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26)
미국에서 첫 직장
밀워키에서 아르바이트 (albeit) 로 직장 생활 경험은 있지만 미국에서 정규직 직장으로는 암달 주식 회사가 처음이다. 암달은 실리콘 밸리 (Silicon Valley) 의 중심부인 써니 베일 (Sunnyvale) 시에 위치한다. 벽돌로 된 새로운 건물에 주차장도 넓고 IBM 과 경쟁하는 회사로 최근에 설립되어 젊고 다이나믹 (dynamic) 한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컴퓨터나 EE 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설계나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DB 나 네트워크 설계도 그때까지는 일반화 되지 않고 Adabase 란 DB 관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DB 관리 프로그램인 Oracle 이 출현하기 전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단순 프로그래밍 업무만이 주어졌다. 암달에서 어떤 외부 전산 용역을 맡아 하는 것도 아니니 자연 사내 경영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서울 공대를 졸업하고 기계공학에서 석사와 산업공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는데 이게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는 역시 엔지니어야’, ‘내가 기계공학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쳤고 한국에서 거의 5년간의 실무 경험을 쓰레기로 버릴 순 없어’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을 기본으로 컴퓨터 응용 분야를 개발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회사가 카이저 엔지니어 (Kaiser Engineer) 다. 카이저 엔지니어는 샌프란시스코 옆 오크랜드 (Oakland) 시에 위치하고 주로 광산 개발과 토목 일을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회사가 오크랜드에 있었으므로 팰러 앨토에서는 자동차로 넉히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더구나 암달 같은 IT 회사에 비하면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했다. 업무도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여기도 내가 바라는 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2년 만에 다시 집 근처 팰러 앨토 인더스트리 파크 (Palo Alto Industry Park) 에 있는 시스템즈 컨트롤 (Systems Control) 사로 직장을 옮겼다.
시스템즈 컨트롤 사는 에너지 분야 시스템 분석, 컨트롤, 계획 및 정책 입안 등 용역을 주로 하는 컨설팅 회사다. 종업원은 약 150명 정도 되며 반 이상이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었다. 회장은 IEEE 회장을 하기도 했다. 팰러 앨토 인더스트리 파크 근처에는 컴퓨터와 전자기기 회사인 HP 및 하이텍 회사들이 들어서 있었다. 집에서 출퇴근 하는 데는 10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중국, 홍콩, 인도,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 엔지니어들이 함께 있어서 서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분위기였다. 말하자면 미국에서도 최상의 업무 환경이었다.
l 컴퓨터 그래픽스 (Computer Graphics)
카이저 엔지니어 사에서 일할 때 애플 컴퓨터 Macintosh 가 처음 출현했다. 그렇지만 시스템즈 컨트롤 사에서는 IBM 메인 프레임 컴퓨터와 미니 컴퓨터인 DEC 750 과 760 을 사용하고 프로그램 언어로는 파스칼 등을 사용했다. 80년대 초에 드디어 IBM PC (Personal Computer) 가 출현했다. 지금은 컴퓨터 사용에 있어서 그래픽스 (graphics) 와 컬러 모니터 (color monitor) 가 일반화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monochrome 모니터를 사용하고 제한된 그래픽 기능만 제공되었다. 특별한 용도로 그래픽 전용 터미널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IBM PC 가 등장하자 여기에 끼워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컴퓨터 그래픽 카드 (card) 가 출현하고 컬러 모니터도 만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그래픽스 기능을 처음 보자마자 컴퓨터 그래픽스야 말로 컴퓨터 활용에서 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컴퓨터 그래픽스에 대해 공부하며 자료 수집을 했다. 사내에서 내가 주관해서 컴퓨터 그래픽스에 대해 세미나를 열었다.
시스템즈 컨트롤 사에서는 내가 마켓 대학에서 전공했던 에너지 분야 컨설팅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내 전공분야와도 일치 했다. 하는 일도 연구용역이었으므로 미국에서는 비교적 상위 직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딘가 만족이 없었다. 미국 생활의 단순함이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고3 학생들도 2~3시경이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일찍 온다. 물론 한국처럼 방과 후에 학원에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내준 간단한 숙제를 끝내면 그만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오후 5시쯤 일과가 끝나면 거의 집으로 곧바로 퇴근한다. 퇴근 후에는 잔디를 깎든지 집을 고치는 일을 한다. 아니면 동네 애들을 모아 놓고 농구, 야구, 미식 축구 등을 가르치며 같이 즐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 젊은 날을 보낸 나로서는 이러한 미국 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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