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81호에 이어
만든 차의 간수 /장다/
우리 나라의 차문화 풍토는 어떤가. 대개 차를 만들자마자 은박지에 담아 화기(火氣)에 의해 눅눅해져 금방 변질되는 더구나 날짜를 다투어 시중에 내는 것은 장다의 정도(正道)를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우전에 매달려(집착) 하루라도 일찍 차를 시판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차를 얻고자 하는 차인들도 우전에 매달려 함께 성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햇차를 빨리 얻어 지인들에게 또는 불전이나 성전에 헌다하고자 하는 고운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신전에서 살펴보듯이 옛 차인들은 차를 바싹 말려(極乾:극건) 차합(茶盒)이나 차단지에 저장했다가 삼일이 지난 후에 차의 본성(本性)이 회복(왜냐하면 여린 차싹들이 뜨거운 물이나 증기에 의해 생명에너지가 거칠어짐에 본래 성품대로 환원되는 과정)된 뒤 가벼운 불로 바싹 말려 보관하는 지혜를 보이고 있다.
아무리 차를 잘 말린다 해도 한 번에 말리면 아무래도 습기가 남아 그만큼 변질되기가 쉽다. 그래서 여러 번 말리는 것이다. 물론 이 때 외형의 차색이 변하기도 하고 자칫 잘못하여 불길을 조금만 높여도 차의 성품은 미세하여 화기가 스며 탄내가 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장다에 있어서 진귀한 일은 저장되는 과정에서 차 스스로가 숙성되어 순화되는 일이다. 강한 차도 저온 냉장에 보관하면 순해지고 달리 순한 차는 좀 더 미세해지는 일이 이 장다과정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차를 많이 담아서 간수하면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다.
좋은 차는 장마가 지난 가을 더구나 이듬해 봄까지도 한결같아야 명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다를 거치지 않고 봄에 마시는 차야 어느 누가 만들어도 어지간한 맛과 색과 향기를 지니기 마련이다. 좋은 명당에서 영혼이 편히 쉬듯 정성스럽게 만든 차를 곱게 쉬게 해야 진정한 차의 도리가 아닐까.
불 살피기 (화후)
차를 달이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야 하는데 그냥 마구잡이로 불을 지피거나 아무 숯이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자연적인 땔감이 아니면 물을 끓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숯을 만드는 나무의 질료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대부분 취사를 하고 난 다음 얻어지는 화롯불 또는 군불이나 여물 등을 만들기 위해 지피는 불로 화롯불을 마련했던 것이다. 잘 사는 사대부 양반 집에서는 숯을 피워 화로에 담아 방안의 냉기를 덜며 물을 끓이는데도 이용했다.
숯은 대부분 참나무를 썼지만 차를 많이 사랑했던 문인묵객들은 여러 가지 특별한 나무로 숯을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가령 남쪽 지방에서는 숯이 아닌 장작 나무를 지펴도 연기가 훨씬 덜 나는 가시나무 목이나 싸리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만들었다. 더구나 제주도 지방에서는 벚나무나 녹나무 등의 참숯보다 훨씬 화력이 세고 연소가 잘 되는 재료가 있었다.
아무튼 차를 달이는 차가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이 불의 재료이고 또한 불가늠을 잘하는 것이 첫째라고 초의 스님은 강조하고 있다.
《다신전》의 화후(火候)장 전문을 살펴보면 화로의 불이 벌겋게 달았을 때 물그릇(탕관이나 다호 또는 탕반)을 얹고 느릿느릿 부채질을 하다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면 점점 세게 부치는 것을 소위 문무지후(文武之候)라 한다. 문이 지나치면 다시 말해 불길이 약하면 물의 성품(水性)이 유연해져서 차신(茶神)이 아래로 가라앉고 반대로 불길이 세면 불의 성품, 즉 화성(火性)이 극렬하여 차가 물에 제압을 당한다(過於文則水性柔, 柔則爲茶降, 過於武則火性烈 烈則茶爲水制)라고 당부하면서 불길의 조정이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느릿하게 해서는 차 끊이는 집의 살림살이가 아니라고 했다.
옛날은 찻물을 끓이는 데 중화(中和)의 법도 즉 중정(中正)을 잃지 않는 것이 최대의 팽가지요(烹家旨要)였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다신전》에 살펴봤듯이 불길을 지나치게 또는 급하게 높여서 물을 빨리 끓게 하여 도가 지나치면 노수(老水), 즉 물의 성품을 버리게 된다. 반대로 불길을 느릿하게 늦춰 물이 덜 끓으면 다시 말해 뜸이 들지 않으면 무덤덤해 차맛의 깊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은 가전제품이 다양하며 찻물을 끊이는 데 옛날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스불은 지나치게 불길을 올려 물을 순식간에 끓여서 수성이 강해지는 노수가 되기 십상이고, 포트의 물은 쉽게 끓을 뿐만 아니라 끓은 물이 포트에 계속 담겨 있어 그 물로 차를 우려내면 쇳내로 차의 향기와 맛은 물론 차의 색상까지 버리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차인이라면 찻물 끓이는 화후, 즉 불가늠을 더욱 세세하게 해야 할 것이다. 가령 가스불에는 가능한 한 불길을 가장 낮게 내려 서서히 끓여야 하고, 포트도 역시 가장 낮은 단계의 버튼을 사용해야 한다. 더욱 명심할 것은 포트의 물은 한 번만 사용해야지 한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끓는 물의 상태로 온도가 유지돼 있다 해도 한번 끓은 물은 이미 물의 미미한 성품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소이(蘇廙의 《탕품》에서는 “끓인 물(湯)이란 차의 목숨을 맡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차인들에게 던지는 이 얼마나 무서운 경책인가.
차의 목숨을 맡은 끓인 물이 시원치 않으면 아무리 천하의 명차라 해도 평범한 차와 다를 바 없다고 소이는 얘기하고 있다. 그도 초의스님과 마찬가지로 차 달이기에 있어서 물을 지나치게 끓이거나 덜 끓인 것을 노눈(老嫩)이라 표현하며 맹탕(덜 끊은 물)을 경계하고 있다.
다음 탕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되겠지만 육우의 다경에는 물이 끓는 단계를 몇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물이 어린 물고기 눈알처럼 방울져 슬슬 끓어오르며 가느다란 소리를 낼 때를 일비(一沸)라 하고, 솥 언저리에 용천주(湧泉珠)가 연달아 방울져 끓어오를 때를 이비(二沸)라 하며, 끓은 물이 버글버글 북 치듯 뛰놀 때는 삼비(三沸) 한다 하였다. 이 이상 계속 끓이면 노수가 되니 우려낸 차를 마실 수 없다고 하였다.
《제다신보》(製茶新譜)를 썼던 전춘년은 그의 저서에서 차를 달이는 네 가지 요지(煎茶皿要)를 밝히며 무엇보다 물 고르기. 즉 택수(擇水)와 끓은 물 살피기(候湯)를 들고 있다. "대저 차는 모름지기 불로 굽고(병차 즉 떡차), 생기 있는 불에 달일 지어다”라고 했는데 생기 있는 불이란 불꽃이 있는 숯불을 일컫는다. 물을 억지로 끓게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바라건대 차를 양생(養生)시키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물고기 눈(魚目)과 같은 거품이 흩어지다가 어렴풋한 소리가 난다. 복판은 네 가장자리에서 샘 같은 물이 끓어오르고, 길게 이어진 구슬이 서로 잇닿은 것처럼 되다가 마지막에는 물결이 뛰어오르고 북 치듯이 넘실거리다 불의 기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쇳물이라고 일컫는다. 세 번 끊이는 법은 생기 있는 불이 아니면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대저 차는 적고 끓인 물이 많으면 구름발(雲脚)이 흩어지고, 끓인 물이 적고 차가 많으면 젖 같은 액이 표면에 모인다. 여기서 말하는 운각은 말차를 일컫는데 《제다신보》를 인용하는 의미는 생기 있는 불, 즉 불 살핌이 차맛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러 차문화 고전에서 살펴보았듯이 불 가늠은 오늘날 특히 지켜야 할 요체(要体)이다.
"대저 만물이란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이라도 뛰어난 사람을 기다려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 사물이 반드시 귀하지 않은 것인데도 사람에 따라서 소중한 것이 있다"라고 《대명수기》에서 구양수가 말한 것처럼 차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찻물을 귀하게 얻어 어떤 사물에서도 볼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것을 느끼고 각성하는 영혼의 기쁨, 그 드러남의 미학을 위해 차생활을 소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끓은 물 분별하기 (탕변)
"끓인 물이란 차의 목숨을 맡는 것" (소이 :십육탕품)이라고 했듯이 차의 목숨 같은 끓인 물을 어떻게 분별(가리기)할 것이며, 어찌해야 차 달이기에 알맞은 끓인 물을 얻을 수 있을까.
〈다신전〉에는 물을 끓일 때 크게는 세 가지 에서부터 작게는 열 다섯 가지로 분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째로 물이 끓은 형태로 분별하는 성변(聲辨)이 있고, 둘째로 물이 끊는 소리로 가리는 형변(型辨)이요 셋째로 물이 끓어오를 때 김으로 분별하는 기변(氣辨)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물이 끊은 형상은 물 끓인 그릇 안을 통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내변(內辨)이라고 일컫고, 물 끓은 소리를 바깥에서 듣고 그 끓인 물이 잘 끓었는지 못 끓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어 외변(外辨)이라고 얘기하며, 물이 끓어오를 때의 수기(水氣), 즉 김을 민첩하게 감으로 느끼는 기변을 얘기하고 있다.
형태, 즉 형상으로 나타나는 물의 모양새가 마치 작은 바닷게의 눈알 같고, 다음에는 게눈보다 조금 큰 모양의 새우눈알 같은 형상을 이루고, 그 다음은 큰 물고기의 눈알 같은 것으로 변하여 연이은 구슬 같은 형상을 띄우는데 그 네 단계의 끓은 물은 모두가 다 맹탕, 즉 뜸이 덜든 탕수(湯水)라는 것이다. 끓는 물이 솟구쳐 오르고 그 기세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여 수기가 모두 소멸되고 태풍 뒤의 바닷물처럼 고요해진 형태가 비로소 잘 끓은 물이 되며 이것을 순숙이라 이르고 첫 번째 탕변이라 말하고 있다.
그 다음은 소리로 구별하는데 맨 처음 물이 끓을 때 들리는 초성(初聲), 마치 가랑잎이 가을 대지를 구르는 듯한 전성(轉聲), 창호지 문풍지가 떨리는 듯 들리는 진성(振聲), 마지막 단계로 푸른 허공에서 독수리 날개 치는 소리와 파초잎 위로 구르는 소낙비 내리는 듯한 소리인데 이 또한 맹탕이라 한다. 끓는 물소리가 모두 사라진 무성(無聲), 그야말로 적막강산 같은 적멸에 이를 때 비로소 잘 끓은 결숙(結熟)이라 말하고 있다.
세 번째로 물기운(水氣)으로 분별하는 기변이 있는데 역시 물을 끓일 때 김이 실타래처럼 엉키는 기는 모두 맹탕이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김이 곧바로 솟아올라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경숙(經熟)이라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생활 조건에서 물 한 바가지 끓이는 법이 이다지도 어렵다면 누가 차를 마시겠는가. 지나치게 까다로워 어디 제대로 차 한 모금이라도 마시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생활용수가 옛날보다 더 나쁘고 위험해서 더욱 물을 잘 끓여야 된다는 역설이 나온다.
앞서 초의스님의 까다롭고 세심한 끊인 물 분별하는 삼대변(三大辨), 십오소변(十五小辨)은 육우의 《다경》에 상당부분 언급돼 있고 더구나 명나라 장원의 《다록》에도 잘 설명되어 있다.
당시 물을 익히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병차, 즉 가루차를 끊여 마실 때 물끓이는 법과 산차, 즉 잎차 우려 마실 때 물 끊이는 법이 많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가령 초의스님은 3대변의 형변에 있어서 게눈, 새우눈, 물고기눈 그리고 연주(連珠)까지도 맹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송나라 시대의 器인 물에서는 게눈, 물고기눈, 용천연주(湧泉連珠), 그리고 등파고랑(騰波鼓浪)의 4단계로 구분하되 세 번째 단계인 용천연주로 끓인 물이 차가루와의 융합에 알맞다는 것이다.
더구나 명대의 허차서는 그의 저서 《다소》에서 두 번째 끓은 물을 적당한 것으로 보았는데 그 얘기대로라면 명대 또한 맹탕으로 찻물을 썼는데 어이없는 일은 같은 시대의 장원의 《다록》에서는 끓인 물이라면 모름지기 다섯 번 끓어야만 된다고 적고 있다. 오비순숙탕(五沸純熟湯)이라야만 차의 삼기(三奇), 즉 색·향·미의 기이함이 주효하다고 했다.
원나라의 원각이란 차인도 "차겨루기의 첩경은 다섯 번 끓이기에 있다”고 적고 있으며 청대에 《다사》를 썼던 유원장도 오비순숙탕을 강조하고 있다.
“당·송 시대의 차는 맷돌(茶磨)과 체를 거쳐서 가주가 되어 끓인 물에 들어가니 차의 신령스러움은 뜨기 쉽다. 그러므로 끓인 물은 어린 것을 취하고 쇤 것은 쓰지 않았다. 명·청 시대의 차는 잎차를 쓰기 때문에 끊인 물의 상태가 모자랄 때는 차의 신령스러움이 극도에 달하지를 않는다. 이것이 다섯 번 끓여서 완전히 익은 물을 취하는 까닭이다."
탕변이 얼마나 어려운 것 인가. 덜 익으면 물거품이 뜨고 지나치게 익히면 차가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차관이나 찻병의 뚜껑을 열고 매번 찻물을 살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현대 차생활의 탕변이 참으로 엉망이다. 음다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차 끓이는 다가에서도 법다이 하지 않는데 하물며 차 파는 찻집은 오죽하겠는가. 모두들 선에 이르는 깊은 정진은 고사하고 폼만 흉내 내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무대 위에 펼치는 차례에 있어서 차의 기본인 색 · 향 · 미는 어디 가고 행다의 몸짓만 있으니 어디 그것이 차례이고 다도인가. 차례든 다도든 차의 색·향·미·기가 제대로 나와야 그것이 차 살림살이 아니던가.
“불의 공이 쌓이고, 물의 성품이 다하고 말(斗)속의 쌀처럼, 저울 위의 물고기처럼 높낮이가 마땅하게 고르고, 과부족이 없는 것을 알맞은 정도로 삼는다. 대저 하나로써 치우치게 섞이지 않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밝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편안하다. 끓인 물은 하나를 얻어서 끓인 물의 공을 세울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 그 진리의 한 구절인 天得-以靑 地得-以寧(천득이청 지득이녕)을 인용하여 탕변을 얘기한 소이의 말이 차 살림살이 속에서 참으로 무섭고도 또 무섭게 느껴진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