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에의 기대
김현임(수필가·모란촌문학동인회원)
‘아내와 투표를 마쳤습니다. 오늘이 출산일이라 이제 셋째딸 출산하러 갑니다.’ 투표소 표지 앞에서 부부가 찍은 사진을 첨부한 이 짧은 글 하나가 트위터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2일 오전 9시, 많은 이들의 투표의욕을 고취시킨 당사자는 몇 시간 후 신생아와 함께 한 사진을 올려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새 생명에 대한 축하 인사의 쇄도는 당사자 아니라도 흐믓했다. 하지만 선거일 당일 태어난 아기이니 지선(지방선거), 혹은 민주 중 택명하라 권했다는 기사엔 쓴웃음이 나왔다.
목적인 당선을 겨냥해 무엇을 못 하랴. 별의 별 수단과 권력이 적극 보조한 편법이 다 동원된 눈치다. ‘내가, 나 만이’로 소리 높인 유세과정은 그야말로 소음공해였다. 투표란 될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누굴 지지하는 지를 드러내는 행위라고 했다. 그 민심의 거대한 실체라 표현했던가. 드물게 높았다는 투표참여율의 일등공신은 젊은이들이었다. 오후 2시 넘어서며 미니스커트와 운동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더란다.
드디어 선거가 끝났다. 이번 뜻밖의 선거결과는 반성하라, 겸손하라, 그리고 힘을 내라는 민심의 질책과 바람의 결과물이었으니 여야 모두에게 깊은 성찰과 각성을 요구한다. 자신의 최선을 다했으나 안타깝게도 실패의 쓴잔을 마신 패자에겐 깊은 위로를 보낸다. 승자에게 배달된 건 두 스푼의 감격과 여덟 스푼의 사명감이 어우러져 포장된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참으로 귀한 차라는 은향녹차(銀香綠茶)에 버금갈 것이다. 지역주민의 염원과 기원이 가득 담긴 그 경건한 잔을 건네받은 승자에게 더 이상 축하의 말은 그만 사양하련다. 여기저기서 귀가 얼얼하도록 들었을 터, 하니 그에게 이명(耳鳴)의 피로감을 덧보태 줄 까닭이 없다.
연일 술렁이던 거리 곳곳이 잔치 뒤끝처럼 허전하다. 그러나 바야흐로 진정한 잔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닌가. 포만감에 뒤뚱거릴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우리를 위해 차려낼 성의 깃든 잔칫상을 은근히 기대하리라. 무엇, 무엇 정성껏 차려 내 대접해 올리겠노라던 약속, 승자는 자신이 내민 슬로건을 차근차근 실천할 차례다.
목마른 우리를 이끌어 단물 솟는 샘터로 데려가 줄 이, 아니 우리의 환부를 어루만져 후련히 치유해주는 유능한 주술사가 될 그다. 이제 그는 그가 아니다. 허락된 임기 동안 혼신을 다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완(弛緩)의 태도라던가. 이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타인, 즉 앞으로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받아들이라 요구하는 우리 토속 굿판의 용어다. 남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이 맡기에는 무리한 일이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냥 생긴 대로, 특별히 잘하려고 하지 말라 권한다. 그저 욕심 없이 자신의 직분을 묵묵히 보여주면 된다. 자신의 모두를 비울 수 없는 무당은 남의 영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의뢰인의 아픈 곳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없단다. 이번 선거의 승자에게 바라는 우리의 기대치에 이만큼 적확한 표현이 없다.
‘의심하면 쓰지 말고, 선택한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疑人不用, 用人不疑)’ 이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인재론이다. 그런가하면 서로 마음을 합하여 아름다운 일을 이루라는 합심위선(合心爲善)이라는 말도 있다. 가끔 어린아이 심술부리듯 나무 위에 올라가라 해놓고 흔들어대길 즐기는 경박한 품성을 보이는 우리, 그를 나무라는 화기치상(和氣致祥)이란 옛 사람들의 사자성어도 떠오른다. 눈 부릅뜨고 이모저모 꼼꼼히 살펴 고른 우리의 일꾼이다.
재즈를 모르는 자에게 재즈의 맛을 알려 주기 어렵다고 한탄한 것은 재즈의 대가 루이 암스트롱이다. 술에 취해 얻은 정취는 깨어있는 자에게 전할 수 없다고 투덜댄 건 이태백이고, 난초그림의 오묘한 법칙은 아는 자만 안다고 단언한 추사다. 이렇듯 아는 자는 알고 모르는 자는 모르는 경지가 분명히 있다. 정치라고 예외일까. 족적 큰 사람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런 넋두리를 부디 간과하지 말자. 혹여 마땅치 않아 초기엔 그를 외면했더라도 공연한 딴지는 금물이다. 잘 걸어가려는 사람의 발목 걸어 넘어뜨리는 훼방꾼이 성실한 도보자에겐 가장 두려운 존재다.
그동안 한 가지 종을 거듭 심은 연작의 폐해였다. 이변이라 했던가. 한 당의 지방정부 독식이 사라짐에 따라 그동안 질식했던 지방자치가 새로운 활기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했다. 씨앗을 든 그의 바구니에서 얼마나 튼실한 종자가 뿌려지는지, 아니 얼마나 잘 가꾸어 수확기에 단단한 열매를 얼마나 넉넉히 주인인 우리에게 돌려줄 것인지 잘 지켜 볼 것이다. 그리고 훗날 우리는 또 이 경험을 바탕으로 냉혹한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야말로 이 잔치의 비싼 대금을 치른 엄연한 주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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