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86회)
“오래살다보니 상도 많이 받았지요”
도암면 석천마을 강봉중(82)할아버지
강할아버지는 6년 동안이나 있었다는 군대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살아온 나날이 모두 고생이었다지만, 생사를 넘나들던 군대시절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싶었다.
“그때 죽었으면 대통령상도 못 받았을 것 아니요.”
오래 살다보니 여러 가지 상을 받았다는 강할아버지다.
석천마을에서 태어나 23살에 21살 처녀와 결혼하여 6년간의 군대생활을 빼고는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다는 강할아버지.
“3월에 결혼해서 8월에 군대 갔어라.”
면에서 지정하면 두말없이 군대에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를 남겨 두고 군대에 가려니 맘이 편치 않았다는 강할아버지다. 전쟁 중이었던 군대생활은 오로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만 있었을 뿐이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행군. 행군 중 갑자기 포가 쏟아지면 앞에 몇 사람이 죽어 자빠졌다.
“아따, 이제 죽겄구나.”
날마다 쏟아지는 포는 어디서 만들어져 오는지,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한국사람, 중국사람, 이북사람 죽기도 참 많이 죽었어라.”
넓은 고랑에는 사람 시체가 가득 차있었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 시체 사이에서 푹푹 숨을 쉬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섞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내 갈길 바쁘기 때문에 그들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배아지만 안고프면 산디, 워낙 배가 고파서 못견디지라.”
늘 부족한 식량이지만, 포탄이 떨어진 날, 십여 명씩 죽어나가면 후방에서 해 온 밥을 실컷 먹고도 밥이 남기도 했다. 이럴 때 잠깐 꺼내 보았던 아내의 사진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내의 처녀 때 사진을 꺼내보는 일과 몇 자 적어서 아내와 가끔씩 주고받았던 편지가 자신이 살아있다는 전부였다. 제대를 해서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시부모에게서 나와 혼자 살고 있었고 다만 얼마라도 저축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목포 등 아는 사람을 통해 나물 등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땅 한 평 없는 맨 몸댕이라 고생 참 많이 했지라.”
마침 봉황리 저수지를 막는 일이 생겨 일자리가 생겼다. 지게로 흙과 돌을 나르는 일로 일단 먹고 사는 일은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았고, 어쩌든지 자신이 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땅을 사들였다.
“조금씩 사들인 게 논 20마지기는 되었어라. 순전 논만 샀응게요.”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일처리를 잘했던 강할아버지는 어디가든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한때는 새마을지도자를 7년 동안 했고, 저수지에서 논물 대는 일을 16년간이나 맡아서 하기도 했다.
“뭔일이든지 성의껏 하기는 했는디, 2008년도에 고흥 가서 대통령상도 받았어라.”
도암면 노인회에서 추천해서 받은 상이며, 꽹과리를 잘 쳐 상을 타기도 했다는 강할아버지는 맡겨놓으면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벌기도 무섭게 벌었는디······ 넘의 집 10년이나 살았으니 몸이 어쩌겄소.”
점심때까지 도암면 노인복지회관에서 보내고 오후에 고추밭에 비료를 주려고 나왔다는 강할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다리가 힘들다면서 잠시 쉬고 계셨다. 그렇지만 지금도 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어 곡수를 주고도 객지에 사는 3남2녀의 식량은 꼭 부친다고 하신다.
“자식이 여럿된 게, 잘 안 풀리는 아들도 있고, 잘 풀린 아들도 있고, 그럽디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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