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윤민화 기자가 보는 세상읽기(5)
오월, 가정의 달을 생각하며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다. 숙제 제목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서’였다.
본인의 시조, 중시조, 그로부터 몇 대손, 무슨 파인지 조사해오라는 숙제였다.
아주 간단한 과제였지만, 그때 그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뿌리라는 말은 지금까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지냈던 철부지 나에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다. 생각이 참 많아졌다. 그리고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미지의 어디선가 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를 더듬어 올라가는, 마치 나를 찾아가는 여행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이 숙제를 작성했다. 어디로부터 몇 분의 형제분이 계셨는데, 각기 다르게 정착하게 되셨고, 또 그로부터 어느 분이 계셨는데, 무슨 벼슬을 하셨던 분이시고, 고향 어느 동네와 어느 동네에 우리 성씨를 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거기가 어디이고,.. 우와~ 너무나 즐겁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건 마치,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계셨는지, 얼마나 많은 생명과 시간과 역사가 그 안에 곁곁히 쌓아내려왔는지에, 생각이 미치니 그야말로 내가 참으로 귀해지고 넓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신기해졌다.
자신의 뿌리를 알아가는 일은 즐겁고 복된 일이다.
몇 달 전에, 또래의 한 친구를 만났다. 그도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한국을 찾은 이였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덴마크로 입양되어 국적은 덴마크인 친구였다. 아이였던 그녀는 자라 소녀가 되었고, 자신이 남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나는 남과 다르게 생겼는지,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누구인지, 왜 나는 여기에 있는지....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쉼없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녀는 한국 땅을 찾아왔다. 그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참 놀랐다고 한다. 아니 이렇게 발전된 나라에서 왜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야만 했을까? 나라가 너무 가난해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이렇게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왜 이 나라 아이를 다른 나라의 아이로 키우게 해야만 하나? 그녀는 자신이 보내진 그 때는 너무나 가난했기에 어찌할 수 없었지만, 왜 그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저런 물음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그녀는 어머니를 찾고 있으나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계속 자신의 어머니를 찾고 있다. 그저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만나 꼭 껴안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미약하지만 자기 힘을 보태기 위해 체계적으로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오월을 다시 생각해본다.
오월은 가정의 달.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결 드높아진 오월 오일 어린이날이 있고, 부모님 가슴마다 카네이션이 영글어지는 오월 팔일 어버이날이 있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우리 모든 이들의 본향, 마음의 뿌리인 가족을 생각하는 오월이다. 오월 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에 우리 주위 곳곳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지내는 아이들이 무수하다. 또 이 곳에 가족이라는 둥지를 틀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보내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마도 그 아이가 크면 또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내 조국, 대한민국은 나를 이곳에서가 아닌 머나먼 저 곳으로 나를 보냈는가요? 이십년 후에도 우리나라가 이 질문을 들어야 한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부끄러움 가득이지만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금 다소 연약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우리가 그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줄 수 없을가? 가족이라는 뿌리를 알지 못한 아이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뿌리가 되어주면 어떨까? 든든한 둥지가 되어주면 어떠할까? 잠시 기분좋은 상상에 빠져본다. 오월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날. 11일 입양의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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