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주)선도소프트 윤재준 사장 회고록
중소기업 창업
미국 벤처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에서 벤처기업이 탄생 하려면 좋은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을 소유한 사람이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회사에 사업을 제안하고 벤처 캐피털 회사는 사업성을 검토한 다음 자금을 지원한다. 또한 경영과 마케팅 전문가를 찾아서 합류 시킨다. 이렇게 자금, 운영, 개발의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서 회사가 출발한다. 이렇게 창업된 회사라도 20개 중에서 1개 정도가 살아 남는다고 하니 성공 확률이 5% 정도인 셈이다. 주식은 이 세 그룹이 분배해서 소유하며 회사를 주식 시장에 상장시켜 돈을 회수하게 된다.
한국은 벤처 캐피털 자금에 의한 창업제도가 없었으므로 창업한 사람이 이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대개 기술을 소유한 사람은 자금이 부족하고 경영관리에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회사가 창업된 후 필요 할 때 자금이 공급되지 않고 체계적인 경영관리가 안 되며 기술소유자는 기술개발 보다는 자금과 관리에 신경 쓰느라고 막상 기술개발을 등한시 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 창업 성공율이 미국에 비해 훨씬 낮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은행 문턱도 어느 정도 낮고 벤처 캐피털 회사도 있으며 씨드 머니(seed money) (주: 씨앗 돈)도 구하기 쉽지만 8,90년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선도소프트(캐드랜드의 새로운 이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기술, 자금, 체계적인 관리 어느 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다. 다만 사업을 해야겠다는 의지와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정보뿐이었다. 기술은 ESRI 즉 외국회사에 의존하는 셈이다. 물론 핵심 기술만 가져오고 응용기술은 우리가 개발한다. 경영관리는 내가 맡고 자금은 자기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러 자금지원 소스(source)에 매달렸다. 마침 정부에서 벤처 캐피털 창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여서 여기저기 한국적인 벤처 캐피털 회사가 탄생했다. 즉 자금을 지원하면서 주식 등 담보를 요구했고 대출도 해 주었으나 은행 보다도 이율이 높았다.
l 자금 조달
GIS 시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CAD/CAM 시장은 어느 정도 활성화 되었다. 선도소프트는 CAD/CAM 사업에서 남긴 이익을 GIS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CAD/CAM 사업에서도 PCB (printed circuit board) 설계, 스캐너 (scanner), 디지타이저 (digitizer) 및 플로터 (plotter) 등 CAD/CAM 주변기기 종류가 많고 소매를 하기 때문에 이익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AutoCAD 딜러가 100개 정도 되었기 때문에 선도소프트 도 그 중 하나의 딜러로서 그들과 경쟁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CAD/CAM 사업은 장기적인 전망도 별로 없었다. 따라서 92년에는 CAD/CAM 과 관련되는 사업을 전부 정리하고 60명에 가까웠던 직원 수를 30명 선으로 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시 자금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선도소프트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공급원으로는 삼천리 창업 투자 회사, 은행 및 개인들로부터 차입하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강력히 지원하는 이유로 선도소프트도 처음부터 삼천리 창업 투자를 끌어 들였다. 회사가 흑자를 내고 빨리 주식 시장에 상장을 시켜야 창투 회사가 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다른 회사에 투자할 텐데 선도소프트가 흑자 운영이 되지 않으므로 삼천리 창투의 자금이 점점 선도소프트에 묶여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삼천리에서 자금을 차입하기도 힘들었지만 이자도 월 1.8~2.8 부 정도로 은행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은행에서 차입하는 것은 신용도가 낮아 훨씬 힘들었다. 다행히 정부에서 운영하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 기금이 있어 여기에서 발급한 보증서를 은행에 가지고 가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보증 한도가 회사 매출과 신용 평가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에 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동창이나 지인이 지점장을 하고 있는 경우는 신용으로 이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기업의 자금 압박은 약속 어음 발행에서 시작되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다고 자금이 어려우니 3개월 후에 지불하는 약속 어음을 발행하게 된다. 약속 어음이 은행에 회수되면 회사는 부도를 면하기 위해서 회수되는 어음 대금을 은행에 납부해야 한다. 은행에 지불할 돈은 어떤 자금 차입을 통해서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약속 어음을 발행하므로서 자금 운용의 악순환 고리에 코를 꿴 꼴이 된다. 우리도 가끔 다른 회사의 어음을 받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끼리 거래도 없으면서 어음을 교환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부도 위험이 없는 회사는 어음 교환을 하지 않지만 부도 위험이 있는 회사끼리 어음 교환을 한다. 왜냐하면 회사가 당장 부도 위기에 몰리고 부도가 발생하므로 지불해야 되는 비용과 신용 추락이 크기 때문이다. 교환된 융통 어음이 부도가 나면 교환한 회사는 상대방의 원금은 물론이고 그 원금에 따른 이자도 계속 지불해야 하는 자금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융통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해서 쓰는데 은행에서는 증거는 없지만 어느 정도 진성 어음이 아니라는 심증이 갈 것이다. 따라서 점점 은행 신용도가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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