어서 먹었던 풍습인 것 같다.
물론 조선시대의 신숙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일본에서도 차로 죽을쑤어 길거리에서 팔고 있어 은전을 주고 사먹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과실류로는 명나라 전춘년의 《제다신보》에는 '만약 꼭 섞지 말 것을 말한다면 호도, 개암, 수박씨, 대추씨, 마름싼, 감람씨, 밤계두, 은행, 마, 마른 죽순, 지마, 거호, 상치, 미나리 따위는 정제하면 어찌다가 쓸 수도 있다고 적혀있는데 모두 차의 약탕을 마셨던 얘기다.
이렇듯 단차시대인 당 ·송 시대에는 순수하게 차만을 우려먹지는 않았다. 포다 시대에 이르러서야 앞서 말한 약과 향신료는 섞어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성분이 묻어있는 물이나 그릇을 금기시키며 차의 순수를 단번에 잃어버린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차는 차와 물 자체의 순수가 어우러져 피어나는 빛과 색과 맛의 조화로운 향연이 아닐 수 없다.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차는 차이고 물은 물일 쭌 그 이상의 무엇을 얻으려 하면 법도를 거슬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차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 그 영혼을 맑게 닦아내는 것이다.
변질된 차는 마셔서는 안된다.
필자는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곧잘 한다. “맛있고 귀한 음식일수록 일찍 먹어라. 귀한 것을 아끼다 씩혀 버린다. 못살고 힘든 시대를 지나며 우리는 모든 것을 아껴 간수하는 습속을 익혀왔다. 그래서인지 더러 차 하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 스님이 왔다고 장롱 속에 간수한 차를 꺼내서 대접한다. 그런데 여러 겹 포장이 되어 바람이 통하지 않거나 몇 년이 되어서 변질되고 곰팡이냄새가 나는 것도 있었다. 미안해서 할 수 없이 마셔 배탈이 난 때도 있었다.
아끼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차를 처음 만들면 비취색의 가을 하늘빛, 남쪽의 청무빛 밝은 기운이 감돌아 진한 감동을 받는다. 감윤한 풍성한 빛의 격정을 맛본다. 그런데 이런 차도 간수를 잘못하면(收臟에 不得其法하면) 한 번 변하여 이끼 같은 불투명한 초록색을 띄고 다시 변하여 누런 황색이 되고 그것이 검게 썩은 빛을 내고 다음에는 하얀 곰팡이가 피는 낭패를 만난다.
그것을 잘못 마시면 위장을 뒤틀리게 하는 배앓이를 하고 계속 차가와져서 심하면 기가 수척해지는 적(積)이 된다. 적이 심하면 현대말로 세포의 굳음, 암의 일종이 되는 무서운 병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차라도 빨리 마셔야 되는 것이다. 설령 그 해에 만든 차라도 변하지 않는 차는 가을이 되어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차를 품평하여 명차를 선정할 때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에 끝내는 사려깊은 차생산의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 나라처럼 봄에 그것도 몇 가지 안 되는 브랜드로 명차를 선정하는 것은 한 말로 어불성설이다. 중국은 올해 2천 종류 이상의 차가 출품되었다고 한다. 제발 역사의 깊은 숨결을 크게 고르는 차문화인이 되자. 겉치레로 상내고 낯내는 차문화 풍토는 대중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그 문화는 소외된 채 21세기 지적 문화의 강물에 빗겨 가기 마련이다.
굳이 차인이 아니라도 건강하고 세련된 차문화를 눈여겨볼 줄 안다. 결국 역사의 무대 위에서는 고급 문화의 양식이 있는 품격 있는 차인 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