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투고 2010.4.11
<녹향월촌 6> 봄, 왁자지껄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봄, 왁자지껄
짹짹짹째재재재째재재삐리리릭삐삐삑
아침부터 참새랑 까치랑 온갖 새들이
숲과 들과 마을을 돌며 법석을 떤다
잘 틈 쉴 틈을 안 준다
아하, 봄, 왁자지껄
스산한 침묵의 들판, 휑한 동네
그건 잿빛 겨울 아니던가
황토 푸석이고 골짜기 냇물 졸졸졸졸
노루 고라니 산짐승 헉헉
아하, 봄, 왁자지껄
우다다다타타타크가가칼칼칼칼프프프
산마을의 트랙터, 쩍쩍 거리는 발동기
탈탈탈탈 경운기, 호미, 삽날 쩡쩡
박자도 화음도 엉망이지만
아하, 봄, 왁자지껄
봄은 이제 막 싹트고 일어난 어린이
입 다물면 어찌 아이인가
고요하면 죽은 것
떠들어대니까 생명이다
아하, 봄, 왁자지껄
불협화음 소음 잡음도 살아있다는 증거
조용하면 어찌 사람 세상일까
모든 살아있는 것은 소리를 낸다, 그러하니
첫 새벽 깨우는 이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
아아, 안내 말씀 드리겄습니다, 삐삑,
비료 신청한 분들, 받아 가시씨요잉, 삐삐잉
아하, 봄, 왁자지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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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참새와 온갖 새들이 온 마을과 뜨락의 나뭇가지에 날아와 떠들어대면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새들의 소음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논밭에서 각 종 농기계 소리들이 합창하듯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산기슭에서 작업하는 트랙터 소리는 유난히 큰 메아리를 만들어대는데 온 동네가 쩍쩍 거리는 발동기 소리 하며 길을 스쳐가는 경운기 소리에 서로를 부르는 소리는 왜 그리 큰지.. 삽이나 괭이를 곱게 들고 가지 않고 땅에 끌면서 터덜거리고 가는 농부들 하며...
소음이었다. 괴로운 잡음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 모든 것이 정다워지기 시작한다. 아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소리를 낸다. 그 생명의 존재를 소리로 외치는구나. 특별히 봄의 소리들은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생명의 잔치를 준비하는 소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겨울의 스산한 침묵과 잿빛 들판이 죽음을 닮았다면 그 죽음을 뚫고 나온 봄날의 환희는 생명의 소리들로 가득하다. 새 움이 트고 싹이 돋고 얼었던 땅이 녹아 푸석푸석 황토 내음이 묻어나며 골짜기마다 냇물이 졸졸 흐르고 사람들이 일터에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아름다운 삶의 소리, 그것이 봄날의 생명이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소리만이 아니라 때론 불협화음도 사실은 살아있음의 증거인 것이다. 내 귀에 예쁜 소리만이 가치가 있고 선한 건 아니다. 모든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생명을 나타내고 있다.
음정과 박자는 서툴러도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들로 합창하며 함께 봄날의 무대. 저 환희의 삶의 현장으로 거룩한 소음의 낙원을 바라보며 왁자지껄 나아가는 우리들은, 살아있다. - 녹향월촌에서 박부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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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 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한국크리스쳔시인협회회원.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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