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
ESRI Member 가 되다
연상호 박사는 서울공대 토목과 출신으로 머리도 좋고 자기전공 분야에 대한정보통 이었다. 국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대학교수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자기 중심적이고 잘난 체를 해서인지 그 분야 대학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 주변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수 임용에 번번히 낙방 했다. 대학원 졸업 후 특별한 직장이 없었고 우리회사 안섭 과장 하고는 대학 동기라서 나에게 가끔 들렀다. 나에게 들르면 나는 점심도 사고 용돈도 가끔 주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어느 날은 군에 입대한 동생이 싸움 끝에 이빨이 몇 개 부러졌는데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치료비를 지원해 주었다.
연상호 박사는 영화광인데다 새로운 분야인 GIS에 관심이 많았다. GIS는 그가 전공한 토목공학 하고는 연관이 많았다. 어느 날은 GIS 분야 잡지를 한 권 보여 주면서 ArcInfo(아크인포) GIS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ESRI(이에스알아이) 회사를 접촉해 보라고 나에게 권했다. 그래서 1988년 8월 ESRI marketing manager 와 약속을 하고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ESRI는 Los Angeles 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약 1.5시간 가는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 Redland 에 위치하고 있었다. ESRI 사장인 Jack Dangermond (잭 댄저먼드) 는 부친께서 네덜란드(Netherland) 이민자 출신으로 여기서 나시고 자란 모양이다. 그때만 해도 ESRI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약 150명쯤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Marketing manager 인 Dave Byers (데이브 바이어스) 는 내가 AutoCAD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다른 회사에서 만난 기억이 있었다. 그도 최근에 ESRI 로 옮겨 온 모양이다. 미팅은 점심을 포함해서 하루 종일 진행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장인 잭이 사무실에 있어서 바쁜 일과 중에 틈틈이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때 이미 현대전자(현대정보통신의 전신)를 포함해서 6개의 한국회사가 GIS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 독점판매 할 수 있는 대리점 권을 신청해 놓고 마지막 결정 단계에 있었다. 운이 좋게 ESRI 사장인 잭은 나에게 대리점을 주겠다고 그날로 결정해 주었다.
그 해 10월에는 우리나라 기본 지도를 만드는 국가지리정보원(구, 국립지리원)에서 기본도를 만들기 위해 GIS 소프트웨어 국제 입찰이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두고두고 사용 할 기본지도의 포맷(format)을 무엇으로 하느냐와 관련되기 때문에 중요한 입찰이었다. 이미 취급하고 있는 콩스베르그 와 ESRI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지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콩스베르그를 과감히 버리고 ESRI를 선택했다. 우리회사 류중희 이사는 항측 분야에 경험이 많아 GIS 분야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그래서 국가지리정보원 원장이었던 김원익씨에게서 소개 받아 아세아 항측 회사에서 스카우트를 해 왔다. 해외 생활도 했으므로 영어도 곧 잘 했다. 그래서 영어로 된 입찰서류를 며칠 동안 검토해서 입찰에 참가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당일 서류미비로 입찰에 참가 할 수 없었다. 국제 입찰을 처음 해 보기 때문에 서류를 몇 번씩 검토 했지만 입찰 보증금을 입찰 전날에 납부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도 그때 그 실망스러운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l 초기 GIS 시장
GIS 사업은 시작 했지만 CAD 를 처음 시작 할 때처럼 GIS 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거기다 GIS를 구축하려면 기본지도와 응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기본지도를 만드는 것은 매년 수백억 원이 필요한 국가 사업이다. 그러므로 일반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GIS 를 잘 아는 사람이 부족 했으므로 GIS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거의 없었다. GIS 가 IT 를 기본으로 하지만 IT 전문가들도 GIS 를 배우지 않으면 GIS 를 전혀 몰랐다. 그러니 하나씩 가르쳐 가면서 GIS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했다. 본격적인 GIS 시장 활성화는 국가에서 기본지도를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 첫 디지털(digital) 기본지도는 국가 지리정보원이 1995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완성했으므로 우리나라 GIS 사업이 정식 시작되는 것은 2000년을 기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기본지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GIS 소프트웨어를 주로 학교와 연구소에 팔았다. 국토해양부나 국토지리정보원에 있는 공무원들은 GIS 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국토연구원에는 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많았고 국가정책을 연구 입안하는데 GIS 가 사용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지금 국토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는 김영표 씨다. 그는 일찍 GIS 센터를 만들어 GIS 활용을 개척해 나갔다. 그래서 그는 ESRI ArcInfo와 위상영상 분석 시스템인 Erdas 사의 Erdas 를 처음으로 구입했다. 그는 GIS 를 여러 곳에 알리고 홍보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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