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농장
우연한 기회에 강진고을신문기자가 발간한 ‘갯들’이라는 농촌소설을 접하게 됐다. 처음엔 요즘 서점가에서 쉽게 보기 힘든 농촌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 관심차원에서 읽게 됐는데, 읽다보니 고향 강진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순식간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소설 ‘갯들’은 주인공이 고향 강진으로 전근을 오면서 시작된다. 오랜 도시생활이 익숙한 탓에 새로 시작하려는 농촌생활이 녹록찮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농촌에 정착하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며 실현해간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는 곳은 ‘영동농장’인데, 필자는 이곳이 강진에 실제 존재하는 농장이라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소설에서 표현된 영동농장의 모습과 분위기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저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니 저자의 남편이 영동농장의 농부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영동농장은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에 있다. 70만평규모의 대농장으로 간척지에 농경지를 조성해서 친환경 그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쌀은 매년 1만 2천석이나 된다했다. 농장이 눈앞에 있었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농장규모와 생산량만이 아니었다. 영동농장을 이끌고 있는 김용복 회장이라는 분이 진짜 놀랍고 대단한 분이셨다. 월정 김용복 회장은 1934년생으로 군동면의 가난한 농부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가난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후 고향을 떠나 객지로 향하는 딱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산 미군부대의 하우스 보이와 운전수를 시작으로 어렵고 굴곡진 청년기를 보냈지만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을 야채농장으로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막에서 배추농사’를 해낸 것이다.
김 회장은 사막에 배추, 무 등 채소와 밀 재배에 성공해서 ‘녹색혁명을 일군 기적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후 우리나라 영농기술을 중동에 전수하고 ‘외화획득 개인 1위’라는 놀라운 성과도 일궈낸다. 국위 선양에 이바지한 공로로 1982년에는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사꾼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아깝지 않은 분이다.
놀라운 건 김 회장의 고향에 대한 사랑과 지원이 정말 크다는 것이다. 어쩌면 월정에게 고향 강진은 가난과 배고픔만 기억나고 배움의 꿈도 접게 한 야속한 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야속했을지도 모를 강진의 여러 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자재를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 젊은 시절 베트남에 근무할 때엔 급여를 고스란히 보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솔선수범해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공직에 있는 필자에게도 많은 귀감을 준다. 김 회장은 알면 알수록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배우고 본받아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 고향 선배이자 인생 선배였다.
김 회장이 대단한건 다른데 있지 않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오로지 ‘농사’ 하나만 생각하고 우직하게 걸어온 그 뚝심이다. 우리민족이 중요시 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포기하지 않은 그 신념과 정신이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땀방울의 힘’과 ‘땅의 결실’만을 믿어 대한민국 최고의 농사꾼이 된 김 회장은 지역의 농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우리 땅 강진이 키운 대농인(大農人)이 전하는 메시지와 결과물을 통해서 제2의, 제3의 김 회장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기회의 땅’ 강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광주지방조달청장 이 성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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