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8> 빨간 동그라미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빨간 동그라미
이 장밋빛 빨간 동그라미로
두른 날이
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오년 전 달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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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청소를 하다보면 간혹 생뚱맞은 것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 지난 추억들을 못 잊게 하는 상징적인 물건들. 옛 사진이나 일기장이라든가 특별한 애환이 깃든 생활용품 같은 것 말이다.
어찌하다 둘둘 말려 구석에 박혀있는 달력을 발견하고는 통째로 버리려다 문득 스치는 게 있어 죽 펴서 한 장씩 넘겨보았다. 꽃이 만발한 오월의 풍경 사진과 함께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날짜가 눈에 띄었다.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년 전의 달력. 어머니는 그해 병상에서 생신을 맞이하셨고 그 오월을 넘기시고는 장미의 계절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전의 달력들에도 죄다 동그라미가 쳐져있었겠지만 그해 오월의 동그라미는 유독 붉은 장미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닮아있다. 그러니 가슴에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한들, 달력에 동그라미를 아무리 빨갛게 쳐놓았다한들 그날 뭐 특별하게 잘해드린 게 있었던가.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으니 상투적인 인용문이 돼버린 옛 시인 정철의 충고, ‘어버이 살았을 때 섬기기만 다 하여라’를 아무리 되새겨도 만회할 기회는 없다.
이제는 해마다 어머니의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려 화려한 달력에 애써 동그라미를 쳐놓지만 어찌 그 장밋빛 빨간 동그라미에 비하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가슴 싸한 추억과 아쉬움과 그리움이 하늘처럼 번져온다 한들......
- 녹향월촌에서 박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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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 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한국크리스쳔시인협회회원.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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