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62회)
대구면 수동마을
이옥년(87)할머니
“어따 이 천지야, 천치 같은 년아...”
이할머니는 장흥 관산 방촌에서 19살에 수동마을 외아들에게 시집왔다. 가난한 친정에서 태어나 시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던 나이에 느닷없이 시집을 왔지만, 시집 또한 가난은 마찬가지였다. 일제시대 감자를 솥에 쪄서 으깬 다음 점실(서숙)을 섞어 죽을 쑤어서 먹거나, 일본사람들이 보리쌀을 모두 공출해 간 다음 맷돌에 갈은 보리쌀을 주면 물을 끓여 풀어서 먹었으며, 보리쌀만 푹푹 삶아서 퍼지도록 하여 먹는 것이 주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후회는 지랄이나해, 부모들이 여워주먼 그 자리가 살 줄만 알었제.”
결혼시부터 병약했던 남편은 시름시름 아프더니 이할머니가 2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큰 아들이 네 살이고 둘째 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밭에 가서 콩 내서 이고오고, 점실(서숙)내서 이고오고, 목화 따고 나락 비어서 이여다가 집에다 여날르고 넘 밭에서 죽도록 일허고······저그 정수사까지가서 나무혀서 이고오고······일만 송신나게 했제. 멍청이라 살었제, 영리헌 사람 같으먼 시집 가 부렀겄제.”
어린 자식 두고 갈 수 없어 살았느냐고 물었으나, 쉽게 대답하지 못하신다. 그도저도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가 살기도 힘들었다는 대답이다. 자식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날 새면 산더미 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식 생각이 뭔지도 모르고 산 세상이었다며 한숨을 짓는다.
“아! 맘만 묵으먼 데고라도 가불제, 전에는 그럴까허먼 처부자식(넘 첩노릇) 소리 듣기 싫어 참고 산 세상이여 징합소 징해·······징헌 시상을 끄셔 낼라먼 한정없어.”
논이 적고 끝없이 밭만 있던 대구면이어서 아낙네들은 눈뜨면 밭에서 살았다.
“어매어매 우리어매, 뭣할라고 날 낳아서, 나 이런 데로 보냈는가, 암만해도 못살겄네 참말로 못살겄네········”
매어도 매어도 뻗어나오는 잡초와의 전쟁은 눈물과의 전쟁이기도 했다. 서러워도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세상에서 오로지 밭을 매는 시간만은 혼자서 서러운 노래라도 부르며 맘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밭을 매지 않는 철에는 마량장에 가서 감태를 받아 강진읍 장에 가서 팔기도 하고, 반지락을 캐서 대덕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것만이 손에 돈을 쥘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흘 동안 한 주먹씩 캐다 모은 반지락을 이고 장날이 되면 40리 길 대덕장으로 향했다.
“굶고 댕김시로 날만새면 폴로 갔재. 장사가 많은디 쉽게 폴리기나 헐것이요?”
쌀 한 되에 30원 하던 시절이니 오백원이나 천원이 손에 쥐어지는 맛이란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죙일 굶고 해넘어 네시나 됐을까, 인자 돌아 옴시로 갖고 갔던 주먹밥 띠어 묵음서오제.”
동네 아낙들이 여럿이 가지만 돌아와도 반겨줄 사람 없는 집안은 발 들이기가 쓸쓸하다. 시어머니는 붙임성 있는 말 한마디 없고 입 열면 독살스런 말만 내 뱉어서 그나마도 미어지는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어따이 천치야, 천치 같은 년아······.”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보면 화를 냈다. 외아들을 잃은 한을 며느리에게 모두 퍼 붇기라도 하듯 ‘천치 같은 년아’라는 말을 별명처럼 입에 담고 살았다. 그 또한 며느리가 시집이라도 가버릴 것이지 한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이유였지만, 시어머니는 자신의 한 맺힌 절규를 매일 같이 며느리에게 활살처럼 쏘아댔다.
“어찌게 소리를 질러싸고 무시케혀서 보따리를 싸가고 장으로 가는 산길에 퍼질러 앉었는디, 암도 가잔말을 안허더만······.”
며느리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가자, 동네방네 소문을 내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돌아오자 ‘저년이, 보따리 싸들고 다시 오네’ 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목매달아 많이 죽었어. 베틀을 짜다가도 여그다가 목매들아 죽어부리까 하는 생각을 허고, 고사리를 끊으러 가서 굴이 하나 보인디, 저 안에 들어가 죽어부리먼 암도 몰르겄구나 싶고······.”
서러움이 밀려와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려도 타고난 팔자가 그러려니 하지만, 남에게서 받는 설움은 평생에 못이 되어 박혔다.
“아그들이 학교 납부금을 주라고 하길래, 구판장에 가서 내일 줄랑게 돈 좀 빌려 주쇼. 했더니······ 아직에는 돈 안주요 험시로 느닷없이 '니미 시발놈의 늙은이 때려죽일랑게‘ 라고 소리를 친디······눈물나게 가슴에 맺히고 분합디다.”
그 사람과는 3년간을 말을 안했을 만큼 독하게 마음을 먹고 살았지만, 혼자이다 보니 속는 일도 허다했다.
“당연시 줘야 할 것을 '못줘! 못줘! 허고 달라듭디다. 그라도 힘이 없응께 어쩌겄소. 그놈도 일직 다 뒤져 부렀소. 못쓰게 맘 쓴 사람들 일찍 뒤져붑디다.”
평생에 고생밖에 타고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할머니. 남편을 어디서라도 다시 만나면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라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큰아들 윤곤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이할머니는 7녀1남의 손주들을 정성껏 키워 초등학교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한 세월을 누구하나 말 할 사람 없더만,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며 기자의 손을 꼬옥 잡으신다.
“모지리는 못 죽겄더라고, 암만 죽을라고 혀도 못죽어······근디 대통령은 잘났응게 죽제·····죽는 것이 그리 힘들더라고.” (이현숙 기자)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