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삶의길목에서 " 오종근(동신대 교수)"

삶의길목에서 (지난주에 이어)

오종근(동신대 교수)

‘옴 마니 팟메 훔’은 질서정연함과 지혜를 결합한 불가분의 상호의존적 의미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근본이 되는 씨앗이 있어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변화되어 부처와 같은 순수의 상태로 전이될 수 있으며, 또 그같은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하나의 특징은 바다가 없는데 육지인 옌징에서 소금이 난다는 것이다.

옌징의 소금은 태양과 바람과 그리고 여인들의 땀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옌징의 소금은 차마고도의 교역품이 되었다. 옌징의 소금은 원난 북부에서 티벳동부와 강파지역, 그리고 라싸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중요한 교역품이다. 옌징의 소금을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마방들이 1년 내내 옌징으로 찾아온다. 또한 옌징의 남자들은 부족한 곡식을 얻기 위해서 옌징의 소금을 싣고 마방을 끌고 떠난다. 차마고도의 살아있는 마지막 교역품인 소금이 생산되지 않는 장마철은 여인들의 휴식기간이다.

옌징의 소금밭도 이제는 위기상태에 있다. 봄이 오고 옌징에는 다시 마방들이 몰려올 것이다. 이들을 옌징에 불러들인 것은 소금이지만 옌징에서도 식용으로는 예전만큼 이곳 소금이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옌징의 소금이 계속 생산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난창강에 발전소가 곧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원난성과 티벳 자치구는 옌징의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고려해서 염전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옌징의 소금밭이 존재할 지, 사라 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봉고차는 어느 새 고개를 넘어 업라산구(業拉山口)에 오르니 그곳이 4,500m의 고지대였다. 정상에 우뚝 서니 커다란 간판이 우리를 반긴다. 중국은 거리를 가다보면 선전용 간판처럼 지명을 커다랗게 세워 놓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먼저 도착한 중국인 자전거 하이킹하는 두 분이 잠시 쉬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대개 남자 아이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자아개념 없이 태어나지만 고성능 카메라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오디오 시설이 완벽한 카메라는 누군가의 모습을 추적하며 담아둔다. 그의 말 한마디, 표정, 삶의 태도, 가치관 등을 놓치지 않고 담아 둔다.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 요인(Father Factor)’ 이라하는데, 그것은 아이의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짓는다. 아버지 요인은 아이들이 자아개념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간다. 어머니의 사랑이 따뜻한 애정표현과 개인적 안전을 중요시 하는 ‘품는 사랑’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도전, 극복, 모험’을 향해 ‘떠나게 하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떠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중에 제일 좋은 게 여행이다. 자기의 이상과 현실을 비교하면서 삶의 궤적을 알아 가는데 인생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차마고도를 넘는 두 중국 청년에게 모험과 힘찬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다시 출발하여 4,618m의 업라산구(業拉山口)를 내려서니 서서히 굽이지는 고갯길이 나타낸다. 99굽이의 감마라산 고갯길이다.

운전수는 한숨부터 내뱉고, 여행자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 옛날 마방 등이 차마고도 한 굽이마다 말을 이끌고 이 고갯길을 궁궁을을(弓弓乙乙) 넘어 갔으리라.

한참을 달려가던 자동차가 우리의 1960~70년대를 연상하는 진오촌(瞋嗚村)에 다달아서 멈추었다. 어렸을 때 힘없이 벼타작 하면서 낑낑대며 ‘홀태’를 사용했는데 이곳 주민들도 홀태를 이용하여 밀타작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과거가 그들에게는 현재의 모습이고 그들의 현재가 우리의 과거라면 우리와 그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고도를 높여온 길은 이제 4,475m의 안주라산(安久拉山)에 도착한다. 호수가 보이고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뾰족한 봉우리가 없고 두루뭉술하게 고도는 높아도 그냥 여기는 언덕이다. 티베트어로 ‘라’는 언덕을 뜻한다. 반면에 산은 ‘리’를 붙인다. 계곡은 ‘룽손’, 강은 ‘창포’, 좀더 작은 샛강은 ‘추’, 호수는 ‘쵸’, 길은 ‘람’이라 한다. 안주라산 언덕에는 어김없이 오색 탈쵸가 날리고 있다.

마침 밀두빙천을 찾았다. 민가의 울타리를 넘어가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제주도에서 본 정주목(正柱木)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양측에 구멍 세 개를 뚫은 정주목 두 개를 세우고 ‘정살남’이라는 횡목(橫木)셋을 가로지르면 주인부재(主人不在)의 표시를 나타낸 것과 같았다. 원래는 주인부재시 우마(牛馬)의 출입을 방지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 흔적을 이곳 장족마을에서 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를 달렸을까, 처음으로 오체투지하는 사람을 만났다.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오체투지하는 여인과 함께 온 일행은 텐트 속에서 쉬고 있었다. 살림도구며 필요한 것을 모두 리어카에 싣고 보조하면서 움직인다 한다. 쓰촨성 안도를 출발하여 우리와 만난 곳까지 1년 3개월 걸렸다고 한다. 대단한 의지다.

원래 오체투지는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 다섯 부분을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부처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다. 티베트 스님들은 이를 ‘차체’라고 부르는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에는 야크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걸치고 손과 발, 팔꿈치에는 나무와 가죽으로 된 것을 착용한다. 평생에 한 번 해보는 것이 이들의 소원이라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사회적∙정치적 표현의 일부분으로 삼보일배를 하는 모습을 종종 신문에서 본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별로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삼보일배의 모습에서 나는 오체투지와 같은 점을 보았다. 법당에서 108배를 그 이상을 하면 되지 무엇이 부족하여 돌아다니면서 땅바닥에 절을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 하심(下心)하는 데 땅바닥에 절하는 것만 한 게 없다. 세상의 은혜로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 거만하고 우쭐된 필요가 없다. 상대방에게 나를 낮추는 것은 반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대장부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 하여 청빈한 생활을 수행의 본질로 삼았다면 오체투지나 삼보일배는 그것을 실천하는 즉 지극히 자신을 낮추는 하심의 수행이자 실천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울리지 않는 것을 추하다고 한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불쾌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넥타이에 신사복을 번지르르하게 입은 멋쟁이가 골목에서 토하는 모습은 추하다.

사물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지닐 때, 그리고 사람이 격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 그것은 추하다. 결국 눈으로 보는 자연과 마음으로 보는 자유로운 행위가 걸맞지 못하고 부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추하다.

병든 의식이 건강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추함이 부분을 떠나서 전체로, 그리고 피상적인 것을 극복하여 내면적인 것으로 스스로 전개될 때 이미 추함은 아름다움으로 승회된다.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고양될 때 삶은 수단이기를 그치고 목적이 된다.

분명한 것은 티베트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불편함과 추함과 부조화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차마고도를 걷다보면 욕망, 자아, 행복이 무엇인가, 그 어렴풋하던 본질이 투명하게 보인다. 가장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단한 삶을 꾸리며 차마고도를 오가는 티베트 사람들은 뜻밖에도 밝고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오지에서 최소한의 물자로 살지만, 그 척박함이나 가난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다. 수난과 역경은 차라리 그들의 생명을 더 푸르게 만든다. 야크와 말들, 그리고 약간의 차와 소금만으로도 삶을 이어가고 신(神)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거친 땅과 눈과 거센 바람에 의연하게 맞서며 원형질의 삶에 충실하다. 오히려 기름진 음식으로 살이 찌고 비만 때문에 성인병을 걱정하며 잉여와 부조리 속에 던져진 문명세계의 이쪽 사람들이 욕망으로 헐떡거리고 불행과 절망과 비탄에 잠긴다. 무심코 슈퍼마켓에서 산 포장육은 항생물질로 범벅되어 있고, 수입채소들은 기준치를 초과하는 농약에 오염되어 있다. 온갖 편리와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악∙권력의 추악한 실상, 온갖 거짓과 파렴치한들이 그들의 생명에서 활력을 빼앗고, 대신에 음습한 우울증과 환멸, 의기소침을 키운다.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번영의 미천함에 몸을 떨며 사람들은 목숨을 기대고 추구한 것들이 이토록 허술한 것이었던가 하고 절망한다.

이 거칠고 험한 히말라야에 길을 뚫고 한 줌의 차와 소금을 싣고 오가며 삶을 꾸리는 티베트의 사람들의 정신과 의지는 굳세고, 눈빛은 형형하다. 역경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든다. 깎아지른 협곡과 설산을 오르내리며 정신적으로 더 강해진 그들은 자아가 무엇인지, 어지러운 궁리에 빠지지 않고,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의 정신이 산란하고 삶이 시들해진다면 길이 첩첩이 이어지는 웅장한 산들, 까마득한 협곡, 천길 벼랑, 만년설과 눈이 녹아 흐르는 장강 등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놀라움과 감동에 다시 한번 흠뻑 젖고 싶은 곳, 차마고도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